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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가정은 자녀 중심으로 돌아간다. 특히 엄마들은 '자녀 교육'에 모든 것을 걸곤 한다. '어떻게 해야 공부를 잘하고, 좋은 대학에 갈 수 있을까'를 밤낮으로 고민한다. '엄마 말만 잘 들으면 좋을 텐데 아이가 왜 따르지 않고 반항만 하는지'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런 고민에 대해 엄마 전문가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서형숙 엄마학교 대표, 송지희 큐이디부모학교 연구위원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아이 키우면서 어떻게 화를 안 내요?
아이를 키우다 보면 엄마는 하루에 열두 번씩 화가 난다. "힘들게 일하고 퇴근해 보니 집은 엉망이고, 아이는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컴퓨터 게임이나 하고 있다. '욱'하고 화가 치밀어 잔소리를 쏟아내지만 아이는 들은 체 만 체 한다"는 사연은 비단 한 가정만의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서형숙=저는 화가 날 때 제 자신을 살펴봤어요. '왜 화가 날까?' 엄마가 화를 내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예요. 욕심과 두려움. 엄마 욕심대로 아이가 따라오지 못하니까 화가 나고, 반대로 '우리 애는 똑똑한데 나처럼 무능력한 엄마를 만나서 못하는 건가'하는 두려움 때문에 화가 나기도 하죠. 그렇다고 때리면 말을 듣나요? 화가 날 때는 바로 야단치지 말고 엄마가 한 박자 쉬어야 돼요.
송지희=부모의 감정조절이 가장 중요해요. 엄마 스스로 화를 조절할 줄 알아야 아이도 그 모습을 배워요. 화가 날 때는 "엄마가 화가 나서 지금 좀 힘드니까 잠깐 밖에 나갔다 올게"라고 하세요. 동네 한 바퀴 걸으면서 화를 가라앉힌 다음, 아이 이야기를 먼저 듣고 엄마의 생각을 이야기하세요.
공교육이 엉망인데 어떻게 학원에 안 보내요?
엄마들의 큰 고민 중 하나는 '어떤 학원에 보내야 할까'이다. 학교에서 제대로 가르치지 않으니 학원에 보낼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서형숙=엄마가 먼저 '학교에서 잘 가르친다'는 믿음을 가져야 해요. 저는 설령 담임선생님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있는 힘껏 믿으려고 노력했어요. 그랬더니 정말 학교가 제 아이를 잘 가르치고 키워주더군요. '1등으로 시작해야 한다'는 욕심도 버리세요. 제 경우에는 둘째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매번 수학을 50점 받았어요. '절반이나 맞았으니 잘했다'고 칭찬하고, 틀린 문제만 다시 풀어보게 가르쳤죠. '내년에는 60점, 그 다음 해엔 70점 받자'고 다독였어요. 그랬더니 6학년 때는 정말 100점 받더라고요.
송지희=공교육도 바뀌어야 할 점은 분명 있어요. 그렇다고 학원만 보내면 공부를 잘할까요? 학원에서도 80% 학생은 들러리예요. 제 딸아이 친구는 방학 중에도 하루 8시간씩 학원에 다니는데 성적이 안 오른대요. 그 아이 엄마는 "왜 성적이 안 오르지? 공부 더 해!"라고 윽박지르고요. 지금 중고교에선 한 반 30명 중 기껏해야 5명 정도만 수업을 제대로 들어요. 분명 잘못 가르치는 학교 선생님도 있겠죠. 하지만 학교에서 수업을 잘 듣고, 아이 스스로 '이 과목은 내가 보충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학원을 찾게 하는 게 옳아요. -
그럼 학원은 언제 보내요?
3~4년 전만 해도 외고 준비는 4~5학년에 시작하는 게 보통이었다. 요즘에는 그 시기가 1~2학년으로 내려왔다. 초등 1학년부터 배워야 할 내용과 그에 맞는 학원 명단도 정해져 있다. 분명 '내 아이의 교육'이건만, 그 기준은 '옆집 엄마'다.
