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칼럼] 중등 독서, 포기하지 말고 전략적으로 접근하자
기선옥 리딩엠 목동교육센터 원장
기사입력 2021.07.22 11:04
  • 기선옥 리딩엠 목동교육센터 원장
    ▲ 기선옥 리딩엠 목동교육센터 원장

    책은 정신의 양식이라고 한다. 평생의 배움을 좌우하는 읽기의 중요성을 모르는 이는 없다. 그 때문에 부모는 아이의 미래를 설계하는 마음으로 아이의 서가를 채운다. 아이가 더 다양한 독서를 깊이 있게 하기를 바라며 책을 산다. 

    그러나 소중한 아이가 자랄수록 학부모의 독서 관리는 제대로 이루어지기 어렵다. 말을 물가에 매어 놓을 수는 있어도 억지로 물을 먹일 수는 없다고 하지 않는가. 독서는 자신의 의지가 없으면 수행할 수 없는 활동인데 사춘기에 접어들고 자의식이 강해지는 아이를 설득하기가 쉽지 않다. 학년이 오를수록 과제 양이 느는 것도 큰 문제다. 각종 수행평가에 학원 과제로 지친 아이를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게 인지상정이고, 당장 마감이 정해져 있지 않은 독서는 나중으로 슬쩍 미루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학년이 올라갈수록, 초등학생보다 중학생에게, 중학생보다 고등학생에게 독서 훈련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데 있다. 특히 중학교 3년 과정은 대학 입시 대비 전 독서 습관을 잡고 문해력을 올릴 수 있는 마지막 시기다. 이때 얼마나 책을 읽느냐에 따라 고등학교 학업 수행이 달라진다. 더 나아가 청소년 수준의 독서에서 성인 수준의 독서로 원활히 이행할 수 있느냐, 아니냐도 중학생 시기에 달려있다. 

    한국인의 문해력이 부족하다는 뉴스가 심심찮게 보도되곤 한다. 10대와 20대, 때로는 50대 60대, 세대를 막론하고 글을 이해하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 10대의 문해력을 객관적으로 평가한 결과는 어떨까?

    국제 학업 성취도 평가(PISA)는 세계 각국 15세 청소년을 대상으로 3년에 한 번씩 진행된다. 2000년대 매 평가에서 한국 학생들은 읽기, 수학능력, 과학 능력 모두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2018년 평가에 따르면 한국 학생들은 OECD 가입국 중 읽기 능력 2위에서 7위, 수학능력은 3위에서 5위 내, 과학 능력은 1위에서 4위 내 결과를 보여 주었다. 

    한국 학생들이 다방면에서 평균 이상의 학업 성취를 이루고 있다는 것은 참 기쁜 일이다. 그러나 성취도 평가란 점수대로 줄 세우기 위한 게 아니다. 한 해 한 해의 결과보다 경향성을 봐야 한다. 여러 해의 PISA 결과를 보면 한국 학생들의 수학과 과학 능력은 계속 성장세지만 읽기 능력은 2006년 이후 지속적으로 소폭 하락하고 있다. 2018년 한국 학생의 읽기 영역 평균 점수는 514점으로 이는 2009년에 비하면 25점 하락, 2015년 결과에 비해도 3점 하락한 점수라고 한다.

    읽기는 철자를 눈으로 읽어들이는 것뿐만이 아니라 그 안의 구조를 이해하고 더 나아가 세계와 접목시키는 과정이다. 과제를 많이 수행하거나 문제를 많이 푼다고 해서 키울 수 있는 능력이 아니다. 결국은 자발적인 책읽기 수행으로만 키울 수 있는 능력이다. 

    그런데 한국 학생의 독서활동 대부분은 ‘자발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책을 고르고, 정독하고, 그 후 활동까지 진행하는 학생이 드물며 이를 지원하는 시스템도 부족한 현실이다. 그러다 보니 학생시절 기껏 갈고 닦은 문해력도 갈수록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정작 그 문해력이 필요할 때, 대학 입시 후 전문 지식을 습득하고 사회에 진출해 이를 활용해야 할 때 애를 먹고 만다.

