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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학년도 대입개편의 파장으로 현 정부 주요 교육공약이 대거 순연됐다. 문재인 대통령의 1호 교육 공약이자 국정과제인 고교학점제는 2022년에서 3년 미뤄져 2025년에 전면 도입하기로 했다. 내신 성적 유·불리에 따른 과목 쏠림을 방지하는 차원에서 고교학점제에 필수적인 성취평가제(내신 절대평가제)도 마찬가지다. 대입개편의 뜨거운 감자였던 수능 절대평가에 대해서는 '중장기적'으로 준비해야 한다는 방향이다.
고교 혁신을 이끌 것이라 기대됐던 공약이 줄줄이 미뤄지며, 현 정부가 교육 정책을 포기한 게 아니냐는 우려가 일고 있다. 공론화를 통해 미뤄진 정책 대부분이 현 정부 임기를 넘겨 추진돼서다. 일례로 현 정부의 임기는 2022년 5월까지인데, 고교학점제와 성취평가제가 본격 도입되는 2025년은 무려 다음 정권 4년 차다. 수능 절대평가는 중장기로 도입한다는 방향성만 있을 뿐, 못 박아 놓은 시기도 없다.
산적한 중장기 교육 정책을 어떻게 추진할지 오리무중인데, 정부는 ‘정책 실종’ 우려에 묵묵부답이다. 박춘란 교육부 차관이 한 언론 인터뷰를 통해 고교학점제는 ‘연기가 아니며 현장의 상황을 고려한 단계적 도입’이라고 원론적으로 밝힌 게 해명으로 볼 수 있는 전부다.
정책의 지속성에 의문이 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정부가 이를 없앨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중장기 교육 정책을 정권과 관계없이 ‘일관성’ 있게 추진할 수 있다고 국민에게 신뢰를 줄 수 있다면 말이다. 이미 이러한 목적으로 탄생한 기구가 있다. 대입개편 하청기관이라는 오명이 씌워진 국가교육회의는 본디 교육혁신 및 중장기 교육정책 논의를 주도하기 위해 설립됐다. 정치 독립성을 보장받는 국가교육위원회를 2020년에 신설할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는 임무도 있다.
각종 고교 혁신 정책이 표류하지 않으려면, 이제부터 고교학점제, 성취평가제, 수능 절대평가 등 중장기 정책은 국가교육회의에 운전대를 맡길 필요가 있다. 정권이 바뀌어도 정책을 지속해서 추진해나갈 수 있는 건 교육부가 아닌 정치 독립을 표방하는 국가교육회의나 이를 이어받을 국가교육위원회다. ‘2018년 국가교육회의 운영계획’에 따르면 올해 말 ‘교육비전 및 중장기 교육정책 방향 초안’이 마련되며, 내년 상반기에는 국가교육위원회 설치 법률안이 국회에 제출될 예정이다. 국가교육회의 측은 “가능한 한 계획대로 진행하려 한다”고 밝혔다.
다시금 ‘정시와 수시의 적정 비율은 몇 퍼센트냐’와 같은 근시안적인 물음을 국가교육회의가 중점적으로 다뤄서는 곤란하다. 취재 과정에서 국가교육회의 관계자는 “국가교육회의의 본연의 임무 중 첫 번째는 국가교육위원회를 설치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교육비전과 중장기 방안 마련하는 것”이라며 “공론화는 교육부에서 요청하는 바람에 추진했던 것”이라고 토로했다. 지난 4월 대입개편 공론화 방안을 의결하며 신인령 국가교육회의 의장이 “국가교육회의에서 우선 교육의 미래 비전을 마련하고 나서 이에 맞게 (대입 등) 현안을 결정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 뻔했다”고 발언한 것과, 공론화를 마친 뒤 김진경 국가교육회의 대입제도개편특별위원회 위원장이 언론 인터뷰에서 "(2022학년도 대입개편안은) 국가교육회의의 주된 역할은 아니었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보다 중장기적인 접근으로 교육을 바라보는 것이 국가교육회의의 본연의 역할이라는 얘기다.
‘교육은 백년대계(百年大計)’라는 문구는 우리나라 교육 현실이 백년대계가 아니라는 걸 안타까워할 때나 사용되고 있다. 교육정책이 말뿐인 백년대계가 아니기 위해서는, 이제부터라도 중장기 교육과제는 예측 가능하고 일관된 방향으로 추진될 수 있도록 국가교육회의가 비전을 보여줘야 한다. 그것이 지금도 일각에서 꾸준히 제기되는 국가교육회의 무용론에 대해 스스로 대응하는 유일한 해결책일 것이다.
[조선에듀 오피니언] ‘정책 실종’ 우려 불식시키려면…국가교육회의가 나서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