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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놉시스와 스토리보드는 내 몸의 일부다. 씻을 때 빼고 반드시 몸에 지녀라!" 지난 25일 오전 기자가 찾은 한국애니메이션고는 낯설었다. 학교 외관부터 심상치 않았다. 건물 외벽에는 용이 웅비하는 모습을 형상화한 학교 상징이 그로테스크하게 보였다. 건물로 들어서자, 학생들이 만든 입체 캐릭터, 벽면 곳곳에 붙어 있는 캐리커처가 눈에 띄었다. 학생들은 열정으로 똘똘 뭉친 듯 발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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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성 중시하는 학교 분위기
교무실로 향하며 또 한번 놀랐다. 학생들의 옷차림이 중구난방이었다. 체육복, 캐주얼, 교복 등 다양했고 머리 스타일도 개성이 넘쳤다. 틀이나 규칙, 경계에 얽매인 아이들이 아니었다. 그러나 복도를 지나갈 때는 학생들이 저마다 큰 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교무부장 윤병권 교사는 "실습수업이 많기 때문에 활동하기 편한 복장으로 등교하도록 했다"며 "창의성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게 학생들의 자율에 맡긴다"고 귀띔했다. -
오전 10시, 웅성거리는 소리를 따라 교실로 들어갔다. 애니메이션과 1학년의 실습 현장. 5명이 한 팀을 이뤄 2분짜리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고 있었다. 신데렐라와 피터팬, 헨델과 그레텔, 행복한 왕자 등 익숙한 동화 캐릭터가 책상에 흩어져 있고, 학생들은 이야기 보따리를 푸느라 다소 예민해 보였다.
김정운 교사는 "익숙한 동화를 바탕으로 사회 비판적인 주제를 담아 단편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보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동화 '행복한 왕자'로 작업하고 있는 김지선(16)양은 "행복한 왕자는 몸에 붙은 금을 가난한 백성에게 나눠주지만, 떨어져 나간 부분을 메우기 위해 관리가 과도한 세금을 부과하고, 결국 백성들은 굶주리게 된다는 스토리"로 "공직자들의 부정부패를 풍자하려는 의도"라고 설명했다.
만화창작과의 만화기초 수업시간. 학생들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인체 구조도가 보였다. 마치 해부학 수업처럼 느껴졌다. 한 여학생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자신의 다리를 이리저리 관찰했다. 손기영 교사는 "사람의 근육과 골격 등을 알아야 만화를 제대로 그릴 수 있다"며 "바른 인체 표현법을 알려주기 위한 수업"이라고 설명했다. -
◆개인 창작공간 1인당 6.6㎡
경기 하남에 위치한 한국애니메이션고는 만화창작, 애니메이션, 영상연출, 컴퓨터게임 제작 등 문화콘텐츠와 관련된 내용을 교육하는 특성화고다. 갈수록 그 영역이 확대되고 있는 영상 분야에서 활동할 젊은 인재 양성에 초점을 맞춘다. 만화창작과, 애니메이션과, 영상연출과, 컴퓨터게임제작과로 학생을 모집해 단계별 수업을 진행한다. 현장에서 활동하는 전문인들을 초빙해 교육 수준을 한 단계 높였다. 또 학생들이 언제든지 작업에 몰두할 수 있도록 개인 창작공간을 학생 1명당 6.6㎡(2평)씩 확보해뒀다.
컴퓨터게임제작과 3학년 이광규군은 "C언어라고 불리는 프로그래밍 언어와 게임 제작에 필요한 전반적인 내용을 공부하기 때문에 수학적 사고를 요구한다"며 "컴퓨터를 붙들고 씨름하다 보면 밤샘작업을 할 때가 많지만, 전문가가 된다는 생각에 피곤한 줄도 모르고 빠져 든다"고 했다.
영상연출과 3학년 김혜인양은 "음악, 조명, 시나리오 등 여러 가지 요소가 합쳐진 종합예술인 영화에 빠져들어 진학을 결정했다"며 "졸업을 앞두고 더 악착같이 배움에 몰두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알 듯 말 듯한 얘기를 했다.
◆대학 진학률 90%… 카이스트 진학도
영상연출과는 영화, 방송, 다큐 등 영상에 관한 전반적인 내용을 공부하는 학과다. 국내 대학의 시설과 견줄 수 있을 정도로 최고 수준의 장비를 갖췄다. 머리보다 몸으로 체감할 수 있는 교육을 위해 각종 공모전과 대회에 작품을 출품, 수상했다.
애니메이션과 3학년 이은주양은 "애니메이션은 수십, 수백 장의 그림이 만들어내는 움직임을 영상으로 제작하는 것"이라며 "한 컷을 만드는 데 많으면 200장의 그림이 필요해 끈기를 요하는 분야"라고 덧붙였다. 이양은 2009 경기도 기능대회에서 3D 애니메이션 부문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만화창작과 2학년 정현주양은 "만화창작은 출판만화를 가리키는 말"이라며 "만화의 기초부터 기술적인 부분, 인체 표현법, 도구 사용법 등을 배운다"고 했다.
"많은 학생들이 대학에 진학해서도 목표를 정하지 못해 갈팡질팡한다지만 저는 만화가가 되겠다는 목표로 오직 앞만 보며 달리고 있습니다. 한국예술종합학교를 목표로 앞으로도 열심히 갈고 닦을 거예요."
한국애니메이션고로 입학하려는 학생들의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영상 분야가 고부가가치산업으로 인정받으면서 학교에 대한 관심도 함께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졸업생의 대학 진학률은 90%로, 이 중 30%는 해외대학으로 진학한다. 작년에는 전문계고 최초로 카이스트 입학생을 배출하기도 했다. 올해 경쟁률은 평균 6.2대 1을 기록했다. 최낙성 교장은 "IT산업이 국가기간산업으로 자리 잡고 있는 만큼, 시대에 부응하는 맞춤형 영상 인재를 길러내는 데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한국애니메이션고] "틀 깨고 개성은 살리고… 꿈 그려내는 법 배워요"
활동 중인 전문인 초빙해
교육수준 한 단계 높여
학생 1명당 창작공간 6.6㎡
언제든 작업 몰두할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