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에듀레터] 슬로리딩, 생각을 키우는 힘
맛있는공부
기사입력 2014.10.14 13:28

  • 오늘의 에듀레터 | 슬로리딩, 생각을 키우는 힘


    최근 ‘슬로 리딩(Slow Reading)’이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EBS는 지난 10월 6일부터 사흘간 3부작 다큐멘터리 <슬로리딩, 생각을 키우는 힘>을 방영했습니다. 슬로 리딩은 말 그대로 ‘천천히 읽는 훈련’입니다. 이는 다독과 속독이 정답이라고 여기는 최근의 독서 경향에 대한 도전장이기도 합니다.



    ‘슬로 리딩’이라는 말은 2012년 《슬로 리딩(조선북스刊)》이라는 책이 출간되면서 처음 조명을 받았습니다. 이 책의 저자인 하시모토 다케시 선생은 자신이 평생 활용해온 국어교육법을 이 한 권의 책에 담았습니다. 학습법은 매우 단순합니다. 국어 시간에 교과서 대신 소설책 한 권을 가지고 공부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시모토 다케시 선생은 200쪽짜리 문고판 일본소설 《은수저》를 교재로 3년 동안 학생들에게 읽기와 쓰기, 생각하기 등 다방면에서 접근한 국어 수업을 했습니다. 물론 본문만 읽는 건 아니었습니다. 책 속에 나오는 게임을 해보거나 문장 속 어구를 하나하나 알아보는 등 책을 ‘느리지만 깊고 넓게’ 읽었습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연놀이나 먹을거리 등을 실제로 따라해 보고, 주인공이 일본 시 100개를 암기하는 장면에서는 100가지 시를 카드로 만들어 암송 시합을 하는가 하면, 어려운 단어를 찾아보고 활용하여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학생들은 이 수업을 ‘놀이’로 받아들였고, 학습 의욕이 향상되면서 스스로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3년간의 슬로 리딩 학습법의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도쿄대학 합격률 1위, 교토대학 합격률 1위!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기적이 일어난 것이지요. 슬로 리딩 학습법으로 고전을 탐독한 후 대학 입시에 도전한 아이들은 “도쿄대학 국어 문제쯤은 누워서 떡먹기였다”라고 평가했으며, 200여 명의 3학년 학생 중 100위권 이하의 학생들도 무난히 도쿄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습니다. 보잘것없던 사립학교가 일본 최고의 명문고로 거듭나는 순간이었습니다. 또한 현재 102세가 된 하시모토 다케시 선생은 소설가 엔도 슈사쿠, 도쿄대학 총장 하마다 준이치, 최고재판소 사무총장 야마사키 도시미쓰, 가나가와 현지사 구로이와 유지 등 일본 최고의 오피니언 리더로 꼽히는 1000여 명을 배출한 ‘전설의 교사’가 되었습니다.



    EBS 제작진은 이 놀라운 학습법에 주목하여, 우리 현실에서 이 교육 실험을 단행했습니다. 용인시 성서초등학교 5학년 학생 60명, 그리고 3명의 교사들과 함께 한 학기 동안 박완서의 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교재로 ‘슬로 리딩’을 시도한 것입니다. 학생들에게 천천히, 깊게, 생각하며, 토론하며, 느끼며 읽도록 했습니다. 책을 읽고 알아낸 사실을 친구와 공유하고, 이를 토대로 자신의 의견과 주장을 세우고,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하도록 이끌었습니다. 아이들은 끊임없이 모르는 단어를 스스로 찾아야 했고, 주제를 정해 집단 토론을 벌였으며, 시와 소설과 기사문을 쓰고, UCC를 제작, 발표했습니다. 슬로 리딩 수업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그저 천천히 읽는 것이 아니라 오감으로 읽고, 생각하며 읽고, 스스로 읽는 것입니다.



    이 시도 또한 주목할 만한 결과를 얻었습니다. 지난 7월, 1학기 모든 과정이 끝난 뒤 아이들은 담담한 어조로 자신의 변화를 이야기했습니다. 그 결과는 독서 행태와 독서 능력을 점검하는 한 조사에서도 밝혀졌습니다. 60여 명 학생들의 독서 능력이 1학기 동안 33%의 놀라운 성장을 보인 것입니다.



    이 실험이 긍정적 결과를 얻기까지, 교사들의 노력이 가장 컸습니다. 교사들은 국내 초등학교에서 처음 시도된 슬로 리딩 수업을 위해 매주, 매시간 수업 방법과 수업 진행 상황을 고민해야 했고, 아이들의 반응과 적응 속도를 고려하며 어떻게 이끌어야 되는지 연구했습니다.



    많은 전문가들이 우리 사회의 독서 행태와 국어 교육에 대해 우려를 표합니다. 국어 수업 또한 시험을 위해 암기하는 과목으로 전락한 지 오래입니다. 하지만 그저 작가 이름 외우고, 주제와 소재를 찾고, 중요 문장과 의미를 맞추는 것이 국어 능력의 전부가 될 수는 없습니다. 책 읽기의 목표는 점수 따기, 대학 가기, 지식인인 척 자랑하기가 아닙니다. 바르고 성숙한 생각을 하고, 그 생각을 멋지게 표현하는 공부하는 인간. ‘슬로 리딩’은 그 생각의 힘을 키우는 출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