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74주년 좌담] 명예기자, 명예기자를 만나다.
진행= 류현아 기자 harhu@chosun.com
기사입력 2011.01.10 09:59

"40년 전엔 기사를 우편으로 보냈어요"
"명예기자 경험이 학업에 큰 도움 됐죠"

  • 1967년 4월 18일 화요일, 허문영 군(당시 강원 춘천교대부속초등 5년)은 설레는 맘으로 소년조선일보 지면을 펼쳐들었다. ‘있다!’ 1면 한 귀퉁이에 수줍은 미소를 띤 자신의 증명사진과 함께 ‘허·문·영’ 이름 석 자가 또렷하게 새겨져 있었다. 이날 허 군을 포함, 총 37명이 소년조선일보 제1기 명예기자로 ‘신고식’을 치렀다.

    그로부터 43년이 지난 지난해 12월 30일, 열두 살 소년은 쉰다섯의 중년이 돼 서울 광화문 소년조선일보 편집실을 찾았다. 현재 통일연구원 기획조정실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허문영 박사가 그 주인공. 소년조선일보 창간 74주년 특별기획 ‘명예기자, 명예기자를 만나다’ 출연을 위해 모신 ‘특별 초대 손님’이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역시 소년조선일보 명예기자로 활약했거나 활약 중인 노소영 양(서울 수도여고 1년)·박건하 양(서울 대모초 6년)·한수찬 군(경기 고양 강선초 4년)과 자리를 함께했다. 40여 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하늘 같은 선배’와 ‘까마득한 후배’가 소년조선일보란 공통분모를 사이에 두고 나눈 소중한 얘기들을 지면에 옮긴다.

    ◆전국서 수십 명 뽑던 시절도… “재수 끝 선발, 더 기뻤죠”

    한수찬: 처음 소년조선일보 명예기자가 된 건 초등 3학년 때였어요. 학교에서 명예기자 선발을 알리는 안내장을 받고 지원했죠. 얼마 뒤 뽑혔다는 소식을 듣고 하늘을 날 듯 기뻤던 기억이 나요.

    박건하: 전 인터넷으로 신청했어요. 처음 지원했을 땐 떨어졌거든요. 오기가 생겨 다시 도전했죠. 두 번째라 더 많이 떨렸지만 막상 선발되고 나니 기쁨도 두 배더라고요. 선배님들은 어떻게 어린이 명예기자가 되셨나요?

    노소영: 제가 다니던 초등학교에서 소년조선일보를 단체로 구독했어요. 신문을 재밌게 보던 중 명예기자 모집공고를 접했죠. 엄마한텐 비밀로 하고 지원했어요. 그런데 얼마 후 소포로 명예기자증과 취재수첩이 왔더라고요.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학년이 올라갈 때마다 짐 정리를 하는데, 그때 받은 노란 취재수첩은 지금까지 잘 간직하고 있답니다. 

    허문영: 전 초등 5학년 때 반장을 했어요. 그때 학교 추천으로 소년조선일보 명예기자가 됐답니다. 전국에서 37명을 선발했고 강원도에선 6명이 뽑혔죠. 친구들도 부러워하고 가족의 축하도 받았어요. 명예기자로 활동한 이후 학교생활을 더 적극적으로 하게 돼 6학년 땐 전교 학생회장 선거에 나가 당선되는 기쁨도 맛봤어요. 소년조선일보 명예기자 활동이 제 자존감을 높여준 셈이지요. 이후 학교 행사를 비롯해 어딜 가든지 항상 ‘나도 어엿한 소년조선일보 기자’란 생각으로 생활했답니다. 그날 신문을 잘 간직해뒀어야 하는데 잃어버려 무척 속상했거든요. 오늘 당시 신문을 받아보게 돼 정말 기분이 좋아요. 가보(家寶·한 집안에서 대를 물려 전해오거나 전해질 보배로운 물건)로 간직하겠습니다.


  • 40여 년의 시간 차를 극복하고 자리를 함께한 네 명의 전·현직 소년조선일보 명예기자들. (왼쪽부터) 박건하 양, 한수찬 군, 허문영 박사, 노소영 양.
남정탁 기자 /jungtak@chosun.com
    ▲ 40여 년의 시간 차를 극복하고 자리를 함께한 네 명의 전·현직 소년조선일보 명예기자들. (왼쪽부터) 박건하 양, 한수찬 군, 허문영 박사, 노소영 양. 남정탁 기자 /jungtak@chosun.com
    ◆기사 전송 방식… 옛날엔 ‘우편’, 요즘은 ‘인터넷·디카’

    허문영: (박건하 양이 가져온 기사 스크랩북을 보며) 깜짝 놀랐어요, 박 기자. 이렇게 기사를 많은 쓴 비결이 뭐예요?

    박건하: 수업과 수업 사이 주어지는 20분 정도의 자투리 시간을 잘 활용했어요. 요즘은 인터넷으로 기사를 작성해 시간을 절약할 수 있죠. 기사는 대개 10줄 정도로 맞춰 써요. 현장감을 살려 빨리 전송하기엔 그 정도 분량이 딱 좋은 것 같아요. 선배님, 예전엔 어떻게 기사를 전송했는지 궁금해요. 그리고 전 디지털 카메라를 들고 다니면서 사진을 찍기도 하는데요. 사진은 어떻게 보내셨어요?

