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높이 학습·과학적 훈련 "운동도 공부도 포기할 순 없죠"
김소엽 맛있는공부 기자 lumen@chosun.com
기사입력 2010.06.14 03:11

[맛공이 떴다] 정규수업하는 천안중 운동선수

  • 이번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당시 몇몇 메달리스트 중에는 '직업'을 가진 선수들이 눈에 띄었다. 과학교사, 회사원, 치기공사 등 외국 선수들의 직업 분포도는 놀라웠다. 회사도 다니면서 오후시간에는 훈련하고 올림픽에 나가 메달까지 따는 선수들. 그들과 우리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우리 체육교육의 현실은 내실보단 메달 모으기에 급급하다. 때문에 아이들은 물론, 학교와 학부모까지도 학업에 소홀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충남 천안중학교 축구부는 다르다. 공부하는 학생선수 육성 시범학교 지정 후 아이들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부상과 프로 전향 실패, 그 이후도 생각해야

  • 운동과 공부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천안중 축구부 학생들./임수열 객원기자
    ▲ 운동과 공부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천안중 축구부 학생들./임수열 객원기자
    “운동을 하더라도 공부를 포기할 순 없죠. 하지만 훈련에만 매진하는 다른 아이들을 보면 이러다 우리애만 뒤처지는 것 아닌가 걱정이 앞서는 것도 사실이에요” 야구선수 아들을 둔 한 엄마의 고민이다. 운동만 시키자니 부상이나 프로 전향 실패로 운동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왔을 때 대책이 없어 막막하다. 천안중 이건엽 체육교사 역시 학창시절 축구선수로 꿈을 키웠던 축구 꿈나무였다. 이 교사는 “중학교 때 부상 후 학업을 따라잡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고교 시절 부상을 당했더라면 더욱 힘들었을 것이다. 운동하는 아이들은 하루 24시간 운동으로 깨어나 운동으로 잠이 든다. 이런 아이들에게 아무런 대책 없이 운동을 접는 것은 최악의 상황”이라고 한다.

    천안중이 ‘공부하는 학생선수 육성 시범학교’로 지정 된 후 아이들의 변화는 이 교사도 놀랄 정도다. 희망 진로가 대학 진학과 직업선수 단 두 가지였던 아이들이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진로교육 후 스포츠 해설자, 축구 지도자, 스포츠용품 마케터, 스포츠 매니저 등 다양해진 것은 물론 목표까지 확실해졌기 때문이다. 이런 변화는 아이들로 하여금 학습 동기부여로 이어졌다.

    그러나 시범학교 초기 학부모들의 반발은 만만치 않았다. 아이들이 정규수업을 듣는 동안 타학교 선수들은 훈련에 임하기 때문이다. 이 교사는 “경기 실적이 진학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학부모들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는 간다. 하지만 프로그램 이후 아이들의 수업시간은 45분 정도 늘었을 뿐이다”고 한다.

    과거에는 점심식사 후 훈련을 했지만, 현재는 6교시까지 정규수업을 마치고 훈련에 임한다. 수업 시간에 잠만 자던 아이들도 수업 후 선생님께 질의응답을 받는 수업 관찰 체크리스트, 학급별 우수학생과의 1:1 멘토링, 수업 결손 보충학습, 진로 상담 및 인성 지도 등을 통해 학습태도는 물론 평균 점수까지 10점 이상 향상됐다.

    ◆정규수업, 과학적 훈련으로 공부짱·운동짱

    지난 5월 3일 교과부가 발표한 ‘선진형 학교 운동부 운영 시스템 구축 계획’에 따르면 앞으로 학업 성적이 전교생 평균 수준에서 미달하는 학생 운동선수는 시·도 및 전국 단위 경기대회에 출전하지 못하게 된다. 이 교사는 “훈련에 학업까지 아이들에게 너무 무리수를 두는 게 아닌가 하는 주변의 염려도 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100점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최하 점수를 받던 아이에게 최저 학력 수준의 평가를 원하는 것이다. 학습에 대한 동기부여, 그것이 바로 학습권 보장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봉선호(축구부·2학년)군은 스포츠 글로벌 인재 육성 프로그램 중 하나인 한자 자격증 취득(5급)에 도전하고 있다. 봉군은 “수업 태도부터 달라졌다. 멘티 친구도 있고 수업 후 테스트도 봐야 해서 집중해서 듣는다. 성적이 오르는 것도 신기하고 재밌다”고 했다. 같은 학년 박은석(축구부)군의 성적그래프도 상향 곡선이다. 박군은 “이번 중간고사에서 영어는 95점이나 받았다. 프로선수가 되려면 해외경기도 있을 텐데 외국어 실력도 탄탄히 다져 학업과 운동 어떤 면에서도 밀리지 않는 국제적인 선수가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외에도 천안중에서는 학생선수들을 위한 보충학습지를 만들어 홈페이지에 게재하고 아이들 수준에 맞는 해설을 덧붙이는 등 눈높이 학습을 진행하고 있다. 이 교사는 “아이들 성적은 물론 경기 실적도 상위권이다. 주말리그 성적 1위, 충남 대표팀 소년체전 우승 등 과학적 훈련 프로그램 역시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체력단련실, 프로선수들의 원 포인트 레슨, 아이들의 체력 변화도를 한눈에 보는 PAPS(학생건강체력평가제도) 등이 그것이다. 천안중 안홍렬 교장은 “몇몇 학교가 아닌 모든 학교가 동참해 경기력이나 학습력에 부족함이 없도록 철저한 지원이 따라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교육과학기술부 정상익 교육연구사는 “차츰 더 많은 학교들이 참여할 예정이다. 주말리그를 활용해 주중 수업시간 피해를 줄이고 다양한 스포츠 전문가를 양성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할 생각”이라고 지원 계획을 밝혔다. 고려대학교 체육위원회 위성식 위원장은 “모든 종목의 학생선수들을 위해 주말·방학리그제를 시급히 확산해야 한다. 한 선수가 일평생 운동만으로 보내는 시간은 매우 짧다. 그 외 나머지 인생에도 의미를 둘 수 있도록 다각적인 학습 지원과 국가적 관심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