[2010 '캠퍼스 DNA'가 달라졌다] '취업 예비고사' 된 인턴십… "교수님~ 인턴 가니까 강의는 나중에…"
<특별취재팀>
기사입력 2010.08.10 03:03

[2010 '캠퍼스 DNA'가 달라졌다] [6] 요즘 대학생 인턴은 '金턴'
인턴서 정사원 선발 늘어… 100대 1 경쟁 뚫고서도 야근·주말근무 자원
"인턴들 눈빛 달라졌다"
인턴 낙방 졸업생들은 불안… 인턴때문에 취업 더 힘들어 정사원 탈락 대학생 인턴들
"기업들 부려먹곤 버려"

  • 지난 4일 서울 중구 SK텔레콤 본사 12층 인더스트리 사업 3팀 사무실은 종일 텅 비어 있었다. 직원 20여명이 이날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그룹 계열사에서 열린 워크숍에 참석한 뒤 사무실에 들르지 않고 바로 퇴근했기 때문이다. 오후 9시 30분쯤 인턴사원 송미령(23)씨가 빈 사무실에 들어섰다. 서울대 국악과 졸업반인 송씨는 지난달부터 인더스트리 사업 3팀에서 일하고 있다. 그는 "워크숍 자료를 정리하고 1주일 뒤에 있을 개인 프로젝트 발표를 준비하러 왔다"고 말했다. 야근을 하던 건너편 2팀 선배들이 "무리하지 마라"고 얘기했지만, 송씨는 "괜찮다"며 관련 자료를 읽고 정리했다.

    올여름 SK텔레콤의 대학생 인턴사원에 지원한 대학생은 1만여명이나 됐다. 송씨를 비롯해 90명이 합격했다. 국립국악고 출신으로 대학에서 거문고를 전공하는 송씨는 요즘 대학생들이 '필수 스펙(자격요건)'으로 꼽는 한자 자격증과 토익 점수가 없다. 하지만 그는 "회사가 강조하는 '야생형(野生型) 인재'가 바로 나"라며 110대 1이 넘는 경쟁률을 뚫었다. 벤처 동아리에서 활동했고 대학연맹 수영대회에서 입상한 경력을 내세운 게 심사위원들 눈길을 끌었다.

  • 높은 경쟁률을 뚫고 인턴사원에 선발된 대학생들은‘취업 동아줄’을 놓치지 않기 위해 밤낮으로 열정을 쏟고 있다. 늦은 시각까지 회사에 남아 선배들에게 조언을 구하는 송미령(23·맨 오른쪽)씨. /이준헌 객원기자 heon@chosun.com
    ▲ 높은 경쟁률을 뚫고 인턴사원에 선발된 대학생들은‘취업 동아줄’을 놓치지 않기 위해 밤낮으로 열정을 쏟고 있다. 늦은 시각까지 회사에 남아 선배들에게 조언을 구하는 송미령(23·맨 오른쪽)씨. /이준헌 객원기자 heon@chosun.com
    '바늘구멍'을 뚫었다는 기쁨은 잠시였다. '인턴사원 중 절반 이상을 평가를 거쳐 정규 사원으로 채용한다'는 회사 방침 때문에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송씨는 지난주 토·일요일에도 회사에 출근해 개인 프로젝트를 준비했다. 그는 "주위에선 인턴사원에 선발되면 취업의 '8부 능선'을 넘었다고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면서 "내 존재 가치를 인정받도록 모든 것을 쏟아내 반드시 정규 신입사원이 되겠다"고 말했다.

    요즘 기업체에서 활동하는 대학생 인턴들은 눈빛과 자세부터 다르다. '손님' 대접을 받으면서 적당히 시간을 보내고 수료증을 받아가던 몇 년 전과는 판이한 양상이다. 인턴 출신 입사지원자에게 약간의 가점을 주며 우대하는 정도를 넘어서 인턴 가운데 신입사원을 뽑는 비율을 미리 공지하는 기업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포스코처럼 신입사원 전원을 인턴사원 출신으로 선발하는 곳도 있다.

    입사 선호도가 높고 취업으로도 이어지는 기업의 인턴을 요즘 대학생들은 '금(金)턴'이라고 부른다. 황금처럼 귀하다는 뜻이다. 대학가 주점에서는 인턴사원으로 근무하며 받은 첫 월급으로 친구나 후배들에게 '인턴 턱 쏘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

