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再修공화국] 빈자리 많은 1학년 강의실… "분위기 어수선"
유석재 기자 karma@chosun.com
기사입력 2010.06.19 03:11

[再修공화국] [中] 대학교육 공동화(空洞化)
"신입생 중 20% 정도가 半修택한 서울 사립大도"
정원 채우려 편입생 선발 지방대까지 도미노 현상

  • 올해 고려대 이과대에 입학한 A(19)씨는 기말고사가 막 끝난 이번 주부터 강남의 재수(再修) 전문학원에 다니고 있다. A씨는 "우리 반(班) 학생 30명 중 4명은 아예 입학 직후부터 반수(半修)를 선언하고 준비에 들어갔다"고 전했다. 주변에서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는 "교수님들이 격려해 주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말리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대학 합격 뒤 또다시 입시 공부에 뛰어드는 '반수'가 이젠 보편적 현상으로 굳어졌다. 서울 한 사립대의 B 교수는 "신입생 중 20% 정도는 반수를 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며 "학생들이 당장 휴학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1학년 1학기 수업은 으레 분위기가 어수선하다"고 말했다.

    정시모집은 '재수생 루트'

    수능 최상위권 학생들이 몰리는 서울대 경영대는 올해 신입생 중 정시모집으로 선발된 50명 중에서 26명(52%)이 재수생 출신이었다. 57명 모집에 21명(36.8%)이었던 지난해에 비해 재수생 비중이 급증한 것이다〈표〉.

  • 수시모집에서 재학생이 대다수인 것과 비교해 보면 점차 '정시는 재수생, 수시는 재학생'의 입학 루트가 굳어져가는 양상이다. 서울대 의예과에서도 지난해 정시모집으로 들어온 신입생 26명 중 재수생은 8명(30.8%)이었으나, 올해는 27명 중 11명(40.7%)으로 늘어났다.

    서울대의 한 인기학과의 C 교수는 "우리 과 신입생 출신학교 1위는 연세대, 2위는 강남 모 유명학원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다"고 말했다.

    다른 서울 상위권 대학의 인기 학과들도 비슷하다. 성균관대 경영학과는 올해 신입생 228명 중 87명(38.2%)이 재수생이었다. 정시 모집만 따지면 118명 중 55명(46.6%)에 달한다. 연·고대에서는 의대와 경영학과, 사회과학대 등에서 재수생이 강세를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취업 약한 '문·사·철'의 타격

    반수생으로 인한 '학생 공동화(空洞化)' 현상에선 대학들 사이에 미묘한 차이가 일어나고 있다. 수도권 상위권 대학에선 실제로 학업 분위기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지만, 나머지 대학들에선 사정이 다르다는 것이다.

  • 대학에 합격하고도 휴학을 하고 반수에 들어가는 학생들이 늘고 있다. 17일 오전 수도권 한 사립대의 1학년 인문계 교양과목 기말고사가 치러지는 강의실에 빈자리가 많다. /유석재 기자 karma@chosun.com
    ▲ 대학에 합격하고도 휴학을 하고 반수에 들어가는 학생들이 늘고 있다. 17일 오전 수도권 한 사립대의 1학년 인문계 교양과목 기말고사가 치러지는 강의실에 빈자리가 많다. /유석재 기자 karma@chosun.com
    반수생인 연세대 문과대 학생 D씨(19)는 "반수에 실패했을 경우에 대비한 스펙(학점 등 외형적 조건) 관리도 중요하기 때문에 1학기 내내 수업을 빠지지 않고 충실하게 들었다"고 말했다. 고려대 문과대의 E 교수는 "반수생들은 워낙 티 나지 않게 학교에 다니기 때문에 2학기에 휴학을 하고 나서야 '아, 그 친구가 여태까지…'라며 놀라곤 한다"고 말했다.

    반면 서울 중위권 대학의 F 교수는 "학기 말에 가까워질수록 점점 강의실에 빈자리가 늘어난다"며 "1학년 1학기 수업에선 리포트를 내지 않거나 시험에 들어오지 않고 대충 때우려는 학생들이 많다"고 말했다. 학적(學籍)만 걸어놓을 뿐 사실상 그 대학에서의 학업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수도권 사립대의 G 교수는 "반수를 한 번 실패하고 나서도 2학년 때 '2.5수'에 도전하는 학생들도 종종 눈에 띈다"고 했다.

    학생 유출의 위기감은 취업에 약하다고 지목되는 학과일수록 더 크다. 부산 사립대의 H 교수는 "문사철(文史哲) 학과 교수들은 '큰일 났다. 손님이 없으면 결국 학과가 없어지는 게 아닌가'라며 걱정한다"고 말했다. 서울 중위권 대학의 어문계열 학과 I 교수는 "학기 초 신입생을 상담할 때 반수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는 학생들이 많은데, 그럴 때 참 슬프지만 붙잡을 수도 없어 난감하다"고 했다.

    중하위권 대학은 등록금 수입 감소

    반수생 증가는 등록금 수입 감소를 의미하기 때문에 중하위권·지방 대학들에 경영 위기로 작용하기도 한다. 반수에 따른 학생 유출→학생을 메우기 위한 편입생 선발 증가→지방대 공동화 현상→중국 등 외국인 유학생 유치로 메우기의 도미노 현상을 초래한다는 지적도 있다.

    대학들은 자구책을 마련하기도 했다. 서울 한 사립대의 교직원 J씨는 "최근 들어 많은 대학이 1학년 1학기에는 휴학을 하지 못하도록 교칙을 바꿨다"고 말했다. 이 학교의 경우 병원에 입원하거나 입대 영장이 나오지 않는 이상 입학하자마자 휴학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도 반수에 뜻을 굳힌 학생들을 막을 방법은 없는 것이 현실이다. 전문가들은 "내신 때문에 서울대에 가기 어려운 외고 등 성적이 좋은 고교 출신 학생들일수록 반수에 대한 의지가 클 것"이라고 지적한다. 수도권 68개 일반 대학의 휴학생은 2001년 19만1215명(28.6%)에서 지난해 22만5416명(30%)으로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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