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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100여일 앞둔 시점에서 한국난독증협회 등 8개 관련 학회 및 단체들은 최근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난독증이 있는 아이들도 실력을 공정하게 평가받을 수 있도록 수능 특별관리대상자에 포함해 시험 시간을 연장해줘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난독증과 같은 학습장애는 일반적인 수능 특별관리대상자의 범위에 해당하지 않아 시험의 형평성 측면에서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식의 우려를 내놓고 있다. 학습장애의 일종인 난독증은 지능이 정상 수준임에도 글을 정확하게 읽지 못하거나 읽는 속도가 많이 느린 증상을 보이며 ‘읽기장애’라고도 불린다.
◇“난독증 수험생 시간 편의 줘야”… 미국 등 학습장애 학생 추가 시간 부여
한국난독증협회, 한국학습장애학회, 좋은교사운동 등 8개 관련 학회와 단체들은 지난 26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시도교육청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난독증 수험생 차별을 바로잡아 달라는 취지의 진정서를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출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난독증 학생은 특수교육대상자인 동시에 장애인차별금지법상 장애인에 해당한다”며 “난독증이 있는 아이들도 실력을 공정하게 평가받을 수 있도록 공인 시험을 볼 때 시간 연장 등 편의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이들은 “수능을 관리하는 교육청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으로부터 ‘난독증 수험생의 경우 관련법상 장애인에 해당하지 않아 수능 특별관리대상자 요건에 맞지 않아 시험 시간 연장 등이 가능하지 않다’는 통보를 받았다”며 “이러한 지침은 장애인 차별금지법상 정당한 편의 제공을 거부하는 차별 행위에 해당한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장애인을 위한 정당한 편의의 중요성은 미국 장애인법(ADA), 영국 평등법(Equality Act) 등 여러 국가의 법률에서 규정하고 있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 고용개발원이 발간하는 ‘장애와 고용’ 제26권 제4호에 실린 ‘장애인 응시자를 위한 자격·채용시험의 시험 편의 개선을 위한 연구’에 따르면, 이들 국가는 장애의 개념을 의료적 손상보다 일상생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한 사회적 관점에 중점을 두고 있어 다양한 장애인을 시험 편의의 대상으로 포함하고 있다. 장애인 응시자의 권리와 기회를 보다 폭넓게 보장하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학습장애를 인정받으면 SAT, PSAT를 비롯한 각종 시험에서 추가 시간을 부여받는 등 편의를 받을 수 있다. 국제 영어 능력 시험인 IELTS에서도 학습장애 수험생에게 워드 프로세서와 음성 알림 프로그램, 읽기와 쓰기 시험에 추가 시간 등을 지원하고 있다.
◇“교육열 높고 형평성 민감해 추가 시간 도입 상당히 어려울 것”
하지만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난독증 수험생의 경우 관련법상 장애인에 해당하지 않아 시험 편리 제공 및 시험 시간 연장이 불가능하단 입장이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현재 장애인복지법시행령 제2조에 의한 장애인 중 시험 응시에 어려움이 있는 수험생을 시험 특별관리대상자로 지정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시각장애(전맹·저시력) ▲청각장애 ▲운동장애 등 남들과 같은 조건에서 시험을 치를 수 없다고 판단되는 경우 시험의 공정성과 수험생 간의 형평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응시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이들 중 중증시각장애 수험생에게는 매 교시 일반 수험생 시험 시간의 1.7배를 부여한다. 경증시각장애 수험생 및 뇌병변 등 운동장애 수험생에게는 매 교시 일반 수험생 시험 시간의 1.5배를 제공한다. 이 같은 편의를 받을 수 있는 수능 특별관리대상자로 선정되려면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한다. 장애인 복지카드와 시력 또는 청력 검사서 외에 학교장 확인서나 특수학교 졸업증명서를 제출하도록 규정돼 있다.
이 때문에 난독증과 같이 학습장애를 겪는 수험생에게 편의가 제공될 경우, 실제로는 ‘장애(障礙)’에 해당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학습장애로 혜택을 누린다는 형평성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 김두식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한변호사협회가 발행하는 ‘인권과 정의’(2006년 5월호)에 실린 논설문 ‘학습장애의 개념과 학습장애인의 권리’에서 “수능에서 학습장애인에게 추가 시간을 부여하는 것은 교육열이 높고 시험의 형평성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는 우리나라에서는 그 파장이 엄청날 수밖에 없다”며 “일반인이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장애가 아닌 학습장애인이 수능에서 추가 시간을 받는 데는 상당한 어려움이 있을 것”이란 분석을 내놓은 바 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도 이에 대해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 관계자는 "난독증 수험생의 수능 특별관리대상자 지정은 앞으로 관련법상 장애인 인정 여부에 따라 연구 검토와 전문가 자문이 필요한 사안"이라며 "이를 바탕으로 시·도교육청 간의 협의 등을 통해 결정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난독증 학생 수능 시간 늘려달라는데…
-한국난독증협회 등 8개 단체 “정당한 편의 제공 거부는 차별 행위”
-교육과정평가원, “시험 공정성·수험생 간 형평성 해치지 않는 범위 내 응시 편의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