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대학 캠퍼스 마스코트 “나야 냥!”
최예지 조선에듀 기자
기사입력 2019.12.13 13:24

- 학생들 십시일반으로 돈 모아 아픈 고양이 치료 도와줘
- 아끼는 맘에 준 간식에 비만 고양이 속출… 간식 금지령
- 캠퍼스 길고양이 돌봄 동아리, 급식 배부·TNR 활동 진행

  • 고려대 고양이 돌봄 동아리가 진행하는 망한 고양이 사진 대회 / 고고쉼 제공
    ▲ 고려대 고양이 돌봄 동아리가 진행하는 망한 고양이 사진 대회 / 고고쉼 제공

    # 지난 10월 고려대학교 안암캠퍼스. 학생들이 아끼는 길고양이 짜왕이가 구토했다. 학내 고양이 돌봄 동아리 ‘고려대 고양이 쉼터(고고쉼)’ 부원들이 병원에 데려가 보니, 짜왕이는 ‘범백’을 앓고 있었다. 백혈구가 급격히 줄어들어 고양이에게 치명적인 병이다. 범백은 짜왕이와 형제인 짜짜로니에게도 발견됐다.

    이들을 살려내기 위해선 고액의 치료가 필요했다. 예산 부족에 치료를 포기하려던 차, 고려대 학생들이 손을 모았다. 고고쉼이 한 달간 진행한 긴급 모금에서 학생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은 금액은 무려 1200만원가량. 이들의 도움으로 짜왕이와 짜짜로니 형제는 치료를 받고 무사히 퇴원했다. 

    대학교 캠퍼스에 거주하는(?) 길고양이들에게 학생들의 따뜻한 손길이 이어지고 있다. 학생들이 지어준 이름으로 불리는 길고양이들은 캠퍼스 ‘마스코트’ 급으로 인기다.

    고려대 안암캠퍼스의 ‘고독한 고양이방’에는 약 250여명의 학생이 활동하고 있다. 이 채팅방의 목적은 오로지 고려대 길고양이 사진을 공유하는 것이다. 다른 사진을 올리거나 잡담을 하는 것은 금지사항이다. 캠퍼스 고양이 사진을 꾸준히 올리는 학교별 돌봄 동아리 소셜미디어(SNS) 채널도 인기가 어마어마하다. 팔로워가 수천 명에서 수만 명에 이른다. 여기 올라온 고양이 사진에는 ‘대학 생활의 낙’ ‘스트레스가 눈녹듯이 풀린다’는 반응이 줄 잇는다.

    학생들의 넘치는 애정은 오프라인으로 이어진다. 많은 학생들이 등교할 때 맛있는 간식을 챙겨 나온다. 이 때문에 비만 고양이가 속출할 정도다. 하나둘씩 준 간식이 모이면 수십 개에 달해 고양이들은 쉽게 뚱뚱해진다. 급격한 체중 증가를 겪으며 ‘비포애프터’ 사진도 등장했다. 위에 간식이 가득 차 토하는 경우도 있다. 건강 우려에 최근 일부 캠퍼스에는 ‘고양이 간식 금지령’도 생겼다. 강찬영(20) 중앙대 고양이 냥침반 회장은 “간식을 너무 많이 먹어서 구내염이 발생하기도 한다”고 했다.

    캠퍼스 길고양이를 전담해 돌보는 학생들도 있다. 학내 고양이 돌봄 동아리 부원들이다. 대학별로 '연세대 냥이는 심심해’, 고려대 ‘고고쉼’, '중앙대 냥침반’, '국민대 고양이는 추어오’ 등의 동아리가 활동하고 있다. 연세대 대학원생 김세진(26)씨는 “입부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며 “TNR(길고양이 중성화 수술)의 정의와 의미를 서술하라는 문제가 나오는 등 입부 시험이 까다롭다”고 했다.

  • 연세대 고양이 돌봄 동아리가 마련한 고양이집. / 최예지 기자
    ▲ 연세대 고양이 돌봄 동아리가 마련한 고양이집. / 최예지 기자

    이들은 다양한 길고양이 돌봄 사업을 진행한다. 매일 급식소에서 사료를 급여하고, 개체 수를 줄이기 위해 정기적으로 TNR을 진행한다. 응급한 고양이가 생기면 치료를 진행하고, 입양이 필요한 경우가 생기면 입양을 중개해주기도 한다. 요즘과 같이 추운 겨울날에는 보온성을 높인 ‘겨울집’을 마련한다. 차 시동을 걸기 전 보닛을 두드려, 추위를 피해 차체로 숨어든 고양이들에게 경고를 해야 한다는 캠페인도 진행하고 있다.

    활동비는 다시 고양이를 아끼는 학우들 손에서 나온다. 이들 동아리는 상시 기부금을 받고 있으며, ‘고양이 굿즈’를 판매해 자금을 마련하기도 한다. 스티커, 메모지, 엽서, 그립톡(스마트폰 손잡이)과 같은 일상용품을 비롯해 고양이 증명사진, 신분증 등 아이디어가 톡톡 튀는 상품도 있다. 인기상품은 빠르게 동난다. 이를 얻기 위해서는 수강신청하듯 빠르게 온라인 신청을 해야 한다.

    학내 구성원들의 반응은 대개 따뜻한 편이지만, 이러한 활동이 늘 환영받는 건 아니다. 학교 본부가 불편하게 여기기도 한다. 길고양이를 챙기기 위해 마련한 급식소, 겨울집 등의 시설을 철거해달라고 요청하는 경우도 있다. 불법 설치물이라는 이유에서다.

    학내 갈등으로 번지기도 한다. 길고양이를 싫어하는 학생들도 있는 까닭이다. 학교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고양이밥에 농약을 타겠다’와 같은 협박성 게시물이 올라온다. 실제로 고양이 돌봄 동아리에는 고양이 폭행 제보가 더러 들어온다. 사망 사건도 있었다. 올해 3월, 국민대에서 가장 유명했던 고양이 ‘유자’는 동물 학대로 목숨을 달리했다.

    이를 방지할 뾰족한 대책은 없다. 고고쉼의 모르집사(활동명)는 “동물학대에 강경하게 대응하고 싶어도, 구두 경고를 하는 수준에 그칠 수 밖에 없다”며 “동물을 죽였을 때 생명을 해친 것이 아닌 재산 손괴로 처벌받는 현행법상, 길고양이 학대는 충분한 처벌을 받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토로했다. 이어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면 생명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법이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