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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강 신청 성공!”
학부생 시절 개강을 앞두고 재학생과 벌여야 했던 치열한 수강 신청 전쟁은 없었다. 국내 대학의 강의를 무료로 수강할 수 있는 케이무크(K-MOOC·한국형 온라인 공개강좌)는 수강 인원에 제한을 두지 않아 제약 없이 원하는 강좌를 들을 수 있었다. 지난달 13일, 그렇게 샐러던트(Saladent·공부하는 직장인) 대열에 합류했다.
샐러던트가 된 이유는 연초 세웠던 목표를 2019년 하반기 뒤늦게나마 달성하기 위해서였다. 올해 우리나라 직장인들이 새해 소망 1위로 꼽은 ‘자기계발’을 기자도 하겠다 마음먹었지만, 작심삼일에 그친지 오래였다. 실제로 한국교육개발원이 내놓은 ‘2018 한국 성인의 평생학습실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만 25~79세)은 ‘직장업무로 인한 시간부족’ ‘가족부양에 따른 시간부족’ ‘학습비가 너무 비싸서’ 등의 이유로 자기계발에 필요한 학습에 참여하지 못한다고 한다. 크게 공감했다.
시간과 공간 제약 없이 언제, 어디서나 들을 수 있어 성인 학습자들이 선호한다는 온라인 강의를 알아보기로 했다. 다양한 온라인 강의 사이트 가운데 2015년부터 정부에서 운영하는 케이무크가 눈에 들어왔다. 3년새 가입자 수가 3배 이상 증가했고 올 4월 기준 20~39세가 가입자의 약 60.6%(25만1848명)를 차지한다는 무료 학습 플랫폼이었다. 성인 학습자들을 위해 케이무크는 올 9월부터 학점은행제 과정도 운영하기로 했다. 학점은행제 과정 운영을 앞두고, 케이무크가 과연 젊은 성인 학습자들의 관심을 끌 수 있을 지 직접 확인해봤다.
◇원하는 어학·IT 분야 강의는 없었다
케이무크에는 지난달 30일 기준 총 523개의 강의가 개설돼 있다. 전 세계 유명 무크(유명 대학 강의를 무료로 수강할 수 있는 교육과정) 사이트인 코세라(coursera)와 에덱스(edx)가 올 1월 기준 각각 3708개, 2537개의 강의를 보유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강의 수가 굉장히 적다. 그래도 500여 개의 강의가 있으니 ‘골라 듣는 재미가 있지 않을까’ 싶었다.
성인 학습자의 참여율이 높다는 직업능력향상 교육을 찾아보기로 했다. 외국어, 그중에서도 영어회화에 전념해 외국인과 인터뷰 진행 시 느꼈던 영어 울렁증을 극복하는 게 목적이었다. 회원가입 후 ‘영어’를 입력하자 단 두 개의 강의가 나왔다. 영문법과 외국인 관광객을 응대할 때 쓰는 표현을 알려주는 강좌였다. ‘검색어를 잘못 입력했나’ 하는 마음에 다양한 단어들을 검색해봤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실망감을 뒤로하고 그다음 관심사였던 소프트웨어 자격증 과정을 알아봤다. 직장인들의 업무 능력을 향상시켜줄 엑셀·파워포인트 등 주요 소프트웨어 프로그램 강좌 수 역시 ‘0’. 실무에 도움될만한 외국어와 IT 분야 강의가 없다니….
이는 케이무크가 대학의 참여로 운영되는 시스템이라서다. 케이무크는 사업 신청서를 낸 대학의 강좌 가운데 강좌 운영 역량, 우수성 등을 평가해 개설 가능한 강좌를 선정해 보조금을 주는 식으로 운영된다. 사회적으로 아무리 수요가 높은 분야라 해도 관련 콘텐츠를 제작해 보급하겠다는 대학이 없으면 강의가 개설되지 못하는 것이다. 아쉬운 부분이었다.
고민 끝에 창업과 애니메이션을 주제로 한 강의를 선택했다. 전자는 지난해 이수자를 대상으로 한 만족도 조사에서 상위권에 오른 강좌였고, 후자는 평소 관심사였던 애니메이션 분야의 전문지식을 채우기 위해 고른 강좌였다. 모두 강좌 운영 기간이 지나 학점 인정이나 이수증 발급이 이뤄지지 않고 청강만 가능한 강좌였다. ‘수강 신청’ 버튼을 누르고 강의 자료를 인쇄한 뒤 책상 앞에 앉았다.
