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선수 ‘강간피해’ 등 언어·신체·성폭력 만연
이재 조선에듀 기자
기사입력 2019.12.16 14:45

-인권위, 7월~10월 대학 102곳 선수 7031명 인권 실태조사
-언어폭력 1514명, 신체폭력 1613명, 성폭력 473명 등 심각

  • 대학교 학생선수가 숙소나 운동장에서 선배와 지도자들에게 일상적인 언어·신체폭력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강간피해가 드러나는 등 성폭력 피해도 심각한 수준으로 드러났다. 

    국가인권위원회 스포츠인권특별조사단은 지난 7월부터 10월까지 대학 102곳, 대학교 학생선수 7031명에 대한 인권상황 실태조사를 했다. 4924명이 참여했다. 인권위는 추가 개방형 질문 조사와 학생선수 28명에 대한 개별조사 등을 토대로 한 조사결과를 16일 발표했다. 

    학생선수 10명 중 3명(31%·1514명)은 언어폭력에 시달렸다고 응답했다. ‘자존심을 건드리는 말이나 욕, 비난, 협박’ 등을 들었다고 답했다. 언어폭력이 이뤄진 장소는 주로 경기장(88%)과 숙소(46%)다. 선배선수(58%), 코치(50%), 감독(42%) 등에 의해 언어폭력을 당했다. 인권위는 피해자들이 감독과 코치, 선배로 내려오는 수직적인 위계문화 속에서 생활공간인 경기장과 숙소 등 어디에서도 언어폭력을 피할 곳이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신체폭력을 경험한 학생선수도 33%(1613명)에 달했다. 이 가운데 15.8%(255명)는 일주일에 1~2회 이상 상습적인 신체폭력을 당한다고 답했다. 앞서 2010년 인권위가 조사한 ‘대학생 운동선수 인권상황 실태조사’ 결과에 나타난 11.6%보다 증가한 수치다. 

    ‘머리박기, 업드려뻗치기’(26.2%·1291명)가 가장 빈번했고, ‘손이나 발을 이용한 구타 행위’(13%·640명) 순으로 나타났다. 

    신체폭력 역시 선배선수(72% 1154명), 코치(32%·516명), 감독(19%·302명)에게 당했고, 남녀차이는 드러나지 않았다. 신체폭력이 빈번한 장소는 기숙사(62%·993건)가 가장 많았다. 함께 생활하는 선배선수나 지도자들로부터 편안한 휴식을 보장받지 못한 셈이다. 

    성폭력 피해도 있었다. 피해 경험자는 9.6%(473명)이다. ‘특정 신체부위의 크기나 몸매 등 성적 농담을 하는 행위’(4%·203명, 남 3%·여 9.2%), ‘운동 중 불쾌할 정도의 불필요한 신체접촉 행위’(2.5%·123명, 남 2.2%·여 3.3%) 순으로 나타났다. 여학생이 언어적 성희롱의 위험이 더 컸고, 남자선수는 ‘누군가 자신의 실체 일부를 강제로 만지게 하거나 마사지, 주무르기 등을 시키는 행위’(4.3%·176명)가 가장 많았다고 응답했다. 

    이 같은 학생선수의 인권상황은 초중등 학생선수보다 열악한 수준이다. 실제 지난 11월 인권위가 발표한 초중고 학생선수 인권실태 전수조사에 따르면, 언어폭력이나 신체폭력 등을 당한 초중등 학생선수 비율은 각각 15.7%, 14.7%로 나타났다. 성폭력은 3.8%다. 

    여자선수가 언어적 성희롱을 당하는 장소는 훈련장이 많았다. 인권위 측은 “공개된 장소에서 성적 대상화되는 피해를 입어 심각성이 더하다”고 설명했다. 

    강간피해도 드러났다. 인권위의 조사에 따르면 성폭행에 해당하는 ‘강제로 성행위(강간)를 당한 경우’ 도 2명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슴이나 엉덩이, 성기 등을 강제로 만짐’(1.2%), ‘신체부위를 몰래 혹은 강제로 촬영함’(0.7%) 등 정도가 심각한 강제추행이나 불법촬영도 조사됐다. 

    성폭력 발생 시 대처는 대부분 대처하지 못하거나 소극적인 항의에 그쳤다. 여자선수는 ‘아무런 대처를 못했다’(34%·42명)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남자선수는 ‘싫은 내색을 했다’(40%·137명)는 응답이 많았다. 

    이 밖에도 성인인 대학생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사례가 빈번했다. 외출·외박을 제한하고, 통금시간을 정하거나 점호를 하는 등이다. 복장에 제한을 두거나 선배와 한 방에 배정해 허드렛일을 떠넘기는 식의 군대문화도 여전했다. 

    학생선수 가운데 84%(4184명)는 현재 대학 내 기숙사나 별도의 합숙소에서 합숙 생활을 했다. 이들은 주로 관리가 필요하다는 이유 때문에 학년을 섞어 방을 배정받았다. 선후배가 한 방에서 생활하면서 저학년 학생선수가 고학년 학생선수의 잔심부름과 방 청소, 빨래 등을 도맡아 하게 되고, 이런 위계문화 속에 새로 들어오는 후배에게 허드렛일을 대물림하는 구조가 지속했다. 

    개별조사에 따르면, 외출·외박을 제한할 뿐만 아니라 통금, 점호 등 과도한 통제가 드러났다. 학생선수 가운데 26%(1088명)는 ‘부당하게 자유시간, 외출·외박을 제한 받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또 25%(1005명)가 ‘헤어스타일, 메이크업, 액세서리 착용, 패션 등에 제한받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이 같은 통제와 규율은 팀워크 증진이나 정신무장 등 불합리한 이유로 지속했다는 게 인권위의 설명이다. 

    과도한 운동량으로 학업병행이 곤란한 수준이라는 점도 이번 조사에서 드러났다. 학생선수 가운데 76%(3579명)가 주말과 휴일에도 운동한다고 응답했다. 38%(1839명)는 하루 5시간 이상 운동을 한다고 답했다. 3시간 이상 운동한다고 답한 학생선수는 86%(4215명)다. 이 같은 운동시간 때문에 학생선수 76%(3736명)가 평소 운동시간이 길다고 느꼈다고 답했다. 

    운동 이외의 다양한 경험을 쌓을 기회도 박탈당했다. 학생선수 가운데 60%(2928명)는 학교 행사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인권위는 이번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학생선수의 인권침해 실태가 인간다운 삶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판단된다며 개선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조사에 참여한 이규일 경북대 체육교육과 교수는 “대학교 학생선수들의 자기결정권이 억압받고 있고, 성인으로서 누려야 하는 자율 대신 관리라는 명목으로 통제된 삶을 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이 교수는 ▲운동 중심의 운동부 문화 해체 ▲자율 중심의 생활로의 전환 ▲일반학생들과 함께 생활하는 통합형 기숙사 운영 방식 전환 등을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