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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국대학교에 재학 중인 김모씨는 2019년 2학기부터 살던 충무학사에서 지난 7일 급작스럽게 퇴사 또는 이주를 통보받았다. 대학 측은 개강 전 코로나19 확산에 대비해 중국 유학생을 충무학사에 격리 수용할 계획이라며, 12일까지 퇴사 또는 남산학사로 이주해달라는 공지를 내렸다. 남산학사로 부랴부랴 짐을 직접 나른 A씨는 또 한 번 난처한 상황에 빠졌다. 기숙사비가 상대적으로 비싼 남산학사에 거주하려면 무려 85만원에 달하는 차액을 당장 지불해야 한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김씨는 “코로나19로 인한 학교의 조치에 대한 비용을 왜 학생이 부담해야 하느냐”며 “부모님께 말씀드릴 수 없는 상황이라 기존 6개월에서 4개월로 거주 기간을 줄여 입사하기로 했다”고 털어놨다.
# 최근 중국 유학생 격리와 관련해 한양대학교 학생생활관에 문의전화를 했던 이모씨는 황당함을 느꼈다. 2생활관과 개나리관 거주 학생들에게 퇴사 통보가 내려진 직후였다. 이씨는 “학교 측에 물어보니 2생활관은 중국 유학생을 격리하는 공간으로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는데, 학생들에게 방을 빼라고 할 이유가 없지 않으냐”며 “그럼에도 자세한 설명을 듣지 못한 채 일단 5생활관으로 짐을 옮겨야 하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대학가에 개강을 앞둔 중국 유학생들이 속속 돌아오면서 코로나 19 확산 우려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개별 대학이 잇달아 내놓은 조치에 학생들이 분통을 쏟아내고 있다. 정부가 유학생 관리를 각 대학에 떠넘기면서 오히려 학생들의 이중고가 극심해지고 있단 지적이 나온다. 앞서 교육부는 지난 5일 개강을 맞아 입국하는 중국 유학생을 각 대학의 기숙사에 격리 수용하라고 권고했다. 각 대학은 중국 유학생을 격리할 공간을 마련하고, 관리 대책을 수립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그러나 각 대학이 단시간에 대책을 통보하며 학생들 사이에서 혼란과 불안감만 커진 상황이다. 동국대의 경우 충무학사를 중국 유학생 격리용으로 활용하고, 국내 학생들은 남산학사에 입사할 수 있도록 했다. 남산학사와 충무학사의 기숙사 비용은 거주 기간과 수용 인원에 따라 최소 29만5000원에서 최대 124만9000원가량 차이가 난다. 이로 인해 많은 학생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거주 기간을 줄이거나, 퇴사를 결정했다. 충무학사 6인실에 거주했던 고모(25)씨는 “집과 학교의 거리가 멀어 한 달 교통비와 6인실 한 달 거주비용이 크게 차이 나지 않았지만, 남산학사는 기존 금액의 두배에 달하는 탓에 부모님과 상의해 퇴사를 결정했다”고 전했다.
대학 측이 기숙사에 거주하는 학생들에게 일방적인 통보만 했을 뿐, 별도의 양해를 구하지 않았다는 점에 대한 논란도 있다. 기숙사생들을 대상으로 한줄짜리 문자메시지로 퇴사 또는 이주를 선택하게끔 하거나, 홈페이지 공지사항으로 기간이나 비용 등에 대한 안내문을 올린 게 전부인 탓이다. 한양대에 재학 중인 김모(25)씨는 “중국 유학생들을 격리할 장소가 부족한 탓에 일부 기숙사생들이 짐을 옮겨야 하는 상황인 점은 이해한다”면서도 “그래도 대학이 학생들과의 소통에 너무 소홀했다. 일방적으로 통보하고, 생활관 행정실에 연락해도 ‘모르겠다’는 태도로 일관하니 학생으로서 막막하지 않겠느냐”고 비판했다. -
이 같은 진통 끝에 각 대학 기숙사에 중국 유학생을 격리 조치해도 실효성에 대한 의문은 여전하다. 기숙사에 수용하는 인원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번 학기를 앞두고 동국대 충무학사에 입사하는 중국 유학생은 60여명으로 예상된다. 한양대는 게스트하우스(최대 40명)와 개나리관(최대 90명)에 130여명을 수용할 계획이다. 이 때문에 대다수 중국 유학생들은 대학가의 원룸과 고시원 등으로 흩어질 전망이다. 지난해 기준 중국 유학생이 많은 대학 상위 10위권에 속하는 이들 학교의 유학생 숫자가 각각 2286명, 2949명에 달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국 유학생이 많은 타 대학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서울의 모 대학은 수도권의 캠퍼스에 있는 기숙사에 유학생을 일괄 수용하는 방침을 결정했지만, 해당 캠퍼스 학생들의 반발을 우려해 이를 알리지 않고 있다.
대학은 자체적으로 중국 유학생 격리와 관리 문제를 동시다발적으로 해결해야 해 어려움이 크다는 입장이다. 동국대 관계자는 “학생의 건강과 안전이 위협받을 수 있는 비상상황인 만큼 기숙사생들에게 부득이하게 양해를 구할 필요가 있는 상황”이라며 “이번 사태로 유학생 관리 비용이 늘어나고 있어 현재로선 학생들이 남산학사로 이주하면서 추가로 낸 금액을 대학 차원에서 보전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한양대 관계자는 “2생활관은 개나리관과 거의 붙어 있고, 화장실과 샤워실이 공용이기 때문에 격리 시설로 부적합하다고 판단해 모든 방을 비우도록 했다”며 “당초 기숙사에 살겠다고 신청한 중국 유학생들을 격리하기 위해선 일부 생활관의 휴관이 불가피하며, 이들을 제외한 나머지 유학생들에게는 고시원이나 친척집 등에서의 자가격리를 권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이처럼 각 대학이 코로나19 대응에 허덕이는 상황에서 정부가 보다 구체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대학 관계자는 “대학이 자체적으로 한 대학에 들어오는 중국 유학생 전체 인원을 관리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교육부에서 지방자치단체와 협력해서 기숙사 이외의 추가 공간 확보에 나서겠다고도 했지만, 아직도 뚜렷한 대책이 없다”고 꼬집었다. 또 다른 대학 관계자는 “중소 규모의 대학은 특히 상위 기관인 교육부의 지침만 바라보고 있는 상황인데, 권고만 남발하고 있어 답답하다”며 “대학 입장에선 지자체를 통해 적어도 수천명에 이르는 유학생들을 수용할 공간을 당장 마련한다는 대안 자체도 현실성이 없다고 본다”고 밝혔다.
“제대로 된 대책도, 소통도 없다” 기숙사 입사 앞두고 대학가 혼란
-대학들, 일방적 방침에 학생들로부터 뭇매 맞아
-기숙사 수용되는 유학생은 극소수… 실효성 의문
-대학 측 “자체 대응 어려워… 정부 대책 마련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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