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 중퇴 소녀, 英語로 운명 바꾸다
부산=손장훈 기자 lustfor@chosun.com
기사입력 2010.05.13 02:52

부산 심현주씨, 苦學 9년간 영어 올인… 美정부 장학금 받고 유학 앞둬

  • 부산외대 영어과 4학년 심현주(22)씨는 요즘 미국 유학에 대한 기대에 부풀어 있다.

    심씨는 미국 정부 장학금인 '풀브라이트 장학금'을 받아 올 8월 대학 졸업과 동시에 미국 미주리주 워싱턴세인트루이스대학으로 유학을 떠난다. 학비와 생활비로 연간 4만달러(약 4440만원)를 2년간 지원받는다.

    심씨는 "9년 전만 해도 꿈도 꾸지 못한 일"이라고 했다. 심씨는 2001년 부산에서 중학교를 다니다 그해 9월 자퇴했다. 어려운 집안 형편과 반 친구들의 따돌림 때문이었다.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를 찾기 위해 채권자들이 학교까지 찾아왔다. 같은 반 학생들은 '빚쟁이 딸'이라고 놀렸다. 믿었던 친구들도 등을 돌렸다.

  • 열공의 흔적…  닳아 해진 영어사전…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 미국 유학길에 오를 예정인 부산외국어대 심현주씨가 손때 묻은 영어사전을 들며 밝게 웃었다. /김용우 기자 yw-kim@chosun.com
    ▲ 열공의 흔적… 닳아 해진 영어사전…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 미국 유학길에 오를 예정인 부산외국어대 심현주씨가 손때 묻은 영어사전을 들며 밝게 웃었다. /김용우 기자 yw-kim@chosun.com
    심씨는 "그 뒤 2년 동안 집 밖에 나가지 않았다"며 "교복 입은 동년배들 모습도 보기 싫었다"고 했다. 하지만 형편은 더 어려워졌다. 어머니는 생계를 위해 식당일을 했지만 한 달 수입 70만~80만원으로는 수억원의 빚과 이자를 감당하기도 힘들었다. 전세 다세대 주택을 나와 월세방으로 옮겨야 했다. 심씨는 "평생 집에만 틀어박혀 살 수밖에 없겠다는 절망뿐이었다"고 했다

    그러나 심씨는 2003년 봄 인터넷에서 공인 영어 성적만 있으면 대학에 갈 수 있다는 정보를 얻었다. "영어 공부는 집에서도 해볼 만하다"고 생각한 심씨는 매일 8시간씩 영어 단어를 외우고 CNN과 BBC 같은 외국 방송을 봤다. 그렇게 1년 넘게 영어 공부에만 매달렸다. 2004년 토익 시험을 본 심씨는 자신도 깜짝 놀랐다. 첫번째 시험에서 930점, 두번째에선 985점을 받았다. 그는 "그때 '나도 다른 애들과 비슷하게 살 수 있겠구나'하는 희망을 봤다"고 했다.

    심씨는 2005년 9월 부산외대에 합격했다. 5년 만에 학교로 돌아간 것이다. 하지만 친지들은 "집에 돈도 없는데 지방 대학 다녀서 뭘 하겠느냐"고 핀잔을 줬다. 그럴수록 오기가 생겼다. "대학 4년을 남보다 2배 더 열심히 살아야 다른 친구들과 비슷해지겠다는 생각에 이를 악물었다"고 했다. 단 1분도 허투루 쓰지 않았다. 만원버스에서 영어 원서를 읽었고, 교내 영자신문 기자로도 활동했다. 학비는 과외 아르바이트로 벌었고, 주말에는 외국인이 다니는 교회에서 통역 봉사를 했다. 2년 뒤인 2007년 심씨는 전국대학생말하기 대회에서 장려상을 탔고 2008년에는 토익과 토플 등 영어시험을 주관하는 미국 교육평가원(ETS)에서 장학금도 받았다. 작년 말에는 교육과학기술부가 주는 '대한민국 인재상'을 탔다.

    심씨는 미국에서 노인복지 관련 학문을 전공한 뒤 유엔 같은 국제기구에서 일하는 게 꿈이다. 그는 "쉽진 않겠지만 밑바닥까지 살아봤던 경험을 살려 반드시 성공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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