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닫으란 소리냐” 평가 놓고 산후조리원장 성토 봇물
이재 조선에듀 기자
기사입력 2019.07.23 18:38

-23일 복지부 ‘산후조리원 평가 컨설팅 사업 설명회’
-로타 등 감염병 관리 필요성 … 2015년 관계법 개정
-‘출생률 저하 등 경영 어려움 큰데 평가는 설상가상’

  • “국가가 산후조리원의 어려움을 알기나 하느냐.” “이런 방식의 평가는 산후조리원 문 닫으란 얘기다.”

    일부 산후조리원 원장이 강한 목소리로 정부를 비판하면서 장내가 일순 격양됐다. 보건복지부와 육아정책연구소가 마련한 산후조리원 평가 컨설팅 사업 설명회는 순식간에 정부의 평가를 비판하는 산후조리원장의 성토장으로 변했다. 

    “정부가 산후조리원의 아픔을 알고 어디서부터 해결할지 생각해봤느냐. 감염병 관리를 하려면 산후조리원보다 개인병원부터 관리하고 컨설팅해라.”

    한 산후조리원 원장은 설명회 말미에 진행된 질의응답 시간에 발언권을 얻어 정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민간 서비스 사업자인 산후조리원을 정부가 평가한다고 나서면서 비현실적인 기준을 설정했단 지적이다. 그는 “이미 3개월마다 보건소의 평가를 받고 있고, 소방관리나 지방자치단체 건축관리·위생관리도 받는다”며 “여기에 더해 또 정부에서 평가를 한다고 나서면 산후조리원 문 닫으란 소리다”고 강조했다.

    ◇ 로타 바이러스 등 산후조리원 감염관리가 평가 배경

    이번 설명회는 오는 2023년으로 다가온 산후조리원 평가에 앞서 평가 대비를 돕기 위해 시작한 산후조리원 평가 컨설팅 사업을 설명하는 자리다. 정부는 국회가 2015년 모자보건법을 개정해 평가에 대한 근거를 마련했고, 정부는 2016년 관련 연구용역을 진행해 산후조리원 평가를 대비했다. 지난해 2회에 걸쳐 시범평가도 진행했다. 평가에 대한 현장의 거부감을 인식해 평가 시기를 2023년으로 미루고 올해부터 3년간 평가에 대비한 컨설팅을 지원하기로 했다. 그러나 대다수 산후조리원 원장은 정부의 이번 평가 시도가 민간영역에 대한 과도한 간섭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산후조리원 평가는 신생아에 대한 감염병 사고가 배경이 됐다. 특히 감기와 유사한 ‘로타’(ROTA) 바이러스가 산후조리원과 유아방, 소아과 내과 등에서 주로 감염돼 감염관리 필요성이 대두됐다. 로타 바이러스는 바이러스성 위장염을 일으키며, 드물게 장애를 남긴다. 2017년 기준 국내 산후조리원 이용률은 75.1%로 높은 수준이라 산후조리원에서의 감염과 안전에 대한 관리를 위해 평가가 도입된 것이다. 

    실제로 극히 일부의 공공산후조리원을 제외하면 관리의 사각지대에 놓인 게 사실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산후조리원에서 발생한 감염병 사고는 1538건에 달한다. 로타바이러스 395건, 감기 345건, RS바이러스감염 319건, 장염 73건 등이다. 현행 체계로는 단속 권한만 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산후조리원의 감염관리를 강화하기 위해선 평가를 통해 국가의 관리감독 체계로 산후조리원을 끌어들이는 게 효과적이다. 

    그러나 산후조리원은 정부의 예산이 전혀 투입되지 않은 민간 사업체이기 때문에 평가에 대한 반발도 거세다. 게다가 최근 출생률 감소로 신생아 수와 산모가 줄면서 경영상 어려움을 겪는 산후조리원이 늘어 평가에 대한 반감도 증폭됐다. 
  • 보건복지부와 육아정책연구소는 23일 서울 중구 프레지던트호텔에서 산후조리원 평가 컨설팅 사업 설명회를 개최했다. 산후조리원 원장 약 180여명이 참석했다. /이재 기자
    ▲ 보건복지부와 육아정책연구소는 23일 서울 중구 프레지던트호텔에서 산후조리원 평가 컨설팅 사업 설명회를 개최했다. 산후조리원 원장 약 180여명이 참석했다. /이재 기자
    ◇ 자율적 평가 내세웠지만 현장선 강제평가 인식 강해