    허문영: 첫 번째 취재 장소는 한 군대의 위문공연 현장이었어요. 그것 말고도 몇 곳 더 취재를 갔지요. 한번은 스케이트 대회장을 찾았어요. 그런데 정리해 보내려고 하니 이미 기사가 났더라고요. 한발 늦은 거예요. 다음번엔 어린이 체육대회를 취재하러 갔어요. 경기 결과를 열심히 받아 쓴 후 보냈지만 지면에 반영되진 않았어요. 당시엔 작성한 기사를 우편으로 보내야 했는데 번거롭기 짝이 없었어요. 무엇보다 발 빠른 소식을 전하지 못하는 게 제일 아쉬웠지요. 사진 전송은 꿈도 못 꿨어요. 카메라가 있는 집이 거의 없었고, 설사 있다 해도 워낙 귀한 물건이다 보니 어린이들이 함부로 만질 수 없었거든요.

    박건하: 요즘은 우수 기자가 되면 MP3플레이어 같은 걸 선물로 주거든요. 예전 우수기자 상품은 뭐였어요?

    허문영: 잘은 기억나지 않지만 사전 같은 걸 받았어요. 연필 한 다스를 받기도 한 것 같고요. 당시는 지금처럼 학용품이 풍족하지 않았답니다. 연필과 사전도 굉장히 귀했어요.


    ◆기자 하며 얻는 것?… 적극적 성격과 국가관, 그리고 ‘꿈’

    노소영: 초등학교 다닐 땐 성격이 소극적인 편이었어요. 그래서 명예기자 활동도 별로 열심히 하지 못했죠. 하지만 명예기자 경험 덕분에 중학교 때 토론동아리에 가입했어요. 교육청 주최 토론대회에서 1등을 하기도 했답니다. 초등생 시절부터 명예기자로 활동하며 기사 작성 경험을 쌓은 게 큰 도움이 됐어요. 제 꿈은 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한 후 다큐멘터리 PD가 되는 거예요.

    허문영: 명예기자 자격으로 찾은 첫 번째 취재지인 군부대에서 군인들을 보며 많은 생각을 했어요. ‘나도 정의롭게 살아 나중에 나라를 지키는 사람이 돼야지’ 결심했죠. 어린이 기자로 신문 제작에 참여하며 사회와 국가 활동에 관심을 갖게 됐고, 그 덕분에 현재 직장인 통일연구원에 들어갈 수 있었어요. 당시 경험이 직업으로까지 이어진 거지요. 건하 양은 어떤 취재가 가장 기억에 남나요?

    박건하: 119안전센터 대원을 취재했던 거요! 처음 말을 붙이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서울 대모초 6학년 박건하입니다. 취재를 하려고 하는데 응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한마디를 하는 데 참 많이 망설였어요. 연습을 많이 해도 계속 떨리는 거 있죠?

    허문영: 주로 어떤 걸 취재했어요?

    박건하: 소방파출소가 하는 일, 화재 예방 방법, 어린이로서 할 수 있는 일 등등이요.

    허문영: (놀라면서) 정말 논리적이네요. 대단해요. 처음에 말문 트는 게 어렵다고 했지만 그건 꾸준히 연습하면 얼마든지 좋아질 수 있어요. 저도 조금씩 연습하면서 웅변력 같은 게 많이 늘었거든요. 수찬 군은 어때요?

    한수찬: 얼마 전에 다녀온 고양시 ‘막걸리 축제’ 취재가 생각나요. 아빠도 좋아하시고 다양한 볼거리가 인상적이었죠. 다문화 가정 관련 코너랑 떡메 치기, 굴렁쇠 놀이 코너도 있더라고요. 전 주로 학교행사나 지역축제 현장을 찾아가요. 학교의 자랑거리도 싣고요. 소년조선일보 명예기자 활동이 재밌어 제 꿈도 기자로 정했어요. 세상 소식을 가장 먼저 정확하게 전하는 기자가 되고 싶어요.

    ◆한국의 미래, 이들이 있어 밝다… “고마워요, 소년조선일보”

    허문영: 아련한 추억이었던 소년조선일보 명예기자 시절을 이렇게 후배들과 되돌아보게 돼 무척 기쁩니다. 처음 소년조선일보에서 전화를 받았을 때 감동이었어요. 어린이 기자가 3000여 명이나 된다는 것도 놀랍고요. 모든 명예기자 친구들이 꿈을 갖고 또래의 모범이 되는 사람으로 자라주길 바랍니다. 이런 자리를 마련해준 소년조선일보에 정말 감사드립니다. 

    노소영: 건하와 수찬이를 보면서 ‘우리나라의 미래가 밝다’는 생각을 했어요. 두 친구는 앞으로 무슨 일이든 다 해낼 것 같아요. 몇 년 전 저도 후배들처럼 자랑스러운 경험을 했었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간직하겠습니다.

    박건하·한수찬: 1기 선배님을 만나다니…. 정말 신기하고 대단한 경험이었어요. 선배님들 말씀처럼 모든 일에 바른 생각을 가지고 정의롭게 임해야 ‘진짜 기자’란 생각이 들어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