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도전에 한계는 없다!
방종임 맛있는공부 기자 bangji@chosun.com
기사입력 2010.08.09 03:05

[10대, 10대에게 묻다_ 유학생편] 쉽게 포기 말고, 스스로에 당당해져라

  •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 글로벌 시대의 주역으로 자랄 요즘 청소년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해외 유학을 꿈꾼다. 여기, 기회를 놓치지 않고 더 큰 무대에서 현지 학생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유학생들이 있다. 소신을 갖고 미국 유학길에 오른 두 명의 십 대 이야기를 들어봤다.

    ◆美 크랜브룩 스쿨 11학년 원민재군

  • 원민재군./이경호 기자 ho@chosun.com
    ▲ 원민재군./이경호 기자 ho@chosun.com
    원민재(18)군은 한국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유학길에 올라 현재 미시간주에 있는 크랜브룩 고등학교(Cranbrook Schools) 11학년에 재학 중이다. 그는 흔히 초·중 시기에 유학길에 오르는 유학생들보다 조금 늦은 시기에 유학을 택했다. 중학교 3학년 1학기 때, 중위권인 자신의 성적표를 보고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스쳤던 것이다. 그는 "한국의 교육방식이 저와는 잘 맞지 않다고 여겼고 이왕이면 좀 더 넓은 세상에서 경쟁해보자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유학전문업체의 도움을 받아 일 년간 차분히 SSAT와 토플을 준비하면서 절대 만만치 않은 길임을 깨달았지만 꿈을 접지 않았다. 우선 영어의 장벽에 가로막혀 목표했던 명문고 대신 교육열이 그리 높지 않은 중위권의 기숙학교로 9학년에 입학했다. 예상과 달리 시작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정해진 시간에 수업을 듣고 이후에는 기숙사에서 자유롭게 보내는 생활에 익숙해졌다. 평균 90점 이상을 유지하면서 만족스러운 생활을 했지만, 곧바로 예상치 못한 문제가 그를 가로막았다. 한국 유학생과 어울리다 보니 영어 실력이 쉽게 오르지 않았던 것이다.

    "저를 비롯해 유학생들 다수가 편하다는 이유로 한국인 친구들끼리 어울리죠. 이러다가는 나태해지고 초심을 잃어버릴 것 같았어요."

    방과 후 기숙사에서 시간을 쪼개 틈틈이 공부한 끝에 명문고로 알려진 지금의 학교에 입학했다. 합격의 기쁨을 맛본 것도 잠시, 그는 입학 첫날부터 학생들과 교사가 서로 토론을 하면서 자신이 가진 지식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이뤄지는 교수법에 적잖이 놀랐다. 영어와 역사수업 모두 토론과 에세이를 중점으로 진행됐던 것. 수학과 과학 수업도 마찬가지였다. 수업에 따라가기 위해서는 영어 실력뿐만이 아니라 폭넓은 교과 관련 배경지식이 필요했다. 그는 "주입식 교육에 길들어 있었기에 적응하기 쉽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성적이 오르지 않자 그의 마음 한쪽에 포기라는 단어가 자리했다. 유학 생활이 너무 힘들어 점차 수업을 빠지고 요령을 부렸다가 정학에 처하는 중징계까지 받았다. 그는 "방황하다가 저처럼 규제를 당하는 학생들이 의외로 많다"고 했다.

    그는 이렇게 주저앉을 수는 없다고 생각하며 용기를 냈다. 철저히 예습을 하는 것은 물론이고 방과 후 성가대 클럽에 가입해 다른 친구들과 교제를 나누고 봉사활동에도 참여했다. 하루를 알차게 보내자 외국인 친구들이 한두 명씩 생겨났고 수업시간에 발표하는 횟수도 늘어났다. 그는 "자신감이 생기자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의욕이 솟았다"고 말했다.

    앞으로 그는 아이비리그 진학을 목표로 최선을 다할 계획이다.

