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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먹을 게 없어 굶어 죽는 사람이 늘었다. 우리 집도 마찬가지였다. 식량을 구하려던 나와 어머니는 끝을 알 수 없는 험난한 길에 올랐다. 우린 한국에 가기로 마음먹었지만 중국 국경 수비대에 체포돼 다시 북한에 끌려갔다. 당시 열여섯 살이었던 난 미성년 보호소에 갇혔다. 하지만 이듬해 12월, 홀로 얼어붙은 두만강을 넘었다. 탈출에 성공한 것이다.”
현재 국내의 한 대학에서 피부미용을 전공하고 있는 이은영 씨(가명·22세)는 지난 2007년 12월 한국에 들어오던 날을 잊을 수 없다. 북한 땅을 떠나오고도 3년, 세계 각지를 떠돌다 그제야 비로소 ‘자유의 몸’이 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양의 새 출발이 처음부터 순탄했던 건 아니다. 아직 어린 10대 소녀에게 ‘피붙이 하나 없는 곳에서 스스로 진로를 결정해야 하는 삶’은 버거웠다. 하지만 이 양은 이를 악물고 버텼다. 그 덕에 지금의 위치에 올 수 있었다. 요즘 그는 비슷한 처지의 동생들을 만날 때마다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여러분 인생은 여러분 거예요. 절대로 꿈을 포기해선 안 됩니다.” -
◆3박 4일 일정 "학습·진로 두 마리 토끼 잡는다"
지난 4일 강원도 인제군의 한 수련원에서 ‘2010학년도 겨울 한마음 캠프’(이하 ‘한마음 캠프’)의 3박4일 일정이 시작됐다. 서울초중등남북교육연구회가 개최하고 서울시교육청이 지원하는 이번 행사의 참가자 139명은 모두 북한 출신 학생들. 초등생이 100여 명으로 가장 많았다. 이들을 지도하기 위한 선생님 90명, 이은영 씨를 포함한 북한 출신의 대학생 자원봉사자 15명도 자리를 함께했다.
서울초중등남북교육연구회가 한마음 캠프를 열기 시작한 건 지난 2005년. 우리나라에 정착하기까지 여러 나라를 떠도는 과정에서 공부도 제대로 못하고 정서적 혼란에 시달리는 북한 이탈 학생들을 돕기 위한 프로그램이었다. 캠프 진행을 맡은 김창기 서울 신구로초등 선생님은 “북한 학생들은 자기 의견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해 수업 집중도가 떨어지는 편”이라며 “하지만 우리나라 학생들보다 선생님에게 거는 기대가 커 조금만 도와주면 가르치는 내용을 스펀지처럼 잘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한마음 캠프는 크게 두 가지 축으로 운영된다. 하나는 교과 공부, 다른 하나는 진로 탐색이다. 공부 부문에선 각자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과목을 1대1 멘토링(mentoring·경험이나 지식이 많은 사람의 지도와 조언을 통해 상대방의 실력을 향상시키는 것) 방식으로 집중 지도한다. 또한 진로 부문에선 참가자 스스로 자신의 미래를 고민하고 계획을 짤 수 있도록 교사나 자원봉사자가 개인별, 혹은 그룹별로 지원해준다.
김원곤 서울시교육청 학교정책과 장학관은 “학생도 학생이지만 모든 선생님이 별도의 사전 연수를 받을 정도로 캠프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다”고 밝혔다. 송두록 서울초중등남북교육연구회 사무국장은 “학교 공부를 따라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참가자들이 훗날 사회에서 자기 몫을 해내는 인재로 자랄 수 있도록 진로 탐색 프로그램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알토란 같은 선배의 조언 "의지 있다면 못 넘을 벽 없어요"
한마음 캠프의 또 다른 주인공은 참가자들과 비슷한 길을 먼저 걸어온 선배 자원봉사자들이다. 북한에 있을 때부터 의사를 꿈꿨다는 최세연 씨(가명·21세)는 현재 대학에서 생명과학을 공부하고 있다. “북한의 한 두메산골에서 부모님 농사를 도와드리며 공부했어요. 의사가 돼 편찮으신 어머니를 고쳐드리고 싶었죠. 북한에선 꿈을 이루지 못했지만 여기서 다시 공부를 시작했어요. 여러분도 의지만 있다면 눈앞의 벽을 뛰어넘을 수 있습니다.”
선배의 경험담을 들은 어린이들은 수줍은 얼굴로, 그러나 야무지게 자신의 장래희망을 밝혔다. 캠프 참가 경험이 벌써 네 번째인 박준영 군(가명·11세)은 “캠프에서 배운 수학과 국어 공부법 덕분에 성적이 많이 올랐다”며 “지금처럼 열심히 공부해서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을 돕는 변호사가 되겠다”고 말했다. 캠프의 가장 좋은 점으로 친구들과 뛰놀 수 있다는 점을 꼽은 이규진 군(가명·11세)의 꿈은 축구 선수다. “박지성 선수처럼 한국을 대표해 세계무대를 누빌 거예요. 외국 유명 팀에 진출해 전 세계에 이름을 날릴 제 모습 기대해주세요!”
꿈 한 스푼, 자신감 두 스푼… "열심히 배워 성공할래요"
인제=성서호 인턴기자
bebigger@chosun.com
북한 이탈학생 정착 돕는 강원 인제 '겨울 한마음 캠프'에 가다
비슷한 처지의 또래와 함께 뛰놀고… 北 출신 선배가 교과·진로 멘토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