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장 교육·소통 가이드 … ‘90년대생’이 기업도 바꾼다
최예지 조선에듀 기자
기사입력 2019.09.23 12:00

- 신입사원 교육, 피드백·평가 방식 변화 잇따라
- 의견 표현에 거리낌 없어 … 합리적 지시 요구
- 전문가들 “사회·문화적 영향 받은 측면 있어”

  • #. 식품업계에서 2년째 근무 중인 막내 사원 김혁(가명·29)씨는 팀원들의 회식 가자는 제안을 ‘오늘은 운동을 가보려고 한다’며 거절힌다. 상사가 결혼은 빨리 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면 ‘40세까지 제 자신에게 온전히 집중한 뒤 결혼하겠다’고 의견을 밝힌다. 그는 “평소 가치관을 거리낌 없이 표현한다” 며 “이러한 모습을 새롭다고 느낀 팀장이 최근 ‘90년생이 온다’는 책을 읽더라”고 했다.

    90년 이후 출생한 청년들이 일터에 자리를 잡고 있다. 이들은 주장이 뚜렷하고 합리성을 중시하며, 개인주의적인 성향을 보이는 특성을 지녔다는 평가다. 이런 성향이 이전 세대와 만나면서 기업의 변화를 이끌고 있다.

    ◇ 90년대생 특성에 맞춘 기업 교육 속속 등장

    90년대생에 대한 이질감을 호소하던 기업들은 최근 이들을 끌어안으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특히 직원교육 프로그램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과거엔 신입사원을 대상으로 교육을 했다면, 이젠 부서장을 대상으로 한 교육을 도입했다.

    LG화학은 최근 신입사원이 ‘밀레니얼 세대와의 행복한 동행’을 주제로 직접 강연하고, 이를 임원 300여명이 듣는 워크숍을 진행했다. 조직 의사결정과정에서 90년생들이 속속 참여하면서, 이들에 대한 편견을 깨고 수평적인 의사소통 문화를 정착시키는 게 기업 경영에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이 밖에도 NH투자증권은 부서장과 예비 리더를 대상으로 하는 리더십 교육의 주제를 ‘90년생을 이해하기’로 잡았다. ‘90년생이 온다’를 쓴 임홍택 작가를 직접 초청해 강연을 맡겼다. 포스코도 올해 2월 리더급 직원을 대상으로 ‘밀레니얼 세대 소통 가이드’를 제작해 나눠줬다.

    ‘리버스 멘토링’ 제도도 확산하고 있다. 이 제도는 후배가 선배에게 최신 트렌드와 문화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이다. CJ CGV는 사원 2~3명이 임원 한 명에게 4개월간 리버스 멘토링을 진행하도록 했다. 대명리조트도 ‘동상일몽’이라는 프로그램으로 신입사원이 임원의 멘토가 돼 최근 이슈나 SNS 활용법을 코칭했다.

    기존 신입사원 교육도 바뀌었다. 신입사원의 의견을 듣는 프로그램이 늘었다. 90년대생이 사업 아이디어를 제안하도록 해 최신 트렌드를 반영하고 사원의 업무참여를 높이기 위해서다. SK그룹은 이런 교육을 통해 4분기부터 버려지는 플라스틱을 줄이기 위해 유심 플레이트 크기를 반으로 축소하는 등 실제 경영에도 반영했다. 이외에도 CJ, LG 등 대기업들이 이 같은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있다.

    소통 노력을 강조하는 양상도 보인다. 현대백화점그룹은 올 하반기 ‘일대일 맞춤형 코칭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신입사원의 관심사, 흥미, 학습스타일을 분석해 코칭하고, 이를 바탕으로 만든 ‘코칭 방안’을 부서 팀장에게 전달한다. NHN은 평가할 때 객관식 결과뿐 아니라 주관식 서술로 직원의 태도, 결과, 기대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새로운 성과관리 시스템을 도입했다. 등급만 알려줘서는 성장을 도울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아예 인사제도까지 수정하는 회사도 있다. 사내 부서이동을 자유롭게 하는 ‘사내공모제도’를 넘어, 최근에는 공개적으로 이직 가능성을 열어주기도 한다. 신입사원들이 직장에 요구하는 발전 가능성을 열어둬 직무 몰입을 높이는 방법이다. 송한상 딜로이트 컨설팅 상무는 “조직 밖으로까지 성장할 수 있도록 고객사 이직 정보를 경력관리 시스템에 공개해 둔다”며 “개인의 가치를 올리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게 회사의 성장에도 도움이 된다고 여긴다”고 했다.

    ◇ “직업 유연성 높아진 시대, 평생직장 없어”

    이런 변화는 90년대생의 세대적인 특성을 수용하기 위한 노력이다. 90년대생과 이전 세대를 가르는 가장 큰 차이는 조직에 대한 인식이다. 기업들은 대체로 90년대생이 기업의 지시에 무조건적으로 순종하지 않는 것으로 여기고 있다. 평생 한 직장에 머물 수 있단 기대가 없기 때문이다. 최근 한 종합상사에 입사한 김은경(가명·24)씨는 “평생직장은 없다”며 “지금 일하는 곳에서 경험을 쌓고 좋아하는 일을 찾아 발전시킬 예정”이라고 말했다.

    대기업에서 근무하는 2년차 사원 최준수(28)씨는 “지금 다니는 기업이 30년 후에도 남아있을 것이란 확신이 없다”며 “조직에 헌신하고 희생하는 게 삶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강하다”고 했다.

    이 때문에 수직적이고 강압적인 일처리보다 수평적이고 합리적인 방식을 선호한다. 이 과정에서 갈등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 올해 상반기 홍보업체에 입사한 장지영(가명·25)씨는 “비합리적인 지시에 반발하면 ‘윗사람이 잘못해도 수긍해야 한다’는 반응이 돌아와 답답하다”고 지적했다.

    이런 특성은 사회변화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다. 90년대생은 성장을 기대할 수 없는 ‘수축사회’를 맞이하는 첫 세대다. ‘미래공부’(글항아리)를 쓴 미래학 전문가 박성원 작가는 “청년층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기대가 없다”며 “희망이 없으니 조직에서 자신의 주장을 굽혀가며 인내할 이유도 찾지 못하는 것”이라고 했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교수는 “90년대생의 특성은 사회적 변화에서 비롯하므로 기존의 조직문화를 강요하거나 일방적으로 교훈을 전하려는 방식으로는 바뀌지 않을 것”이라며 “세대 변화에 맞게 기업이 바뀌려는 노력을 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