서형숙=저는 '적기 교육'을 중시했어요. 큰아이는 수학을 무척 힘들어했는데, 중학교 3년 내내 학원 안 가고 온갖 방법을 찾아내서 혼자 공부했어요. 그러고 나서 고1 때 수학 과외를 시켰더니 남들 3년 공부를 몇 달 만에 해내더군요. 혼자 노력한 만큼 자기 문제를 정확하게 아니까 해결책을 금세 찾은 덕분이죠. 우리나라 엄마들의 높은 교육열은 사실 좋은 거예요. 단, 웃으면서 가르쳐야 돼요. 저는 '내가 잘하고 있나. 우리 아이가 행복한가'를 매일 밤마다 생각했어요.
송지희=무조건 학원이 나쁘다는 얘기가 아니에요. 아이가 학원에 다니길 원하는지, 어떤 학원에 다니고 싶은지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선택권을 아이에게 줘야 한다는 뜻이죠. 어떤 어머니는 중3 아이가 '수학학원이 너무 힘들다'고 호소했더니 '지금까지 엄마가 골라준 학원 중 나쁜 곳이 있었어? 그냥 다녀'라고 딱 잘라 말했대요. 중3이나 된 아이를 이런 식으로 다루는 가정이 굉장히 많아요. 아이가 사춘기가 되고 자기 생각이 생기면 엄마가 선택권을 위임하세요.
다들 선행학습 하는데 안 시키면 불안해요
입시 경쟁이 심해지면서 1~2년 정도의 선행학습은 이제 '기본'이 됐다. 초등 1학년이 고학년 6학년 수학을 공부하고, 초등 6학년 때 고교 과정을 배우는 경우도 허다하다. 엄마 입장에서는 내 아이만 뒤처지는 것 같아 불안하다.
서형숙=초등학교 때 아이들을 학원에 안 보내면서 솔직히 저도 불안했어요. 당시는 서울 압구정동에 살았는데, 주변 엄마들이 공부 시키는 걸 생각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였죠. 그래도 참았어요. 마음껏 놀고 혼자 생각할 수 있는 여유를 줬죠. 요즘 엄마들은 '놀이가 곧 공부'라는 걸 안 믿지만, 사실 놀이가 공부의 바탕이에요. 저희 아이들은 "학교에서 매일 새로운 걸 배우니까 재미있다"고 입버릇처럼 말했죠. 놀이터에서 하루 종일 개미를 보면서 논 적이 있는데, 어느 날 학교에서 '개미의 생태'를 배우니까 신기하고 재미있는 거예요. 답만 잘 맞히고 시험만 잘 보면 된다는 건 엄마의 착각이에요.
송지희=사실 선행학습은 굉장히 위험해요. 자기 수준에 맞지 않는 어려운 걸 배우면 공부에 흥미를 잃을 뿐 아니라 정서도 망가져요. 정서가 불안정한 아이는 절대 공부를 잘할 수 없어요. 가장 현명한 것은 초등 때는 그 또래에 할 수 있는 공부를 하면서 좋은 습관을 들이는 거예요. 공부에서 성취감, 자존감을 느껴야 지속적으로 공부할 수 있어요. 무리한 공부를 계속하면 아이는 어린 나이에 지치고 무기력해져서 청소년우울증에 빠질 수도 있어요.
좋은 학교 가려면 스펙을 쌓아야 하는데, 아이가 원하는 대로만 둘 수는 없잖아요?
입학사정관제가 점차 확대되고 있다. 사교육을 줄이는 방안으로 나온 제도지만, 엄마들 사이에선 "입학사정관제 때문에 사교육을 더 시켜야 한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특히 일하는 엄마들은 '내가 정보가 부족해서 아이를 제대로 못 키운다'는 생각까지 한다.
서형숙=초등학생들은 집에서 뒹굴거리며 마음껏 노는 시간이 꼭 필요해요. 최소한 일주일에 3일은 오후에 자유시간을 주세요. 아이 돌봐줄 사람이 없어서 학원 뺑뺑이를 돌린다는 워킹맘도 많지만, 일주일에 3일 정도 오후에만 가사도우미를 쓰면 어떨까요? 초등학교 때는 사실 교육정보도 별 필요 없어요. 수업시간에 잘 듣기, 숙제 잘하기 정도만 지도해도 충분해요. 숙제 마치면 밖에서 뛰어놀게 하세요. 그리고 아이가 절실히 원하는 1~2가지만 사교육을 시키세요.