◇‘공짜라 내용 별로일 것 같다’는 선입견, 맞을까
“무료면 강의 퀄리티가 떨어지지 않을까?”
반신반의하며 케이무크를 시작했지만, 재생 버튼을 누르고 마주한 첫 강의는 생각보다 알찼다. 동영상 길이가 20분 남짓이라 책상 앞에 오래 앉아 있어 좀이 쑤시는 일이 없다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기자가 선택한 강의만 이런 건 아니었다. 케이무크를 운영하는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은 영상 가이드라인을 통해 수강생들의 집중력을 높일 수 있도록 각 대학에 가급적 강좌 영상을 15분 내외 길이로 제작할 것을 권했다고 한다.
수강생 입장에서 온라인 강의 집중력을 높이는 또 하나의 요소는 영상 편집이다. 칠판을 배경으로 교수의 얼굴과 뒤통수만 뚫어져라 바라보는 일은 없었다. 교수의 모습을 다양한 각도에서 담아 좀 더 생생하게 강의를 듣는 느낌을 받았고 관련 영상과 사진 자료도 틈틈이 화면에 등장했다.
다른 강의의 영상 편집은 어떨까. 임의로 다른 서너개 강좌를 골라 영상을 살펴보니 대학별로 동영상 영상 편집의 차이가 컸다. 화면에 나오는 글씨 크기가 작거나 글이 지나치게 많이 등장하는 강의도 더러 있었다. 센스 있고 보기 좋게 편집된 유튜브 영상과 비교하면 한참 뒤처진 느낌이었다.
복습 차원에서 그날 배운 내용을 다시 한 번 훑어본 뒤 컴퓨터를 종료했다.
◇이수율 vs 수강신청 건수
케이무크의 강의는 기본 6주 이상이다. 그중 절반 이상은 수강해야 한다고 생각해 한 달 정도 강의를 듣기로 했다.
2주차부터는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수업에 임했다. 책상에 가만히 앉아 필기하면서 봐야 한다는 생각보다 유튜브 영상을 시청하듯 편안하게 강의를 보기로 했다. 출퇴근 시간과 점심, 침대에 누워 쉴 때도 스마트폰을 이용해 강의를 봤다. 덕분에 샐러던트 3주차까지 ‘일주일에 세 강의 이상 보기’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다. 주제가 흥미로울 때는 하루에 세 개 이상 시청한 날도 있었다.
강제성이 없다 보니 개인의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했다. 뭐든 마음먹기 나름이라는 인생의 진리를 또다시 느끼는 순간이었다. 흥미가 높은 분야를 선택하거나 자기주도적 학습 습관이 밴 사람이 아니라면 강좌를 끝까지 이수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지난해 박경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가평생교육진흥원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5~2017년 3년 동안 케이무크 강좌를 끝까지 이수한 교육생 비율은 평균 9.2%였다. 10명 중 1명만 강의를 완벽하게 들었다는 얘기다. 지난해 이수율은 이전보다 소폭 상승한 약 12%였다.
그러나 이수율로 케이무크의 효과를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수강 신청 건수의 경우 2015년 약 5만에서 2017년에는 44만, 2018년에는 77만 건으로 매년 증가 추세기 때문이다. 기자 역시 이수율로 따지면, 100%가 되지 않지만 3주간 두 개의 과목을 통해 심리적 만족감과 교양 함양은 달성할 수 있었다.
다만 취미생활을 즐기고 싶거나 기술 교육, 자격증 취득을 원하는 직장인은 실망할 수 있다. 관련 강좌 수가 현저히 적기 때문이다. 최근 취미생활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준비물까지 주는 온오프라인 플랫폼이 활성화된 상황에서 케이무크의 경쟁력은 약해 보인다. 심리적 만족감이 크다면 기꺼이 돈을 지불하고 서비스를 이용하는 ‘가심비(價心比)’ 중심 소비자들에게 케이무크가 과연 매력적으로 다가갈 수 있을까.
3주간 퇴근 후 유튜브 영상 대신 대학 강의 들어보니…
-[기자 체험기] 한국형 온라인 공개강좌 ‘케이무크’
-시간·장소 구애 없지만 개설 강좌 다양성 아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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