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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검사로부터 시작돼 사회 각 분야로 번지고 있는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운동’은 어린 학생들에겐 다소 무거운 주제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미투’가 낯설지 않은 소녀들이 있어요. 이들은 10여년 전부터 지금까지 여성에 대한 폭력에 대해 'No'라고 당당히 외쳐왔죠. 한편으로는 이 같은 소녀들의 외침이 미투 운동의 전신(前身)이라고 볼 수 있어요.”
김종희(63) 상명대 행정대외부총장은 ‘소녀의 권리를 말하자’, ‘여성에 대한 폭력을 끝내자’란 의미의 영어 문장이 새겨진 패치를 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최근 그는 한국걸스카우트연맹 신임 총재로 부임했다. 김 부총장은 “한국걸스카우트연맹 단원들은 2008년 4월 셋째 주 수요일을 ‘소녀의 날’로 지정하며 성폭력 예방 활동 등 다양한 캠페인을 펼쳐왔다”며 “당시 사회적으로 소녀들이 성폭력에 노출되는 안타까운 사건이 연이어 발생해 이 같은 활동에 불을 지피게 됐다”고 설명했다.
2011년에는 걸스카우트세계연맹이 진행하는 성차별·성폭력 예방 캠페인에도 참여했다. 또한 2012년 부터는 UN이 지정한 ‘세계 소녀의 날’인 10월 11일에 맞춰 관련 행사를 함께 진행하고 있다. 김 부총장은 “세계연맹과 함께 ‘여성에 대한 폭력을 끝내자(End violence against Girls)’ 프로그램을 해오고 있다”며 “이는 전 세계 소녀들이 성차별과 성폭력이 더는 발생하지 않도록 여러 종류의 폭력에 대해 인지하고 대비하며 스스로 목소리를 내는 교육 프로그램으로, 지금 우리나라에 번지는 미투 운동의 밑바탕이라고 볼 수 있다”고 전했다. -
상명여자사범대 체육교육과를 나온 그는 대학생 때 한국걸스카우트연맹과 인연을 맺은 다음 현재까지 한국걸스카우트연맹 이사, 부총재 등으로 활동했다. 지난 9일 한국걸스카우트연맹 신임 총재로 취임하기 전에는 한국여성사격연맹회장을 시작으로 ▲한국여성축구연맹 ▲한국레저스포츠학회 ▲한국에어로빅스건강과학협회 등 여러 체육단체를 이끌어왔다.
이런 그가 최근들어서는 대학 업무와 총재에만 전념키로 했다. 이유는 단순하지만 확고하다.
“가르치고 이끄는 일이 천성에 잘 맞아요. 상명대와 한국걸스카우트연맹에서 학생과 소녀들을 가르치고 올바르게 이끄는 일에 자신이 있습니다. 그것이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기도 하고요.”
◇ “가교(架橋), 행정대외부총장이 해야 할 역할”
“A기업과 B기업의 최종면접 날짜가 겹친다면, 어느 기업 면접을 치르는 것이 더 좋을까요?”, “이제 곧 졸업반인데, 전공을 잘못 선택한 것 같아요. 이제라도 부전공을 하나 더 이수하는 게 나을까요.”
인터뷰 도중 김 부총장은 상명대 재학생과 졸업생이 자신에게 보내온 메시지라며 스마트폰을 꺼내 보였다. 언뜻 보면 행정대외부총장이라는 직함보다는 취업진로상담사에 가까워 보였다. 그는 “제 개인 경험과 활동들이 학생들에게 최대한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취업ㆍ진로 관련 상담을 카카오톡으로 해준다”고 강조했다. 그는 외국인 유학생의 생활 상담도 전담하고 있다. 일례로, 200여명의 상명대 유학생들은 지난 12월 ‘행정대외부총장과 함께하는 유학생 간담회’를 갖고 김 부총장과 허심탄회한 이야기들을 나눈 바 있다. 학생과 유학생에게 구체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여겨질 때는 학내 취업진로처 또는 국제교류처의 담당 교직원과 직접 연결도 해준다.
“학생과 교직원을 이어주는 브릿지(bridge), 그것이 행정대외부총장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 “나눔과 소통, 몸에 배…어머니 영향 커”
때로는 교직원들의 ‘엄마’가 되기도 한다. 최근 며칠 대학가는 그야말로 ‘비상(非常)사태’였다. ‘2018 대학기본역량진단’을 위한 자체진단보고서 제출일(27일)을 코앞에 두고 일부 교직원들은 밤낮없이 일에 매달렸다. 이에 김 부총장은 지난 주말 학교에 방문해 교직원들의 식사를 일일이 챙겼다. 밤새며 고생하는 교직원들을 위해 당장 해줄 수 있는 일이 ‘끼니 챙겨주기’였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교육학 전공을 살려 교직원들의 MT 프로그램을 함께 짜기도 한다. 그는 “대학 구성원들과 경험을 나누고 소통을 하는 것이 큰 기쁨”이라고 강조했다.