송지희=입학사정관제가 확대될수록 자기주도력이 중요해요. 엄마들은 자꾸 '전략'을 찾지만, 전략도 '기본기'가 있어야 실행할 수 있어요. 기본기, 즉 좋은 공부습관을 기르는 게 먼저죠. 한 엄마는 외고에 보낼 생각으로 초등 5~6학년에 영국으로 조기유학을 보냈대요. 그런데 귀국 후 아이가 학교 부적응아가 됐어요. 어느 날 중1 아이가 "엄마가 나를 망쳐놨어"라며 대들었대요. 아이들은 사춘기가 되면서 '미래 개념'이 생겨요. 내가 앞으로 뭘 해야 할까, 어떤 공부를 해야 할까를 생각하게 돼요. 꿈을 정하고 목표를 세우고 계획을 세워 실행하는 일이 가능해지죠. 이것을 스스로 할 수 있게 돕는 게 부모의 역할이에요. "아이 성적이 60점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탄하던 초등학교 6학년 엄마가 아이를 대하는 방법을 바꿔 중학교 3학년 때는 평균 90점 이상으로 끌어올린 경우도 있어요. 비결은 일주일에 한 번씩 아이와 티타임을 가진 거예요. 아이가 바라는 것,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잘 듣고 도와주니 자발적으로 공부하는 아이가 됐어요.
엄마와 말도 않는 사춘기 자녀 어떡하죠
'사춘기'는 모든 엄마의 고민이다. 사춘기를 잘 넘기는 비법은 무엇일까?
서형숙=저는 아이들이 사춘기에 들어갈 무렵, '사춘기'에 대해 설명을 해줬어요. "반항심이 들고, 갑자기 화가 나고 그럴 것이다. 그건 당연한 일"이라고요. 그러면 아이도 '내가 비정상이 아니구나'라고 깨닫고, 화가 나도 절제할 줄 알아요. 아이가 방문을 쾅 닫아도 "네가 어떤 행동을 하든 엄마는 너를 사랑해. 하지만 문을 살짝 닫으면 더 예쁘겠다"라고 얘기했죠. 엄마의 감정을 솔직히 표현하되, 절대 화를 내지 않았어요.
송지희=사춘기의 반항은 당연한 거예요. 아이가 자기 생각이 생기면서 한 인간이 되는 과정이라고 인정하세요. 사춘기 아이들은 "내가 알아서 할게. 내버려둬"라고 입버릇처럼 말해요. 그럼 엄마들은 "이제 내가 필요 없나"라며 좌절감을 느끼죠. 억지로 아이를 붙잡으려 하지 말고, 아이 인생은 아이에게 맡기고 엄마 인생을 찾아야 할 때라고 여기세요.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거나 위험한 행동이 아니라면, 엄마가 한발 물러서세요.
나쁜 친구·이성친구와 어울려서 걱정이에요
송지희=한 번은 아이돌 그룹에 빠진 중2 딸과 싸우다 지쳐서 온 부모가 있었어요. 아이가 팬클럽 회장까지 맡아서 학교보다 아이돌그룹 녹화스케줄을 따라서 움직였대요. 우선 그룹 멤버 이름부터 외우고, 왜 좋아하는지 아이에게 묻고 대화하라고 조언했어요. 그 부모는 한발 물러서서 "좋아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한다. 녹화스케줄이 있다면 미리 말해라. 다만 밤 12시는 너무 늦어서 걱정이 되니 10시까지만 있는 것으로 하자. 끝나면 아빠가 데리러 가겠다"고 했대요. 부모가 열린 모습을 보이니 아이도 공부와 학교생활을 소홀히 하지 않게 됐죠. 지나친 통제는 오히려 위험해요. 아이 마음을 이해하고 적당한 선에서 허용해 주세요.
"친구·학교·공부 문제… 아이에게 선택권 주세요"
오선영 맛있는공부 기자
syoh@chosun.com
엄마 전문가의 생생토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