    정부도 이런 반감을 의식해 평가를 원하는 산후조리원만 평가에 임하도록 했지만, 원장들은 실제론 반강제적인 평가라고 입을 모았다. 서울에서 산후조리원을 운영하는 한 원장은 “평가는 자율적으로 참여하라고 하지만, 실제론 각급 병원에서 산후조리원에 대한 평가 결과를 공유하고 산모들에게 홍보할 계획이라고 한다”며 “이렇게 되면 사실상 고객유치를 위해서라도 평가에 임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반강제적인 평가나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평가에 참여했을 경우 얻을 수 있는 효과도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민간 서비스업인 산후조리원에 정부가 직접적으로 예산을 지원할 수도 없기 때문. 한 원장은 “지금까지 출생률 저하로 어려움을 겪고 폐업하는 산후조리원을 보면서도 손을 놓고 있던 정부가 이제와 평가를 하겠다면 상응하는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며 “뭘 어떻게 도울지도 정해지지 않았는데 평가부터 받으라고 하면 어느 업계나 반발이 뒤따르지 않겠느냐”고 지적했다. 

    이날 공개한 일부 평가 지표와 기준도 원장의 원성을 샀다. 천안에서 2년째 산후조리원을 운영하는 한 원장은 “평가를 위해 준비해야 할 서류가 너무 많다”며 “결국 평가에 쫓겨 실제 신생아나 산모 돌봄은 뒷전으로 미루게 될까봐 우려스럽다”고 비판했다. 

    가장 쟁점이 된 지표는 모자동실과 모유수유다. 모자동실은 아이와 산모가 함께 쓰는 방이다. 모자동실 운영을 늘리고 모유수유를 10시간 이상 하면 가산점을 준다. 이곳에서 아이와 산모가 유대감을 키우고 모유수유를 하는 등 돌봄이 이뤄진다. 그러나 최근 결혼연령이 높아지고 아이를 낳는 연령도 과거와 달리 30대~40대로 높아지면서 모자동실이나 모유수유를 강조하는 게 산모의 건강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반론이 많다. 

    한 원장은 “사회적으로 산모의 연령이 높아진 현상을 전혀 반영하지 않은 채 아이와 무조건 같이 지내는 시간을 늘리고 모유를 많이 줘야 한다는 건 탁상공론”이라며 “아이를 따로 돌봐줄 여력이 없고 당장 사회로 복귀해야 하는 산모가 산후조리원을 찾는데 그마저도 아이돌봄을 위해 희생하라는 논리”라고 성토했다. 
  • 산후조리원장들은 이날 정부의 평가에 대해 강하게 반발했다. 민간서비스업에 대해 정부가 과도한 관리감독 권한을 행사한다는 비판이다. 설명회가 끝난 뒤 정부 관계자에게 몰려가 항의하는 원장들의 모습. /이재 기자
    ▲ 산후조리원장들은 이날 정부의 평가에 대해 강하게 반발했다. 민간서비스업에 대해 정부가 과도한 관리감독 권한을 행사한다는 비판이다. 설명회가 끝난 뒤 정부 관계자에게 몰려가 항의하는 원장들의 모습. /이재 기자
    ◇ 산후조리원 질 제고 인식도 … 당국 “현장 참여 필요” 당부

    모든 원장이 평가에 반발한 것은 아니다. 일부 원장은 시설이 열악한 산후조리원의 질을 끌어올리고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평가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대구에서 5년째 산후조리원을 운영하는 원장은 “처음 도입은 어렵겠지만 한번 평가를 받고 나면 유지관리하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을 것”이라며 “평가를 통해 서비스 질을 높이고 국민에 대한 신뢰도 확보한다면 산후조리원으로서도 유익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평가를 통해 고가의 산후조리원을 자율적으로 규제하고 경각심을 일깨울 수 있다는 반응도 나왔다. 

    한편 이날 설명회를 진행한 복지부와 육아정책연구소는 현장의 적극적인 제언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정림 육아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은 “법으로 정해진 평가이기 때문에 오늘 설명회에 참석한 담당자를 상대로 질타해도 바꿀 수 있는 게 없다”며 “오히려 적극적으로 평가지표 개선에 참여해 현장과 동떨어진 평가가 되지 않도록 원장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