다른 사람들과 부대끼고 나누길 좋아하는 김 부총장의 성격은 그의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았다.
“어머니는 여덟 남매를 맞이하느라 대문을 늘 활짝 열어놓으셨어요. 그때마다 장사꾼들이 들어와 ‘이것 좀 사달라, 저것 좀 사달라’고 재촉했는데, 항상 마다하지 않고 식사까지 일일이 대접하셨죠. 심지어 말동무도 해주시더라고요. 처음엔 ‘왜 저러실까’라고 의아하게 생각했어요.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점차 이해하게 됐고, 어느새 저도 모르게 ‘작은 것도 주변 사람과 나누는 어머니의 그런 습관’을 닮더라고요.” -
◇ “이튼칼리지 전인교육 중요성, ‘상명대에 녹여야겠다’ 생각했다”
김 부총장이 교육가로서 교육 철학이 굳어진 계기가 있었다. 체육교육학과에 진학할 당시, 어떤 교육을 해야 할지에 대해 고민하던 시기였다. 당시 여러 자료를 찾아보다가 교육 모델로 삼고 싶은 학교 중 하나로 영국의 유명 사립명문인 ‘이튼칼리지’(Eton College)를 발견했던 것이다. 자신만을 위하는 엘리트가 아닌, 전인교육과 인성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교육철학에 크게 감명을 받았다. 그는 “특히 이튼칼리지의 교훈이 와 닿았다”고 덧붙였다. 이튼칼리지의 6대 교훈으로는 ▲남의 약점을 이용하지 마라 ▲비굴하지 않은 사람이 되라 ▲약자를 깔보지 마라 ▲항상 상대방을 배려하라 ▲잘난 체하지 마라 ▲다만, 공적인 일에는 용기 있게 나서라 등이다. 그는 “이튼칼리지를 보면서 훗날 우리나라에도 인재들에게 인성교육을 강조하는 대학이 나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김 부총장은 “최근들어 우리나라도 이튼칼리지처럼 ‘인성교육’을 중요하게 여기는 추세”라며 “상명대도 이에 발맞춘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가 강조하는 것은 ‘기본으로 돌아가라(back to basics)’이다. 경쟁과 서열화에 매몰된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인성을 놓치지 말자는 얘기다. 이에 상명대는 기초교양필수 교과목을 지속적으로 신설하고, 교과와 비교과를 융합한 프로그램을 강화하고 있다. 주요 비교과 프로그램으로는 학술정보관과 함께하는 ‘하나의 책, 하나의 상명’, 예술ㆍ문화산업대학과 함께하는 ‘음악ㆍ미술 공연 관람’, 학생상담센터와 함께하는 ‘자아성찰’ 등이 있다. 인성관련 강좌로는 사제동행형 교과목인 ‘교양과 인성’을 필수 교과목으로 운영하고 있다.
◇ “4차 산업혁명에 효과적으로 대비하려면…교수가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여야”
이 같은 프로그램에 학생의 참여도도 중요하지만 김 부총장은 무엇보다 교수의 생각이 바뀌어야 대학이 달라질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는 “최근 몇 년 사이에 대학가에는 온라인강의(e-learning)를 비롯해 플립 러닝(flipped learning), 프로젝트 기반 수업방식(PBL) 등 이색적인 강의법들이 도입돼 강의실을 뒤흔들어놓고 있다”며 “이 가운데 일부 교수는 자기가 아는 것만 가르치고, 가르치고 싶은 것만 가르친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고 일침을 가했다.
김 부총장은 교수들에게 “변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새로운 지식을 얻기 위해 옛날 것은 과감히 버리자는 얘기다.
“4차 산업혁명의 발원지는 대학이라고 많은 교수들이 얘기하고 있어요. 이제는 냉정하게 변화와 혁신을 주도할 주체로서 준비돼 있는지 스스로 되돌아 봐야 할 때입니다. 4차 산업혁명을 앞둔 지금, 자신의 것은 조금 내려놓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여 새롭게 융합하는 것은 어떨까요.”
"10년 전, 소녀들의 No 외침도 '미투'였다"
- 김종희 상명대 행정대외부총장·한국걸스카우트연맹 총재
- 2008년부터 성폭력 예방 운동 동참해
- 취업ㆍ진로상담부터 MT 프로그램 기획까지 직접 나서
- “대학이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하기 위해선 교수부터 변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