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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I have a language of origin?"
"Greek."
"Oh, I see. p.a.r.a.d.i.g.m."
"That's correct."
지난 6월 3일 아침, 미국 워싱턴 DC 그랜드하얏트 호텔.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스펠링 공부에 여념이 없었다. 서로 문제를 내주고 맞히며 즐거운 웃음이 터져 나온다. 같은 대회에 참가했지만, 서로 경쟁자라는 의식은 전혀 없는 듯했다. 승패에 상관없이 모두 함께 즐기는 대회가 바로 '스크립스 내셔널 스펠링 비(Scripps National Spelling Beeㆍ영어단어 철자 말하기 대회)이기 때문이다.
◆국적·인종 상관없이 우정 쌓는 축제 같은 대회 -
15세 이하 학생들이 참가해 영어 단어 실력을 뽐내는 '2010 스크립스 내셔널 스펠링 비(이하 SNSB)'가 지난 6월 2일(현지 시각)부터 5일까지 미국 워싱턴 DC 그랜드하얏트 호텔에서 열렸다. 미국 스크립스사가 주최하며 매년 1000만 명 이상의 초·중학생이 참가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교육행사로, 올해 83회째를 맞았다.
SNSB는 국가, 국적, 인종에 상관없이 다양한 출신의 학생들이 어우러져 우정을 쌓고, 열띤 경쟁을 벌이는 것이 특징. 처음에는 미국 학생들만 참가하다가 점차 캐나다, 멕시코, 뉴질랜드, 독일, 한국, 바하마 등으로 참가 지역이 넓어졌다. 인도계 학생으로 이 대회에 네 번째 참가한 뉴욕 주(州) 대표 니투 챤닥(Neetu Chandak·14·Seneca Falls Middle School)양은 "친구들과 모의 스펠링 비를 할 정도로 스펠링 비 공부를 즐긴다. 이 대회에 참가하면서 새로운 단어, 개념, 어원 등을 알게 됐다"고 전했다. 릴리 조던(Lily Jordan·13·Cape Elizabeth Middle school) 양은 "참가자 사진이 모두 들어 있는 사인북에 서로 사인을 받으면서 새로운 친구를 많이 사귀었다"고 말했다. -
SNSB는 필기시험으로 치르는 1라운드, 구술시험으로 치르는 2·3라운드 점수를 합산해 준결승 진출자를 가린다. 준결승부터는 정답을 맞힌 출전자만 다음 라운드로 진출하는 토너먼트 방식으로 진행된다. 올해는 총 273명의 참가자 중 48명이 준결승에 올랐고, 최종 결승에는 11명이 올라 실력을 겨뤘다.
한국 대표로는 지난 2월 한국 대표 선발전(국제영어대학원대학교 주관·윤선생영어교실 후원)에서 우승한 김현수(14·대원국제중2)양이 출전했다. 해외 유학 경험 없는 순수 국내파 영어 영재로, 지난해 10월 국내 최연소로 토플 만점을 받았을 만큼 뛰어난 영어실력을 자랑하는 김양은 2·3라운드 출제 단어를 모두 맞히며 선전했지만, 아쉽게도 준결승에는 진출하지 못했다. 김양은 "제가 아는 단어가 많다고 생각했지만, 모르는 단어도 많이 출제돼 앞으로 더 정확하게 공부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내년에 한 번 더 출전하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어머니 이우숙씨(48) 역시 "오히려 현수가 자신의 부족한 점을 깨달아 영어실력을 한층 더 성장시킬 좋은 기회가 됐다"고 말했다.
올해 우승은 아나미카 비에라머니(Anamika Veeramani·14·Incarnate Word Academy)양에게 돌아갔다. 우승자를 결정 지은 챔피언 단어는 'stromuhr(동맥으로 흐르는 혈액의 양과 속도를 측정하는 도구)'. 이로써 SNSB 우승은 3년 연속 인도계 학생이 차지했다. 아나미카 비에라머니 양은 "7살부터 시작해 7년 간 스펠링 비 공부에 노력을 기울였다. 스펠링 비는 단순히 철자나 뜻을 외우는 것이 아니라 어원 등을 깊이 공부해야 하는데, 영어 외에 다른 외국어 공부를 했던 것이 큰 도움이 됐다"고 우승 소감을 전했다.
◆한국대표 외에 참관학생 동행… 문화체험 기회 넓혀
특히 올해는 김현수양 외에 국내 대회에서 금상을 받은 이성환(14·청심국제중 2)군과 동상 수상자 김규리(14·성남 청솔중2)양, 우수상 민성아(14·서울 용강중3)양이 대회를 참관하기 위해 함께 워싱턴을 찾았다. 이성환군은 "대회에서 이기고 지는 것에 상관없이 모두가 박수를 받고, 서로를 축하하며 축제처럼 즐기는 모습이 부러웠다. 또 수백 가지가 넘는 어원 규칙을 공부해 단어를 맞히는 아이들의 실력에 놀랐다"고 전했다. 또한, 지난 국내 대회에서 출제위원을 맡아 방한했던 자크 베일리 박사(미국 버몬트대 고전학 교수)가 미국 본선에서도 출제위원장을 맡아 눈길을 끌었다. 그는 단어 외우기를 지루한 공부로 여기는 학생들에게 "단어를 모두 외우려 하지 말고 어원을 공부하라. 그리스어 어원 하나를 알면 그것으로 100단어를 알 수 있다"며 어원 공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미국 가정에서는 이미 이러한 '스펠링 비' 식의 공부가 일상화돼 있다고 했다.
"많은 미국 부모들이 자녀와 친구들을 모아 어원, 역사 등을 생각하게 하면서 게임처럼 단어를 가르칩니다. 어원이나 역사를 알면 단어 공부가 훨씬 재미있죠. 또 주제별로 단어를 외우면, 같은 어원을 가진 단어가 많아 훨씬 흥미롭게 공부할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신체'에 대한 단어를 외우면서 그리스어 어원을 알게 되면, 힘든 의학용어를 쉽게 알 수 있죠. SAT나 토플 단어도 이와 같은 방식을 공부하면 더 효과적입니다."
축제처럼 즐기는 대회… "어원 알면 영어가 쉬워져요"
워싱턴DC 글·사진=오선영 맛있는공부 기자
syoh@chosun.com
[해외취재] 2010 스크립스 내셔널 스펠링 비 대회 현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