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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프씨, 어제 어디 갔었어요?"(천영숙 교수)
"공부했어요. 한국 말 어려워요."(아리프씨)
지난 14일 오후 대전 카이스트 문지캠퍼스 본관 8층 세미나실에서는 더듬더듬 서툰 한국말이 들렸다. 튀니지·알제리·남아프리카공화국·브라질·칠레·방글라데시·예멘·베트남 출신 학생 10여명이 1시간 동안 '국가 정보화 백서' 같은 IT 관련 공문서를 교수와 함께 읽고 있었다.
이들은 카이스트에서 글로벌 IT기술대학원프로그램(ITTP) 과정을 밟고 있는 학생들이다. ITTP는 개발도상국의 IT 관련 공무원이나 IT 기술 전문가들을 위한 '맞춤형 석·박사 과정'으로, 현재 전세계 31개국의 IT 전문가 42명이 재학 중이다.
이 과정을 총괄하는 노재정 경영과학과 교수는 "ITTP는 학생들에게 단순히 학위 과정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선진 IT 기술을 외국에 알리고 친한파(親韓派)를 길러내는 역할을 한다"고 밝혔다.
노 교수는 "ITTP 프로그램은 카이스트가 추구하는 국제화의 방향을 보여준다"며 "단순히 외국 학생이나 교수를 많이 데려오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국적의 실력 있는 외국인들을 데려와 공동 연구를 하는 등 카이스트의 브랜드를 세계에 알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
◆인터내셔널 키친과 이슬람 기도원
튀니지 출신으로 3년 전 카이스트에 와 석사과정을 마치고 현재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아민(Amine ·33)씨는 "카이스트에서는 외국인이라서 불편했던 적이 별로 없다"고 말했다. 강의가 100% 영어로 진행될 뿐 아니라 다른 대학 시설에서도 영어로 소통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는 것이다. 한국 학생들이나 교수들이 외국인이라서 차별하거나 소홀히 대한다는 생각이 든 적도 없다.
아민씨는 "진정한 국제화는 외국인들도 현지 학생들과 똑같이 공부하고 생활할 수 있는 것인데, 카이스트가 바로 그런 곳"이라고 말했다.
아민씨 같은 외국인 학생들이 카이스트에서 한국인과 똑같이 불편없이 생활하기까지는 학교의 꾸준한 노력이 있었다. 시발점은 카이스트가 처음으로 20대 외국인 교수로 채용한 미국인 메리 캐서린 톰슨(Thompson·29) 건설·환경공학과 교수가 2008년 서남표 총장에게 쓴 장문의 편지였다.
톰슨 교수는 편지에서 외국인으로서 교내 생활에서 느낀 불편한 점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인터넷 사용이나 쓰레기 처리 문제, 시설 사용법 등 정보를 담은 매뉴얼이 필요하다는 내용 등이 담겨 있었다. 카이스트는 즉시 회의를 열고 톰슨 교수의 건의 사항을 살폈고, 하나씩 개선해 나가기 시작했다.
최근 학교는 캠퍼스 나눔관에 한국 음식에 적응이 어려운 외국인 학생들을 위해 '인터내셔널 키친(International Kitchen)'을 열었다. 중국·베트남·인도·파키스탄 등 다양한 국적의 학생들이 자신들만의 냉장고에 재료를 넣어두고 전통 음식을 해 먹을 수 있는 시설이다.
행정동에 있는 '이슬람 기도실'에는 매일 사우디아라비아·인도네시아·모로코·가나·우즈베키스탄 출신 학생 40여명이 기도를 올리고 종교 의식을 치른다. -
◆학부 강의 90%를 영어로
카이스트는 일찌감치 캠퍼스 국제화에 발벗고 나섰다. 서남표 총장은 2007년 "신입생부터 100% 영어 강의를 진행하겠다"고 선언했다. 그 결과 학부 과정의 영어 강의 비율은 2007년 39.7%에서 작년 89%까지 급증했다. 대학원 과정도 1명이라도 외국인 학생이 있으면 영어로 진행하는 것이 원칙이다.
외국인 교수 비율도 점차 높였다. 서 총장은 취임 후 "2010년까지 학부 과정 외국인 교수 비율을 15%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우수 외국인 교원을 초빙했다.
2009년에는 라비 쿠마르(58) 서던캘리포니아대학(USC) 마셜경영대학원 부학장을 경영대 학장으로 초빙하기도 했다. 외국인을 경영대 학장으로 초빙한 것은 카이스트가 국내 최초다.
카이스트의 국제화 성과는 국제 대학평가에서도 드러난다. 조선일보와 영국의 대학평가 기관 QS가 지난 5월 발표한 '2010년 아시아대학평가' 국제화 부문에서 카이스트는 아시아 13위를 기록했다. 전체 교원 중 외국인 교원 비율이 14.2%에 달하고, 외국인 학생 비율도 10%에 가깝다. 전체 학생 1만명 중 외국인 학생은 70개국 600여명이다.
카이스트 이광형 교무처장은 "외국인 학생들을 위한 전폭적인 장학금 제도 등을 도입해 실력 있는 외국인을 끌어들이고 있다"고 밝혔다.
[글로벌 명문 카이스트] 영어 강의·이슬람 기도실… 배려에 반해 '친한파'<親韓派> 됐어요
김연주 기자
carol@chosun.com
카이스트국제화 현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