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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때부터 운동을 하던 학생들은 중학교에 올라오면서 운동과 공부, 두 갈래 길에 선다. 초등학교 때 엇비슷하던 실력이 점차 뚜렷한 격차를 보이고, 운동선수로 성공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그 갈래 길에서 공부를 선택한 학생들은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 것일까.
서울 대왕중 3학년 우병석(15)군은 3학년에 올라오면서 축구부를 그만뒀다. 축구를 처음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2학년. 다른 학교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은 적이 있고 미국으로 8개월 간 어학연수를 갔을 때도 축구를 계속할 만큼 좋아했지만, 한편으로는 끝까지 축구선수의 길을 걸어야 할지 늘 고민이었다. 부모님의 반대도 거셌다. -
"학창시절 배구선수였던 아버지께서 반대하셨어요. 운동선수가 얼마나 힘든지 아시니까요. 설령 축구를 계속한다고 해도 공부가 뒷받침 돼야 한다고 늘 강조하셨죠."
처음엔 공부가 거대한 '벽'처럼 느껴졌다. 기초실력이 부족한 것은 물론 기본적인 공부습관조차 없는 상태였다. 집중력도 형편없었다. 책상 앞에 앉아 10분도 견디기 힘들었다. 책을 보면 잠이 오고 딴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의자에 몸을 묶어도 봤다.
고심 끝에 미로 찾기 등의 게임, 쉬운 연산문제 등을 풀며 책상 앞에 앉아 있는 훈련부터 했다. 덕분에 6개월이 지난 지금은 1시간 30분 정도 집중해서 공부할 수 있게 됐다. 2학년 때보다 성적도 평균 30~40점 올랐다. 육군사관학교에 가겠다는 목표도 세웠다. 하지만 공부만 하던 친구들에 비하면 부족한 점이 많아 여전히 걱정이 많다.
선배의 멘토링① 황선민
(연세대 스포츠레저학과 1학년)
올해 초 연세대 정시전형 합격자 발표가 있던 날, 황선민(19)군은 아파트가 떠나가라 기쁨의 '괴성'을 질렀다. 어린 시절 유도선수로 활약하며 체육관에서 살다시피 하던 그가 연세대에 합격한 것이다.
황군은 초등학교 1학년에 유도를 시작해 한국대표로 국제대회에 참가할 정도로 실력이 뛰어났다. 유명 중학교 유도부 감독으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도 받았다. 하지만 모든 제의를 뿌리치고 공부로 진로를 틀었다.
먼저 그는 분명한 목표를 정했다. 연세대 스포츠레저학과(구 사회체육학과). 스포츠전문가가 되고 싶은 자신에게 꼭 맞는 학과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영부영 중학교 시절을 보내고, 고교 첫 시험에서 좌절을 맛봤다. 내신 5~7등급, 모의고사도 마찬가지였다.
"'운동을 포기하고 공부하기로 한 목표를 잊지 말라'는 아버지의 단호한 꾸지람에 정신을 차렸지요. 친구들과 어울려 놀러 다니던 습관부터 버렸어요."
그때부터 모든 공부를 목표학과에 맞췄다. 내신은 스포츠레저학과에서 반영하는 국어, 영어, 사회, 체육에 집중했고, 수능도 언어, 수리, 외국어, 사탐 2과목(한국지리·사회문화)을 무섭게 파고들었다. 기출문제, 모의고사를 전부 분석하고, 언론에 나온 입시전문가의 분석, 대학생들의 공부 수기를 빠짐없이 읽었다. '어차피 대학 가면 수학공부 안 할 테니 딱 3년만 죽도록 해보자'는 생각으로 매달렸다.
독하게 마음먹어도 슬럼프는 어김없이 찾아왔다. 특히 무더운 여름이면 공부가 손에 잡히지 않아 학교 보충수업,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몰래 도망치기도 했다. 하지만 PC방에서 게임을 해도 머릿속에선 공부 걱정이 맴돌았다. 황군은 '제대로 놀지도 못할 바에야 공부가 되지 않아도 책상 앞에 있자'고 결심했다.
