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이 수업 선택… 사교육·필기·교무실 없는 3無학교
논산=김명교 맛있는공부 기자
기사입력 2010.06.28 03:11

[맛공이 떴다] 논산 대건고

  • 공교육의 위기를 걱정하는 요즘, 보란 듯이 공교육의 희망을 제시하는 학교가 있다. 전인교육으로 인성은 물론 학력 향상의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은 논산 대건고. 시골학교의 반란이라 불릴 만큼 대건고의 PESS 교육 프로그램은 지역뿐 아니라 전국에 소문이 자자하다. PESS는 신체적·정서적·영적·지적·봉사적 측면을 균형 있게 계발하는 전인교육 프로그램으로, '단순 주입식 교육에서 벗어나 인간다운 인간을 길러내는 교육의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는 강석준 교장의 교육 신념이 녹아 있다. OECD가 선정한 최우수 고교(2000년), 제1회 포스코 청암상(교육 부문) 수상 등 대외적으로도 그 진가를 인정받은 대건고를 찾아갔다.

  • 영어회화 수업 장면.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학생의 모습이 인상적이다./양수열 객원기자
    ▲ 영어회화 수업 장면.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학생의 모습이 인상적이다./양수열 객원기자
    ◆"나에게 맞는 수업 선택, 공부할 맛 절로 나요"

    지난 22일, 오전 9시 55분. 몇 시간을 달려 도착한 대건고는 종종걸음을 옮기는 학생들로 분주했다. 여러 권의 책을 한쪽 팔로 끌어안고 다른 한 손에는 필통을 쥐고 교실을 옮겨 다니는 것이 영락없는 대학생의 모습이었다. 학생들의 발걸음이 다다른 교실 앞에는 국어, 영어, 수학 등 교과목과 담당 교사의 이름이 새겨진 표지판이 부착돼 있었다. 바쁜 움직임은 50분마다 반복됐다. 박용서 교감은 "모든 과목에서 교과 교실제를 운영한다. 영어, 수학의 경우 기초·보통·심화 과정으로 나눠 수준별로 운영하고 사회, 과학은 학생의 적성과 소질에 따라 7개 중 4과목, 4개 중 3과목을 선택하도록 했다. 학생들은 대학생처럼 직접 짠 시간표에 따라 교실을 옮겨 다니며 자신에게 꼭 맞는 수업을 들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매주 월요일 아침이면 학생들은 PESS 플래너를 꺼내 든다. 10년 후 인생의 목표를 스스로 정해놓고 네 가지 영역별로 주간 생활계획을 세우는 것이다. 스트레칭 하기(Physical), 인상 찌푸리지 않기(Emotional), 하루 일과 반성하기(Spiritual), 복습하기(Study) 등 일주일, 하루의 목표를 적어두고 매일 얼마나 실천했는지 학생 스스로 평가한다. 3학년 안성표군의 말이다.

    "PESS 플래너 안에는 학생들이 알아야 할 1년 스케줄이 담겨 있어요. 해야 할 일을 미리 체크해두고 준비할 수 있어서 허둥지둥하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 있죠. 무엇보다 학교 스케줄에 끌려 다니지 않고 스스로 정해둔 계획에 따라 생활할 수 있어서 좋아요."

    대건고에는 세 가지가 없다. 사교육·필기·교무실이 그것이다. 학생 수준에 맞는 다양한 수업을 개설하고 스스로 교과를 선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학생들은 사교육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또 교사들이 직접 제작한 전 과목의 활동 자료를 파일 형태로 학생들에게 제공하기 때문에 필기하는 데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 줄어든 필기 시간을 토론, 발표하는 데 활용한다. 교사들이 수업 연구에 집중할 수 있도록 교무실도 없앴다. 대신 교사 2인 1실로 사용할 수 있는 연구실을 마련했다. 안군은 "공부하다 모르는 것이 생길 때는 거리낌 없이 연구실을 찾는다. 선생님과의 거리가 좁아져 배울 기회가 많아졌다"고 말했다.

    ◆학력 향상, 인성교육이 답이다!

    매일 아침 7시 30분이면 대건고 교정은 줄넘기하는 학생들로 장관을 이룬다. 체력 기르기에 효과적인 '5분 줄넘기'를 권장하기 때문이다. 박 교감은 "운동시킨답시고 아침부터 무작정 운동장을 뛰게 하면 교사와 학생이 얼굴을 붉히게 된다. 5분 줄넘기로 30분 동안 조깅한 효과를 볼 수 있다. 줄넘기를 못할 때는 담임교사와 함께 맨손 체조나 스트레칭을 할 수 있도록 지도한다"고 전했다.

  • 위부터 대건고의 전경./공부의 흐름을 깨지 않기 위해 대건고의 축제는 기말고사가 끝난 후에 열린다./매년 2학년생들은 예절교육의 일환응로 성인식(관례)을 치른다./자기주도적 학습의 힘, PESS 플래너에서 비롯된다./양수열 객원기자
    ▲ 위부터 대건고의 전경./공부의 흐름을 깨지 않기 위해 대건고의 축제는 기말고사가 끝난 후에 열린다./매년 2학년생들은 예절교육의 일환응로 성인식(관례)을 치른다./자기주도적 학습의 힘, PESS 플래너에서 비롯된다./양수열 객원기자
    대건고의 인성교육은 그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다양하고 체계적이다. 매주 토요일을 책가방 없는 날로 정해 1년 계획에 따라 자아 탐색, 성교육, 영상 포럼, 예절 교육, 민주시민교육, 자연 탐사, 동아리 활동 등 직접 경험하면서 인성을 계발할 수 있게 했다. 동아리 활동의 경우, 학생 개개인의 선택을 존중해 단 1명이 신청하더라도 원하는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 매주 금요일 7·8교시에는 집단 상담과 명상을 한다. 학부모 자원 봉사자들이 진행하는 집단 상담은 나와 타인에 대한 이해를 통해 원만한 인간관계를 맺고, 진로를 탐색할 수 있는 시간이다.

    대건고에서는 '강제'라는 단어는 통하지 않는다. 교칙을 정할 때도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한다. 학생과 교사들이 온종일 토론을 벌여 정한 규칙인 만큼 교칙을 지키는 데 누구보다 학생들이 적극적이다. 2학년 김대환군의 이야기다.

    "흔히 '고등학생은 공부만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우리 학교에서는 이런 고정관념이 통하지 않아요. 공부 말고도 운동, 동아리 활동, 갯벌 체험, 테마 여행 등 할 수 있는 것들이 무궁무진하죠. 시험 기간에도 스트레스받지 않고 공부한다면 믿어지세요?"

    인성교육이 학력 향상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강석준 교장은 "우리는 다양한 관계 속에 살아간다. 교사와의 관계, 부모와의 관계, 친구와의 관계 등 인간관계가 좋지 못한데 공부가 잘되겠느냐"고 반문했다. 올해 대건고는 서울대 6명, 연고대 24명, 경찰대 2명, 사관학교 7명 등 여느 명문고 못지않은 진학 실적을 보였다.

    "이 시대가 요구하는 인재상은 변화하고 있습니다. 신체적·지적·정서적·영적 요소를 조화롭게 갖춘 리더를 원하는 것이죠. 앞으로 대건고는 전인교육을 통해, 학생이 원하는 꿈을 이루도록 돕는 학교로 기억되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