    "유학 생활이 저를 더욱 강하게 만들고 성장하도록 도운 것 같아요. 위기가 찾아왔을 때 이겨낼 수 있는 면역제와 같은 역할이라고 할까요. 앞으로 남은 위기들도 이겨낼 수 있도록 더욱 열심히 공부할 것입니다."

    ◆美 저먼타운 아카데미 11학년 이지수양

  • 이지수양./이경호 기자 ho@chosun.com
    ▲ 이지수양./이경호 기자 ho@chosun.com
    이지수(17)양은 2007년 1월인 중학교 1학년 겨울방학 때 미국 유학을 결심했다. 중학교 입학 후 친구들과 노는 재미에 빠져 떨어진 성적을 극복하려는 방법으로 유학을 떠올렸던 것이다. 그는 "한국과는 전혀 다른 환경에서 새롭게 시작해 보고 싶다는 마음에 스스로 선택했다"고 말했다.

    시작은 펜실베이니아에 위치한 한 학년에 25명이 채 안 되는 작은 기독교 학교에서였다. 이양은 등교 첫날의 어색함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낯선 환경에 놓이자 모든 것이 불편하고 어색했어요. 홈스테이 생활, 학교 수업시간,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은 외국인 친구들과의 관계 등 도무지 편한 것이 하나도 없었어요. 한국에서 오랫동안 유학 준비를 하지 않았기에 더 어려웠지요. 세상에 저 혼자인 것처럼 외롭고 우울했어요." 처음 일 년간은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

    이양은 밤마다 한국에 있는 엄마와 통화하면서 점점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 가족을 생각하며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키워나갔다. 2년간의 중학교 생활을 마치자 어느 정도 영어회화가 자유로워졌고 성적도 상위권에 속했다. 좀 더 규모가 큰 고등학교로 진학했을 때 또다시 위기가 찾아왔다. 치열한 경쟁이 그를 가로막은 것이다.

    "작은 학교에 다녔기에 성적 걱정을 크게 하지 않았는데 고등학교는 전혀 달랐어요. 어느 정도 공부를 잘한다고 자부했건만 실력 있는 친구들이 수없이 많음을 알게 된 거죠. 그간 우물 안 개구리였음을 깨달았지요."

    한번 위기를 이겨낸 경험 덕분에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외국인 친구들과의 경쟁에서 이겨야겠다는 오기가 발동했다. 그는 "만약 한국에서 있었다면 친구들과 휩쓸려서 포기했을 수도 있다. 이왕 시작한 유학생활이니 최선을 다해보자고 스스로를 다독였다"고 말했다.

    그는 주변의 만류에도 또 다른 도전을 했다. 미국에서도 손꼽히는 명문고로 전학을 신청했던 것이다. 그가 지원한 저먼타운 아카데미(Germantown Academy)는 역사 깊은 명문 사립학교다. "'네 성적으로는 절대 들어갈 수 없다', '특히 유학생은 버틸 수 없을 것'이라고 주변에서 무시했지만 도전해서 손해 볼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양은 입학 준비에 최선을 다했다. 성적표와 서류뿐만 아니라 미술 포트폴리오, 다양한 교외 활동들을 사진으로 담아 제출했다. 그는 "만약 떨어진다면 주위 사람보다도 자신한테 실망할까봐 걱정이 됐다"고 말했다. 하루가 일 년 같은 지루한 기다림 끝에 당당히 합격 소식을 들었다.

    이양은 유학은 결코 누가 시켜서가 아닌 본인의 의지가 확고했을 때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유학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스스로 한계를 규정짓지 말라고 조언한다. "유학생활은 절대 만만치 않아요. 수업을 따라가는 것도 힘들고, 영어로 인한 스트레스도 심하죠. 하지만 스스로 나약해지지 않는 태도가 중요해요. 스스로 당당해져야 다른 사람이 무시하지 않아요. 제가 만약 힘들다고 포기했다면 미국의 명문고에서 공부 잘하는 친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지금의 순간도 없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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