  • 높은 경쟁률을 뚫고 인턴사원에 선발된 대학생들은‘취업 동아줄’을 놓치지 않기 위해 밤낮으로 열정을 쏟고 있다. 고된 현장 업무 속에서도 환한 웃음으로 손님을 맞는 임희선(22)씨. /이진한 기자 magnum91@chosun.com
    ▲ 높은 경쟁률을 뚫고 인턴사원에 선발된 대학생들은‘취업 동아줄’을 놓치지 않기 위해 밤낮으로 열정을 쏟고 있다. 고된 현장 업무 속에서도 환한 웃음으로 손님을 맞는 임희선(22)씨. /이진한 기자 magnum91@chosun.com
    지난 6월 롯데백화점 인사 담당자는 깜짝 놀랐다. 60명을 선발하는 인턴사원 모집에 3200명의 대학생이 몰렸기 때문이다. 53대 1의 경쟁률을 통과한 합격자의 평균 학점은 3.7점, 토익 성적은 870점에 이르렀다. 이들은 8주 동안 정규직 사원과 동일한 업무를 하고 개인별·팀별 프로젝트, UCC(사용자가 손수 만든 콘텐츠) 동영상 제작, 독서 발표 같은 과제도 수행해야 한다. 1박 2일의 합숙 테스트를 마친 뒤 50%가 신입사원으로 채용된다.

    어렵사리 '취업 동아줄'을 잡은 요즘 대학생 인턴사원들은 야근과 주말 근무도 불사하고 있다. 지난 5월부터 T컨설팅 업체에서 인턴사원으로 근무하는 조은선(24·고려대 경제학과 4년)씨는 보통 자정이 넘어서야 퇴근한다. 조씨는 "신규 사업 컨설팅을 의뢰한 업체를 상대로 정규직 선배 6명과 팀을 꾸려 일하고 있다"며 "4개월 인턴 과정이 끝나고 나서 정식 컨설턴트로 선발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했다.

    누군가는 탈락해야 하는 냉혹한 현실을 살아가는 인턴사원들 사이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돈다. 한 외국계 의료·제약 업체 인턴사원인 서강대생 한모(25)씨는 4일 개인 프로젝트 발표물을 준비하며 새벽 1시가 넘도록 사무실에 남아 일했다. 그는 "탈락자가 되지 않을까 늘 불안하다"면서 "약속이 있어 일찍 나갈 때도 퇴근하지 않고 회사에 남아 뭔가 하는 동기(同期)들을 보면 바짝 긴장된다"고 말했다.

  • 현장에서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일을 찾아 배우기도 한다. 임희선(22·전주대 호텔경영학과 3년)씨는 호텔리어의 꿈을 이루기 위해 지난 6월 20일부터 서울 서초구 JW 메리어트호텔 2층 익스체인지 바(Exchange Bar)에서 인턴사원으로 일하고 있다. 임씨는 정오부터 오후 9시까지 커피와 생과일주스, 칵테일 등을 만든다. 임씨는 앞서 같은 호텔 일식당에서 식기를 닦고 식자재를 정리하는 일도 했다. 호텔 관계자는 "현재 대학생 70여명이 짧게는 2달부터 길게는 6개월까지 인턴으로 근무한다"며 "필요한 인력을 수시로 채용하는데 인턴 출신을 우대한다"고 말했다.

    '취업 예비고사'인 기업체 인턴 기회를 놓친 대학 4학년 학생들의 불안감은 어느 때보다 크다. 중소기업체로 '구직 눈높이'를 낮추기도 한다. 올해 상반기 기업 공채에 15번 응시해 모두 낙방했다는 성균관대생 정모(25)씨는 "여름 인턴사원 모집 기간이 상반기 공채(公採)시험과 겹쳐 지원조차 못했다"며 "안 그래도 좁은 취업문이 인턴 때문에 더 좁아졌다"고 말했다.

    방학은 물론 학기 중에도 계속되는 인턴십 프로그램 때문에 대학 강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학교수들은 "예전에 신입사원 합격증을 내밀며 '강의에 참석 못하니 선처를 바란다'는 학생들이 주류(主流)였는데 최근에는 '인턴 합격증'을 들고 오는 학생이 부쩍 늘었다"고 말했다.

    몇 달 동안 인턴에 '올인'했지만 신입사원으로 채용되지 않은 대학생들은 "일부 기업들이 인턴 제도를 악용하는 것 아니냐"며 불만을 드러내기도 한다. 한 취업 사이트에는 22주간 인턴으로 일했지만 정규직으로 선발되지 못한 대학생들이 "취업을 미끼로 젊은 구직자의 시간을 반년이나 빼앗았다" "다른 기업에 지원하지 못하게 하며 부려 먹더니 결국 버렸다"며 반발하는 글이 올라와 있다.

  • ▲ 서울 강남 메리어트호텔에서 인턴으로 일을 하는 임희선씨가 밝은 표정으로 호텔을 찾은 손님들에게 서빙을 하고있다.호텔경영학을 전공한 임씨는 "서빙 일을 하면서도 호텔의 모든 것을 알기위한 과정으로 즐겁게 일을 하고있다"고 말했다./이진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