"고3 5월 5일에 누나와 연세대에 갔어요. 교문을 들어서면서 '여기가 내가 오고 싶은 학교구나' 전율이 느껴졌죠. 그날 찍은 사진과 교표를 책상, 컴퓨터, 학교 자습실 등 눈에 띄는 곳에 전부 붙여놨어요."
공부를 하면서도 유도 체육관에 틈틈이 다녔다. 워낙 유도를 좋아하는데다 몸에 밴 기본기를 잃지 않기 위해서다. 또 학과에서 실기를 15% 반영해 실력을 닦아둘 필요도 있었다. 황군은 수능시험이 끝나자마자 머리를 삭발한 채 체육관으로 달려가 유도훈련에 매진했다. 입학 후 교수님들이 "실기시험장에 들어설 때부터 눈에 띄었다"고 했을 정도다.
"지금도 유도를 계속하고 있는데, 제 꿈을 이룬 뒤 연마하는 유도라서 더 기뻐요. 운동선수로 살고 싶다는 강한 의지를 가진 학생이라면 당연히 운동을 계속해야겠지요. 하지만 조금이라도 다른 길을 가고 싶다고 생각한다면 '과연 할 수 있을까' 두려워하지 말고 도전하길 바래요." -
선배의 멘토링② 유재열
(건국대 정치외교학과 3학년)
중학교 1학년 겨울방학에 학교 야구부를 그만 둔 유재열(24)씨도 공부 때문에 모진 고생을 했다. 수업을 제대로 들은 적도 없고, 시험일 아침에도 운동장에서 야구부원들과 연습하느라 공부를 못했기 때문이다. 학교 수업조차 따라가기 힘들었으니, 친구들과 경쟁이 될 리 없었다. 야구부를 그만둔 뒤 치른 첫 중간고사에서 받은 영어·수학 성적은 20점. 그는 "실망보다 자존심이 상해 견딜 수가 없었다"고 했다.
유씨는 부족한 실력을 인정하고, 이해가 되지 않으면 중1 또는 초등학교 과정까지 밟아 내려갔다. 책상 앞에 앉아있는 것은 힘들었지만, '이 정도는 야구훈련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라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자 선생님, 친구 등 주위사람들이 점차 그를 격려하기 시작했다. 칭찬을 받을수록 공부의욕이 높아졌다. 중2 말에는 반에서 15등, 중3 말에는 3등까지 성적을 끌어올렸다.
특히 중3 겨울방학에 이를 악물고 공부했다. "고등학교에 가면 지금보다 성적이 2~3배 떨어진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무리한 선행학습보다 수학, 영어, 과학 등 부족한 주요과목의 기초를 탄탄히 다졌다. 예습 차원에서 고1 중간고사 범위까지만 미리 공부해뒀다. "국어는 교과서를 한 번 읽어보는 정도로만 했는데도 수업시간에 훨씬 수월했다"고 귀띔했다. 걱정했던 고1 첫 중간고사 성적은 반에서 4등. 공부에 대한 자신감이 한층 커졌다. 영어·수학 보습학원도 고2에 올라가면서 그만뒀다. 그는 "기초가 어느 정도 쌓인 뒤에는 혼자 공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유씨는 운동을 그만두고 힘들어하는 후배들에게 "중학생이라면 다른 꿈을 향해 도전할 수 있는 가능성이 큰 시기"라며 "포기하지 않고 1~2년만 노력하면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스포츠 스카우터, 스포츠 캐스터 등 운동 경험을 살릴 수 있는 길도 많다. 건국대 야구동아리에서 활동하는 유씨는 "운동을 그만둔 뒤 꿈을 잃은 채 방황하는 후배들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밝혔다.
운동 대신 공부 선택한 아이들 공부는? 훈련보다 더 독하게뒤처진 기초 다져라
글=오선영 맛있는공부 기자
syoh@chosun.com
사진=허재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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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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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구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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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만 참고 하자'고 다짐
기초가 어느 정도 잡히면 혼자서 공부하는 것 중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