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전문대학원 '실패한 실험' 되나
안석배 기자 sbahn@chosun.com
기사입력 2010.06.09 03:07

대학들 "이공계 황폐화 주범"… "의전원·의대, 대학 자율선택"
정부, 이달말 최종 입장 발표… 2015년 전후 의대로 유턴할듯

  • '의학전문대학원(의전원) 선택을 대학 자율로 하겠다'는 정부 방침에 따라 서울대·연세대·고려대 등 국내 주요 대학들이 의전원을 폐지하고 의대 체제로 복귀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로써 지난 2005년 시작된 '의전원 실험'이 사실상 실패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 고위 관계자는 8일 "대학이 의사 양성 과정으로 의전원을 운영할지, 의전원을 폐지하고 기존의 의예과로 유턴할지를 정부가 강제하지 않고 각 대학이 자율적으로 결정하도록 할 계획"이라며 "이달 안으로 정부의 최종안을 확정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대부분 대학은 의대 체제로 "유턴"

    교과부 관계자는 "의대로 유턴할 의향이 있는 의전원에 대해서는 유예기간을 두고 전환하도록 유도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현재 대학 1학년생이 의전원에 응시할 기회를 주기 위해서라도 2015년 전후 대학별로 전환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 임정기 서울의대 학장은 "만약 대학 자율이라는 최종 방침이 정해진다면, 현재 의대·의전원을 병행하는 12개 대학은 대부분 의대 체제로 돌아가려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이럴 경우 서울대·연세대·고려대 등 주요 대학이 의대로 유턴할 것으로 예상된다.

    의전원은 노무현 정부 당시 다양한 학부 학생들에게 의대를 개방한다는 취지로 시작됐지만 의대 반발과 이공계 교육의 파행 등 부작용이 잇따르면서 현 정부가 제도의 궤도수정을 시도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현재 의전원(4+4 과정) 전면실시 학교는 15개교, 의대(2+4 과정) 체제는 14개교이며 의전원과 의대를 병행유지하는 학교가 12개교다.

    ◆"의전원은 이공계 황폐화 주범"

    많은 의대와 이공대 교수들은 "의전원이 교육 시스템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고 지적해왔다. 가장 큰 문제는 '이공계 황폐화' 현상이다. 각 대학에선 이공계 우수 학생들이 4학년 1학기에 휴학해 의전원 전문 학원에 다니고, 8월에 시험을 보는 것이 일반적인 코스가 되고 있다. '기초과학의 인력 공동화(空洞化)'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의대 입장에선 학생의 '고령화'를 들고 있다. 4년 동안 다른 전공을 공부하고 의학을 시작할 경우 인턴(수련의)과 레지던트(전공의), 전임의를 거치면 30대 후반에야 전문의가 되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불안한 '동거'는 계속?

    의대·의전원 병행 12개 대학들이 모두 의전원을 폐지할 경우, 현재 전체의 54.5%인 의전원의 정원 비율은 38% 수준으로 떨어지게 된다. 또 의전원으로 완전히 전환된 15개 대학 중 일부가 의대로 유턴한다면 전체 의사 배출인원 중 70~80%가 의대 출신, 나머지 20~30%가 의전원 출신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되면 앞으로 의사 양성 시스템은 의전원과 의대의 '투 트랙'으로 운영된다. 문제는 같은 교육과정인데도 의전원 출신은 '석사', 의대 출신은 '학사'가 되는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불안한 체제가 계속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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