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이야기] "서울대 합격한 카마숨바는 잠비아의 축복이자 희망"
박순찬 기자 ideachan@chosun.com
기사입력 2009.11.28 03:10

모국서 온 교사 2명 '지리산高 유학생'과 포옹

  • "한국 겨울, 너무너무 추워요."

    27일 오전 10시, 서울시 관악구 신림동 서울대 정문 앞. 연갈색 모직코트를 입은 잠비아 소년 켄트 카마숨바(Kamasumba·20·지리산고 3년)군이 두 손을 호호 비비며 누군가를 기다렸다. 잠비아 시골에서 태어나 일찍 아버지를 잃고 친척집을 전전하며 자란 카마숨바군은 한국인 선교사의 추천으로 지난 3월 경남 산청의 지리산고에 유학 와서 7개월 만에 서울대 수시모집에 합격했다.

    본지 2일자 A11면 보도

    이날 카마숨바군이 기다리던 사람은 모국 잠비아에서 온 교사들이었다. 잠비아 기초교육교원조합(BETUZ) 빅터 므완자(Mwanza·54) 회장과 코스마스 무쿠카(Mukuka·42) 사무총장이 한국교총의 초청으로 '2009 한-아세안 교육지도자 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26일 저녁 한국에 온 것이다. 비행기를 타고 16시간을 날아온 두 교사는 잠비아를 출발하기 전 한국교총 관계자로부터 "잠비아 소년이 서울대에 붙어 화제가 됐다"는 뉴스를 전해들었다. 두 사람은 한국 땅을 밟자마자 다른 일정을 모두 제쳐두고 카마숨바군의 연락처를 수소문해 만날 약속을 잡았다.

  • 27일 오전 서울대 정문에서 서울대에 합격한 켄트 카마숨바(가운데)군이 고국인 아프
리카 잠비아에서 온 교사 빅터 므완자(왼쪽)씨와 코스마스 무쿠카씨의 손을 잡고 반
가워하고 있다./채승우 기자 rainman@chosun.com
    ▲ 27일 오전 서울대 정문에서 서울대에 합격한 켄트 카마숨바(가운데)군이 고국인 아프 리카 잠비아에서 온 교사 빅터 므완자(왼쪽)씨와 코스마스 무쿠카씨의 손을 잡고 반 가워하고 있다./채승우 기자 rainman@chosun.com
    므완자 회장은 카마숨바군의 손을 덥석 잡으며 "정말 자랑스럽고 뿌듯하다"고 했다. 무쿠카 사무총장도 "너는 잠비아의 축복과 같은 학생"이라며 카마숨바군의 어깨를 두드렸다. 한국에 온 지 7개월 만에 동포를 처음 만난 카마숨바군은 반가움에 벌어진 입을 다물 줄 몰랐다. 그는 "한국에 와서 잠비아 사람을 만나기는 처음"이라며 "선생님이 아니라 부모님을 만난 것 같다"고 했다.

    서울대 안에 있는 전통찻집으로 자리를 옮긴 이들은 대추차를 마시며 반가운 마음을 나눴다. 므완자 회장은 "잠비아 언론에는 아직 카마숨바군 소식이 알려지지 않았다"며 "돌아가면 널리 알리겠다"고 했다. 무쿠카 사무총장은 "잠비아에도 장학금 제도가 있긴 하지만 재원이 부족해 극소수만 혜택을 받을 수 있다"며 "앞으로도 가난하지만 똑똑한 잠비아 학생들이 한국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활발하게 교류가 이뤄지면 좋겠다"고 했다.

    동행한 이원희(57) 한국교총 회장이 "정부에서도 동남아·아프리카 유학생들을 위한 '코리안장학금' 조성을 추진하고 있다"며 "재능 있는 학생들이 한국에 와서 지한파(知韓派)가 되어 돌아갈 수 있도록 돕겠다"고 화답했다.

    카마숨바군이 다닌 지리산고는 집안 살림이 어렵지만 공부할 의지가 있는 학생들을 무료로 가르치는 특성화 고교다. 전교생이 기숙사 생활을 한다. 경남교육청이 주는 지원금에 전국의 개인 후원자들이 내는 성금을 합쳐 운영비를 충당한다. 이 학교 박해성(54) 교장이 "카마숨바군이 대학을 마칠 때까지 어떻게든 뒷바라지할 생각이지만, 아직 입학금과 수업료를 구하지 못해 걱정"이라고 했다. 이 회장이 "한국교총이 나서서 전국의 뜻있는 교사들로부터 성금을 걷어보겠다"고 약속했다.

    잠비아 교사들은 카마숨바군과 작별인사를 나누며 "한국에서 열심히 공부해서 나중에 잠비아 발전에 많이 기여해달라"고 했다. 카마숨바군이 "대학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하겠다"며 활짝 웃었다. "아임 베리 해피!(I'm very happy!·저는 정말 행복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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