    교육부 역시 중학생의 독서량을 늘리기 위해 고심 중이다. ‘학교 교육 과정과 연계된, 자기주도적 독서 습관 함양’이 2009년 이후 중학생 대상 독서 교육의 기본 지향점이 되었다. 이를 강화하기 위해 교내에서 독서를 하게 하고, 단원 학습에서도 독서와 연계할 수 있는 수행 과정이 늘었다. 2015년 개정 국어 교과서에서 매 단원을 마칠 때마다 학생이 직접 실행할 수 있는 독서 토론 방식을 제공하는 것이 그 예다. 문법과 글의 갈래를 줄줄 외는 게 아니라 각종 텍스트를 접하고 스스로 작성해 보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매 학기 제출하도록 하는 독서기록장 활동 역시 학생의 독서를 유도하는 제도다. 독서기록장에 여러 항목을 만들어 학생이 항목을 채우기 위해서라도 더 성의있게 책장을 넘기도록 한다. 인터넷에서 대충 베끼는 것을 막고자 손글씨로 작성하도록 제한을 두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제도는 결국 ‘학생이 자발적으로’ 글을 읽지 않는 한 또 다른 과제가 된다. 학부모와 학생의 독서 수업에 대한 희망 사항을 보면 독서가 꼭 필요하다는 필요성은 절감하면서도 독서 수행을 부담스러워 하는 경향이 보인다. 결국 말을 물가에 매어 놔도 물을 마시지 않는 건 물론, 물가에 끌고 가는 것 자체가 부담되는 상황이 연이어 벌어지는 것이다.

    결국 필요한 건 현재 중학생에게 가능한 현실적이면서 유효한 독서수행 목표이자 동기 부여다. 학생에게 독서가 과제가 아닌 즐거운 여가의 방식이 되게 할 수는 없을까. 더 수준 높은 독서를 하게 하면서도 현실 과제와 병행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다독할수록 좋지만, 현재 한국의 현실상 중학생이 매주 몇 권의 책을 읽는 것은 불가능하다. 스스로 텍스트를 분석하는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학생이라면 더욱 그렇다.

    더는 여유롭게 몇 권의 책을 읽히고 이중 학생의 취향에 맞는 것을 고를 시간이 없다.

    이때 유용한 가이드가 ‘교과목 연계 독서’와 ‘진로 연계 독서’다. 실제 학교수업과 연동하도록 해 학생들에게 강한 동기를 유발하는 한편 자연스럽게 더 꼼꼼한 독서활동을 수행하게 하는 것은 현 중고등학생 독서교육 정책 방향이기도 하다. 책 읽기를 즐기지 않는 학생이라도 실제로 독서를 한 경험에 따라 수행평가 체감이 달라지면 독서의 필요성을 부정하지 못한다. 

    다음은 이 교과 연계 독서를 습관으로 끌고 갈 수 있도록 꾸준히 읽어야 한다. 책 한 권 정독을 마치는데 가장 적절한 시간은 일주일이다. 매주 한 권씩 읽는다고 전제하면 학생 입장에서도 자신의 독서 스케줄과 양을 조절하기 쉽다. 또 무턱대고 읽다가 급하면 대충 버려두는 게 아니라 일주일에 며칠, 하루 몇 시간 식으로 독서에 정식으로 시간을 할애하게 된다. 짧더라도 규칙적으로 꾸준히 독서에만 집중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세 번째로 필요한 것이 양질의 독후활동이다. 책을 읽히는 것만으로 힘든데 무슨 독후 활동을 시켜야 할지 난감하게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역으로 이야기하면, 학생 입장에서는 힘들게 책을 읽었는데 그뿐이라면 더 흥미를 느끼기 힘들다. ‘내가 읽은 책’이 ‘지금 내게 유용했다’라는 경험이 필요하다. 책 속 상황이 나와 상관없는 별세계 이야기가 아니라는 감각을 반드시 키워줘야 한다. 이때 필요한 것이 글쓰기다. 

    책을 잘 읽고 책에 애정을 가지려면 스스로 글을 써 봐야 한다. 자신이 이해한 바를 직접 쓰고, 자신의 글을 스스로 읽고 다듬는 과정이 필요하다. 내 글을 쓸 줄 알아야 남의 글이 보이고 자신과 남의 차이를 이해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자신이 지금 읽은 책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스스로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보다 직접적인 피드백은 없을 것이다. 

    꾸준한 책 읽기와 글쓰기, 이를 통해 스스로 묻고 답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미래에 대한 가장 확실한 준비가 될 것이다. 자기주도적 학습, 창의력 함양이 더욱 강조되는 요즘이다. 분야를 가리지 않는 독서야말로 우리 모두에게, 특히 자라나는 청소년에게 필요하다. 어른들은 믿기 힘들겠지만, 청소년들 역시 스스로 독서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책 읽기가 싫다는 학생은 많지만 필요 없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학생은 드물다. 필요하다는 걸 알지만 힘들고 하기 싫은 일이라는 인식을 바꿀 수 있도록, 현실을 바꿀 수 있도록 목표를 설정하고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식사도 양질의 재료를 정성스레 준비해야 우리 몸에 도움이 된다, 독서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우리 아이들도 곧 깨달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