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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색과 암갈색을 섞어 만들어진 오묘한 흑빛, 이른바 ‘청다색(靑茶色)’으로 대표되는 윤형근(1928~2007)의 그림은 대담하면서도 절제미가 넘친다. 2019년 베니스비엔날레 기간 포르투니미술관(Palazzo Fortuny)에서 열린 회고전에서 큰 호평을 받으며 국제 미술시장을 매료시켰으며, 최근에는 BTS의 리더 RM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로 꼽히며 젊은 미술애호가 사이에서도 관심도가 높은 미술가다. 윤형근의 회화는 크게 아래 세 가지 특징으로 설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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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門) 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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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윽하게 번지는 ‘검은 문’ 형상이 특징인 윤형근의 ‘천지문(天地門)’ 시리즈는 1973년부터 1980년대 초중반까지 제작된 일련의 작업을 일컫는다. 마포 위에 큰 붓으로 냅다 내려그음으로써 기둥을 만드는데, 그 사이 빈 공간이 흡사 문을 떠올린다고 해 작가 스스로 이를 ‘천지문’이라고 명명했다. ‘하늘’을 상징하는 색인 청색(Blue)과 ‘땅’의 색인 암갈색(Umber)을 섞어 검정에 가까운 색을 만든 윤형근은 여기에 테레빈 기름 등을 섞어 농담을 조절해 먹과 같은 깊이감의 검은 기둥을 세우고 그사이 문을 터놓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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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흰 캔버스 아닌, 누런 마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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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형근은 하얀 캔버스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는 표백 처리를 하지 않은 천이나 마포 위에 유화 물감을 있는 그대로 스미고 번지도록 함으로써 서양의 재료이지만 동양의 정서가 느껴지도록 했다. 담박하며 절제된 조형미는 기품 있는 선비의 정신을 연상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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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시기별 번짐 정도의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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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형근은 미니멀리즘을 대표하는 미국 작가 도널드 저드(Donald Judd)와 교류하기 시작하면서 더욱 단순화된 형을 추구하게 된다. 저드와 만난 1991년을 기점으로, 검은 기둥은 더욱더 엄정하고 또렷한 사각형에 가까워지고 그 색은 한층 짙어진 칠흑빛을 띤다. 1970~1980년대 제작된 ‘천지문’ 시리즈에서는 물감이 자연스럽게 번지도록 놔뒀다면, 1990년대 중반을 넘어갈수록 이전 작업에서 보이던 엷은 번짐은 종적을 감춘다. 화면 속 검은 칼럼의 형과 색으로 작품 제작 시기를 짐작할 수 있는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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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5일까지 서울 중구 아트조선스페이스에서 열리는 ‘더오리지널II’전(展)에서는 윤형근의 ‘천지문’ 시리즈와 1990년대 이후 제작된 회화를 비롯해 박서보, 이우환, 김창열, 쿠사마 야요이의 작품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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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대한 절제미 넘치는 윤형근의 ‘검은 기둥’
윤다함 아트조선 기자
daham@chosun.com
[윤다함의 아트123]
●누런 마포 위에 그어 내려진 검은색 기둥의 대담한 ‘대치’
●‘더오리지널II’展, 내달 5일까지 아트조선스페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