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에듀 오피니언] 日 수출규제에 팔걷은 대학 ‘기술 불일치’ 해소 관건
이재 조선에듀 기자
기사입력 2019.08.20 11:21

-대학, 신규기술 대비 기술이전 효용성 1점대로 낮아
-SCI연구, 취업용 산학협력으로 산업계와 기술 불일치

  • 대학들이 일본의 수출규제에 대응해 국내 기업에 손을 내밀고 있다. 국내 기업의 기술 역량 강화를 도와 부품과 소재, 장비산업을 국산화하는데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KAIST(한국과학기술원)와 서울대학교가 각각 ‘KAIST 소재·부품·장비 기술자문단’과 ‘기술자문 특별전담팀’을 꾸렸다. 이어 대전·충남지역 11개 대학 총장들이 긴급간담회를 열고 대덕연구단지 내 정부출연연구소와 지역 기업의 전략소재·부품 원천기술 개발에 협력하기로 했다. 고려대학교는 19일 기술분야의 협력뿐만 아니라 통상과 조세, 수입국 다변화 등 산업체의 애로사항 전반을 고려대의 역량을 모아 지원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일본을 주요 교섭국으로 둔 반도체 등 중소기업은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일본의 수출규제로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하는 품목은 어림잡아 1194개에 달한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 7월 긴급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중소기업 10곳 중 6곳(59%)은 6개월 이상 버티기 어렵다는 전망까지 내놨다. 대체재 마련이나 수입국 다변화 등 대안 마련까지는 6개월 이상 걸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어 어려움은 한동안 지속할 전망이다.

    대학의 동참은 그래서 고맙다. 특히 원천기술을 확보해 대체재 마련을 앞당기고 수입국을 다변화할 수 있도록 각종 통상문제를 돕는다면 중소기업의 줄도산을 막고 경제적인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데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관건은 기술력 격차의 해소다. 국내 대학은 수년간 산학협력을 강조해왔지만 기술력 면에선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기술력은 사실상 양극화 수준이다. 산업현장에서 필요한 기술과 대학이 연구하는 기술이 맞지 않는 ‘불일치’가 심각하다. 한 대학 관계자는 “규모가 큰 대학은 기술력의 초점을 국제학술저널 등재 수준으로 맞췄기 때문에 국내 중소기업이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이 몇 없다”고 지적했다. 대학들이 SCI급 논문을 교수들의 평가잣대로 들이대면서 실제 산업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기술 개발이나 연구에는 소홀했던 탓이다.

    중소규모의 대학 기술력도 당장 필요한 산업현장의 기술력과는 괴리가 있다. 산업현장에서 요구하는 연구력을 대규모로, 장기간 지속하지 못하기 때문에 당장 대체재를 마련하는 연구까지 나아가기엔 어려움이 크다.

    실제 대학과 산업현장의 기술 불일치는 기술이전 규모를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 5월 공개한 공공부문의 기술사업화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2016년 현재 대학의 기술이전료 수입은 681억원에 불과했다. 2007년 150억원보다 4배 이상 늘었지만 같은 기간 공공연구소이 기록한 1099억원에 비하면 여전히 낮은 규모다.

    미국 등 기술이전 선진국과 비교하면 더욱 초라하다. 2012년 대학이 보유한 신규기술은 1만2482건이지만, 기술이전 건수는 2431건이다. 투입된 연구개발비와 기술료 수입을 비교해 산출하는 기술이전 효용성 지수는 1.05로 극히 낮다. 같은 기간 미국은 기술이전 효용성 지수가 3.22로 3배 이상 높게 나타났다. 정부가 2012년 이후 공공연구소와 대학의 기술이전 효용성 지수를 통합·발표해 더는 대학의 수치를 확인할 수 없지만, 이 격차가 크게 좁혀졌을 것으로 기대하긴 어렵다.

    전남지역 대학 한 산학협력단장은 “대학들이 오랫동안 산업현장과 유리된 기술연구에 치중해왔다”며 “산학협력 기조도 연구개발이 아닌 학생 인턴십 채용과 현장실습 등 취업위주로 진행돼 기술 불일치를 해소하는 데도 기여하지 못한 게 사실”이라고 꼬집었다.

    일본의 수출규제로 말미암아 산업계의 어려움이 날로 증대될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정부도 이를 억제하기 위해 대학의 3,4학년을 대상으로 한 현장인력 양성과 기술개발을 지원하기로 했다. 일본의 수출규제가 사실상 대학의 새로운 도전의 장으로 펼쳐진 셈이다. 지금이야말로 대학이 가진 역량을 발휘해 국내 산업계의 기술력 전반의 향상을 도모하고 실제 사회에 보탬이 되는 연구를 시작할 수 있는 계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