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학회도 인정한 논문 쓸 정도
안준호 기자 libai@chosun.com
기사입력 2010.06.02 02:57

서울과학고 학생들, 자율교육 뒤 '실력 쑥쑥'
'지정 교과서 수업' 대신 교사와 학생이 협의해 과목 선정하고 교재 제작
대학 2~3학년 수준 수업

  • 지난 4월 한국물리학회 학술대회는 행사 직전 발표자 한 조가 갑자기 바뀌었다. '양자(量子)공간 검색에서 자기장의 역할'이란 뛰어난 논문을 제출해 발표자로 선정됐던 '박현준·한승표' 두 사람이 서울과학고 2학년으로 밝혀졌기 때문이었다. 당황한 학회는 "고등학생이 발표한 전례가 없다"며 이들의 발표를 취소했다.

    서울과학고 학생들이 물리학회에서도 인정받는 논문을 제출할 만큼 실력을 갖추게 된 것은 학생들이 원하는 수업을 하는 덕분이다. 서울과학고에서는 올 들어 일요일마다 저녁 시간에 특별수업으로 양자론과 유기화학실험, 일반물리학연습 수업이 진행되고 있다. 2학년들이 요청한 이 수업은 모두 대학 물리학과·화학과 2~3학년들이 배우는 과정이다.

  • 지난달 30일 오후 7시쯤 서울 종로구 혜화동 서울과학고 실험실에서 학생들이 일요일인데도 화학 실험을 하고 있다. 서울과학고는 올해부터 학생들 요청에 따라 일요일 저녁 시간에 대학교 수준의 물리, 화학 수업을 하고 있다. /채승우 기자 rainman@chosun.com
    ▲ 지난달 30일 오후 7시쯤 서울 종로구 혜화동 서울과학고 실험실에서 학생들이 일요일인데도 화학 실험을 하고 있다. 서울과학고는 올해부터 학생들 요청에 따라 일요일 저녁 시간에 대학교 수준의 물리, 화학 수업을 하고 있다. /채승우 기자 rainman@chosun.com
    어스름이 깔린 30일 저녁에도 서울 혜화동 서울과학고 3층 물리강의실에서는 2학년 9명이 초롱초롱한 눈으로 물리학 박사인 김성준(40) 교사의 양자론 강의를 들었다. 학생들은 김 교사가 칠판에 적어놓은 증명 문제 4개 가운데 2개를 금세 풀어냈다.

    서울과학고는 2008년 과학고에서 과학영재학교로 전환했다. 과학고 시절에는 지정된 교과서로 수업해야 했지만, 영재학교로 전환한 뒤로는 교육과정을 교장 자율에 따라 결정할 수 있게 됐다. 학생들 요구에 맞춰 교과과정을 편성할 수도 있고 교사들이 학생들 요구를 반영해 교재도 만든다. 교사가 개설할 수 있는 강의를 제시해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하고, 반대로 학생들이 스스로 수강생을 모아 교사에게 과목 개설을 요청하기도 한다. 대학생보다 더 적극적이다.

    이 학교 교사 69명 전원이 석사학위 이상이고, 이 중 14명은 박사학위 소지자다. 하지만 교사들도 학생들의 날카로운 질문에 진땀을 흘리기 일쑤다. 김성준 교사는 "교사들이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도 학생들은 '왜 그러냐'고 따지기 일쑤"라며 "일주일 내내 수업준비하느라 쉴 틈이 없다"고 했다.

    서울과학고는 공립학교이지만 전 교원이 1년 계약직이다. 매년 학생과 학부모, 동료교사들이 교원평가를 시행해 점수가 떨어지는 교사는 다른 학교로 옮겨야 한다. 박희송(61) 교장은 "3월초 첫 직원 조회 때 교사들에게 '수업 평가가 떨어지는 교사는 후배 교사들에 양보해달라'고 말했다"며 "학생들의 지적 욕구를 최대한 충족시키기 위해 학생과 교사 모두가 함께 노력한다"고 말했다.
  • ▲ 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과학고 4층 실험실에서 학생들이 화학 실험을 하고 있다. 이 학생들은 일요일에 실험 수업을 개설해달라고 스스로 학교 측에 요청했다. /채승우 기자 rainman@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