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 a, r, a, n, g, u, e."

"That's correct."

김현수(14·대원국제중 2)양이 한 자 한 자 철자를 말하자, 장내에는 박수갈채가 터졌다. 2010 스크립스 내셔널 스펠링 비(Scripps National Spelling Bee. 이하 SNSB) 한국대회 우승자가 결정되는 순간이었다. 김양은 2월 23일 건국대 새천년관에서 열린 한국 대표 선발전(국제영어대학원대학교 주관, 윤선생영어교실 후원)에서 우승하며 오는 6월 열리는 미국 본선 참가 자격을 얻었다. 이날 대회에서는 전국 예선을 거쳐 올라온 초·중학생 90명이 열띤 경쟁을 벌였다.

4시간 동안 진행된 SNSB 한국대회는 쓰기 시험(written session)과 말하기 시험(oral session)으로 나눠 치러졌다. 쓰기 시험을 통과한 40명의 학생이 말하기 시험에 참가, 마지막 14라운드까지 경합을 벌였다. 말하기 시험은 라운드마다 출제자가 각 참가자에게 단어를 제시하고 철자를 바르게 말한 정답자는 다음 라운드로 진출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참가자들은 단어의 뜻, 어원 등을 출제자에게 묻고 손가락으로 손바닥, 번호표 뒷면 등에 철자를 써보며 침착하게 대답했다.

우승을 차지한 김현수양과 금상 수상자인 이성환(14·청심국제중 2)군은 마지막까지 접전을 벌였다. 김양은 13라운드에서 문제를 틀려 한 차례 탈락했지만, 이성환군 역시 같은 라운드에서 정답을 맞히지 못해 위기를 넘겼다. 이어 14라운드에서 재대결을 펼쳐 김양이 최후의 1인이 됐고, 마지막 챔피언 단어인 'Harangue(열변, a forceful or angry speech)'를 맞히면서 우승의 영광을 안았다. 김양은 "챔피언 단어에서 두 가지 철자가 떠올라 긴장했는데 다행히 최종 선택한 것이 정답이어서 매우 기뻤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녀는 장학금 200만원과 보호자 1인을 포함한 미국 본선 참가 경비 일체를 지원받게 됐다. 아쉽게 우승을 놓친 이군도 장학금 100만원과 미국 본선대회 참관 기회를 얻었다.

김양은 외국에서 공부한 경험이 없는 순수 국내파 영어 영재로 지난해 토플과 토익에서 모두 만점을 받아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김양은 "단어를 익힐 때 단어의 어원이나 역사를 알아두면 도움이 된다"고 공부 비결을 밝혔다. "언어마다 철자를 정하는 일정한 패턴이 있기 때문에 어원을 알면 철자를 유추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또 단어를 따로 외우기보다 생활 속에서 단어를 익힌 것이 효과적이었다. 어머니 이우숙(48)씨는 "SNSB대회 직전에만 홈페이지에 있는 자료집을 보고 공부했을 뿐평소에는 따로 단어를 외우지 않고 책을 읽으며 그 속에서 단어를 익힌다"고 전했다.

이성환군의 공부법도 마찬가지였다. 이군은 "국제중에서 역사 등 다양한 과목을 영어로 배우기 때문에 과목별 전문 용어도 자연스럽게 알게 됐다"고 말했다. 어머니 김인숙(38)씨 역시 "성환이는 평소 접하는 단어를 휴대폰 사전으로 찾아보며 생활 속에서 단어를 외웠다"고 덧붙였다.

한편 올해 한국대회에는 1980년 SNSB 우승자인 자크 베일리 박사(미국 버몬트대 고전학 교수)가 출제자로 참가해 눈길을 끌었다. 베일리 박사는 "모국어가 아닌 제2외국어로 영어를 배운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국 학생들의 실력은 매우 놀랍다"고 소감을 밝혔다.

"언어를 공부할 때는 언어의 역사·의미·어원·패턴 등에도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SNSB에 참가하는 학생들은 단순히 영어 철자를 외우는 것이 아니라 영어권 국가들의 문화까지 함께 배우는 셈이죠. 설령 우승자가 되지 못하더라도 대회를 준비하며 얻은 지식과 경험은 영어를 배우는 데 큰 자산이 됩니다."

우승자인 김양은 오는 6월 미국 워싱턴에서 열리는 미국 본선대회에 참가한다. "미국 대회 참가가 생애 첫 해외여행이라 더욱 설렌다"고 했다.

"SNSB와 같은 세계적인 대회에 한국 학생을 대표해 출전하게 돼 기쁘면서도 막중한 책임감을 느껴요. 미국 본선에 나가 한국 학생들의 영어 실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보여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