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다시 뜨거워진 ‘전문연구요원제도’ 축소 논란
최예지 조선에듀 기자
기사입력 2019.06.03 09:57

- 2016년 철회한 ‘전문연’ 폐지 … 연내 다시 축소 계획 발표
- “병력 부족한데 엘리트 특혜라니” vs “특혜 아닌 인재 특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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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일보 DB
    국방 당국이 병력을 확보하기 위해 이공계 병역특례인 전문연구요원제도(전문연)를 축소하겠다는 계획을 연내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4개 과학기술원이 반대 의견을 밝히고 나서는 등 이공계 학계를 중심으로 논란이 재점화하고 있다.

    전문연은 과학기술 연구 분야의 석사학위 소지자가 연구기관에서 연구개발 업무로 군 복무를 대체할 수 있는 제도로 1973년부터 운영하고 있다. 병무청은 현역병 충원에 지장이 없는 범위에서 전문연구요원 인원을 결정하고 있다. 병무청에 따르면 내년 규모는 올해와 같은 2500명이다.

    ◇ 국방부 “전문연 축소 포함한 병력 기본계획 연내 발표”

    국방부는 전문연을 축소하는 계획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 인사복지실 관계자에 의하면 “전문연구요원 감축을 포함한 병력 확보 대책을 추진하고 있다”며 “관계 부처와 협의해 연내에 기본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국방부는 2016년에도 전문연을 포함한 병역특례제도를 2018년부터 단계적으로 감축해 2023년에는 완전히 폐지한다고 발표했다가 사회적 논란이 일자 철회한 바 있다.

    전문연 축소의 배경은 불안정한 병력 공급이다. 불과 3년내에 필요한 병사 규모보다 입영할 수 있는 인원이 적어질 예정이다. 국방부는 전문연구요원을 포함한 대체복무자를 줄여 병력을 충원해보겠다는 방침이다. 조홍용 경남대 군사학과 교수가 2017년 발표한 ‘인구절벽 시대의 병역정책에 관한 연구’ 논문에 따르면 현재 23만4625명인 입영가능자원은 2022년에 19만3829명으로 줄어 병사소요인 20만2526명보다 적어진다.

    전문연 폐지에는 ‘특혜’ 논란도 한몫한다. 일각에서는 군 복무는 엘리트 인재도 충실히 이행해야 할 책임이라고 주장한다. 이종호 건양대 군사학과 교수는 “석·박사과정으로 학업을 지속하는 것은 개인 발전을 위한 선택이기 때문에 군 복무를 면제할 이유가 없다”며 “특히 병역특례는 학업을 지속할 수 있는 엘리트 계층에만 제공하는 불평등한 대우라는 지적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비준하려는 국제노동기구(ILO) 핵심 협약도 전문연 폐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전망이다. 핵심 협약의 강제노동 제29호에 따르면 의무 군 복무, 교도소 내 강제근로, 비상시 강제근로를 제외한 모든 노동을 강제노동으로 여긴다. 협약 비준 시 전문연구요원도 강제 노동에 해당할 가능성이 있다. 고용노동부는 “(전문연 등) 비군사적 복무가 문제되더라도 ILO는 개인의 자발성을 반영하도록 법·제도 개선을 권고하는 등 무조건적인 제도 폐지를 요구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 학계 “이공계 인재 유출 심화 … 오히려 국방력 저하”

    반면 관련 학계에서는 크게 반발하고 있다. 특히 군 복무 부담이 생길 경우 이공계열 인재가 해외로 이탈할 수 있어 국내 대학원 진학률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연세대 전기·전자공학과 석·박통합과정에 재학 중인 윤경린(가명·25)씨는 “2016년 국방부가 전문연을 폐지한다고 했을 당시, 석·박사과정을 희망하는 주변의 남학생들은 대부분 국내 대학원 진학을 다시 고려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전문연은 박사과정 진학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작년 서울대 내부 보고서 ‘전문연구원제도 운영 및 선발의 현황과 성과 분석’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대학원생 1565명 중 80%가 '전문연구요원제도가 박사과정 진학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고 답했다. '전문연구요원제도가 없을 경우 희망 진로'로는 '해외 대학원‘을 꼽은 학생이 49%나 됐다.

    특히 외국 대학원의 주된 대안으로 여겨졌던 과학기술원의 반발이 거세다. 카이스트, 지스트, 디지스트, 유니스트 등 과기원은 전문연 유지를 촉구하기 위해 ‘전문연 혁신을 위한 토론회’를 31일 카이스트에서 열었다. 토론회에서 4개 과기원은 “전문연은 국내 이공계 대학은 물론 과학기술특성화대학의 교육·연구성과를 창출하는 원동력으로 자리 잡아왔다”며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AI(인공지능)·로봇공학·빅데이터·생명과학·IoT(사물인터넷) 등 다양한 분야에 대비할 우수 인재 양성이 국가적으로 시급한 때이기 때문에 전문연을 최소한 현행과 같은 수준으로 유지해야 한다”고 밝혔다. 

    국방 당국의 의도와 달리 전문연을 축소한다고 국방력이 크게 강화되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전문연의 규모가 대체복무인력 중에서도 1할이 되지 않을 정도로 이미 적은데다가, 현대사회에서는 국방력이 첨단무기에 좌우된다는 이유에서다. 이기훈 지스트 안보과학기술센터 교수는 “과학기술력이 곧 안보력”이라며 “군사혁신은 기술혁신에서, 기술혁신은 기초과학 투자에서 출발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전문연으로 인력을 끌어써왔던 중소기업에서도 폐지 반대 의견이 나오고 있다. 중소기업연구원이 2017년 발간한 ‘중소기업 병역대체복무제도의 효과성 및 정책과제’ 정책연구에 따르면, 전문연구요원 1인당 중소기업 매출액을 4억5900만원가량 올렸다. 총 1조3247억원의 생산유발 효과를 일으켰고 4393명의 추가 고용을 이끌어, 총 4623억의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