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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토끼의 해’ 신묘년을 알리는 첫 태양이 힘차게 솟았어요. 새해 첫 일출은 다사다난(多事多難·여러 가지 일도 많고 어려움이나 탈도 많음)했던 지난해를 뒤로하고 힘찬 새 출발을 알리는 신호이기도 해요.
소년조선일보는 신년 특집 기획으로 동해 먼 바다의 ‘새해 첫 햇볕’ 을 받는 섬 울릉도를 찾았습니다. 울릉도는 예로부터 도둑, 공해, 뱀이 없는 ‘청정 지역’ 으로 불렸답니다. 섬 중앙에 높이 984m의 성인봉이 우뚝 서 있고, 곳곳에 온갖 싱싱한 산나물이 자라는 ‘신비의 섬’이기도 합니다.
동해 바다 한가운데 살고 있는 울릉도 어린이들의 새해 소망은 뭘까요? 지금, 만나러 갑니다.
◆‘공부 짱’ 울릉도 어린이들…비결은 교사와 학생 간 ‘신뢰’
“울릉도행(行) 선박은 동해 전 해상의 풍랑주의보로 인해 운항이 통제됐습니다.”
‘신비의 섬’이란 이름값을 하는지 울릉도로 들어가는 길은 만만찮았어요. 경북 포항과 강원도 묵호에서 울릉도로 가는 배는 하루에 단 한 척. 동해상의 날씨가 궂거나 파도가 높으면 배가 못뜨는 경우도 허다해요. 겨울철에 정상 운항되는 날은 기껏해야 보름 정도죠. -
배 뜨길 기다린 지 사흘째 되던 지난 29일, 드디어 뱃길이 열렸습니다. 넘실대는 파도에 몸을 맡긴 지 세 시간이 지나자, 마침내 울릉도가 모습을 드러냈어요. 진한 암녹색 바다 위에 높다란 회색 바위가 문지기처럼 항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울릉도는 자연이 허락해야 들어올 수 있는 섬”이란 손영규 울릉초등 교장 선생님의 말을 실감하는
순간이었죠.
공기 좋고 물 맑은 울릉도 섬 친구들의 자랑은 바로 공부 실력입니다. 지난 7월 교육과학기술부가 전국 초·중·고교 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국가수준학업성취도 평가에서 울릉도 6학년 어린이들이 당당히 1등을 차지했어요. 울릉도엔 4개의 초등학교와 2개의 분교가 있는데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예산을 지원해 전 과목의 방과후학교 수업비가 무료랍니다. 학생들의 참여율도 높고 지도하는 선생님의 열정도 대단하죠. 우영수 울릉초등 교감 선생님은 “울릉도 어린이들의 성적이 우수한 비결은 담임 선생님과 아이들의 원활한 소통”이라고 말했습니다. “지역적 특성 상 울릉도는 외부 강사를 초빙하기가 쉽잖습니다. 반면, 선생님은 대부분 학교 사택에 살기 때문에 아침부터 밤까지 학생들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죠.휴일에도 학생들과 성인봉에 오르거나 산책에 나설 정도예요.”
본교와 분교를 합쳐도 전교생이 47명밖에 안 되는 남양초등학교는 ‘반딧불교실’ 을 운영하고 있어요. 반딧불 교실은 일주일에 네 번 오후 6시 30분부터 8시 40분까지 원하는 사람 누구나 자신이 약한 과목을 택해 수업을 들을 수 있는 프로그램입니다. 박성현 남양초 교무부장 선생님은 “학원이 없는 울릉도에선 어린이들이 담임 선생님과 같이 종일 공부하는 모습이 자연스럽다” 며 “현재 25명이 자발적으로 수업에 참여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울릉도에서 태어나 초·중학교 시절을 모두 섬에서 보낸 임성숙 저동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은 울릉도 아이들의 공부실력을 ‘바다’ 에 비유해 설명했습니다. “부모님과 학생들이 학교 교육을 100% 믿어주세요. 시원하게 펼쳐진 바다처럼 화끈한 ‘섬 사람’ 들답죠?”
◆때묻지 않은 순수함… “PC방보다 ‘비탈 눈썰매장’ 이 좋아요”
울릉도 어린이들이 공부만 잘하는 모범생이냐고요? 그럴 리가요. 천혜(天惠
·하늘이 베푼 은혜)의 자연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울릉도는 사방이 놀이터랍니다. 그래서인지 울릉도 친구들은 PC방을 좋아하지 않아요. 하긴, 섬 전체를 다 뒤져도 PC방은 서너 곳밖에 없지만요.
여기 어린이들은 혼자 컴퓨터 모니터를 들여다보는 대신, 낮엔 운동장에서 뛰놀고 밤이면 친구 집을 찾아가 삼삼오오 얘기꽃을 피웁니다. 여름엔 코앞에 있는 바다로 뛰어들어 수영을 즐기고 겨울엔 눈썰매를 타죠. 이희선 양(저동초등 3년)은 “썰매장은 따로 없지만 사방이 경사진 비탈길이어서 안전에만 문제 없다면 곳곳이 자연 그대로의 썰매장”이라고 자랑했습니다.
1년 내내 푸른 바다와 산을 벗 삼아 지내기 때문일까요? 울릉도 어린이들의 심성은 아름다운 울릉도의 자연과 꽤나 닮은꼴입니다. 이홍락 울릉초등 선생님은 “울릉도 아이들처럼 순수한 아이들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흔히 섬이어서 폐쇄적일 거라고 생각하지만 이곳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자연에서 맘껏 뛰놀며 자라 그런지 굉장히 개방적이고 순박해요. 이 학교에 발령받은 게 3년전인데 100원짜리 동전 하나 없어진 적이 없어 교실이나 사택 문을 잠그지 않고 다닐 정도죠.”
저동초등엔 전국 어느 학교도 못 따라오는 특별한 자랑거리가 있습니다. ‘음악 줄넘기’ 가 바로 그 주인공이에요.
지난 2007년 저동초등학교에 부임(赴任·발령을 받아 근무할 곳으로 감)한 ‘음악 줄넘기 전도사’ 김동섭 선생님을 중심으로 구성된 줄넘기 동아리 ‘줄생줄사’ 친구들은 지난 8월 영국 런던에서 열린 ‘세계 줄넘기 선수권 대회’ 에 출전해 금메달 1개, 은메달 5개를 땄습니다. 매일 한두 시간씩 교실·운동장·강당 등 장소를 가리지 않고 음악에 맞춰줄넘기 연습에 몰두한 결과였죠.
런던 대회에 선수로 출전했던 6학년 강주영 양은 “외국 대회에 나가 무척 떨리고 긴장됐지만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왔다”고 말했습니다. 내년이면 임기를 마치고 울릉도를 떠나는 김동섭 선생님의 목소리엔 울릉도 어린이들을 향한 사랑이 가득합니다. “비록 육지와 멀리 떨어진 곳에 있지만 줄넘기를 통해 큰 무대를 경험하게 하며 학생들에 ‘나나도 할 수 있다’ 는 자신감을 선물하고 싶었어요. 훗날 이곳 아이들이 자라 섬을 떠나더라도 자신감을 갖고 열심히 살아가길 바랍니다.”
'새해 첫 햇살' 받는 울릉도 어린이를 만나다
울릉도=김정욱 인턴기자
uga@chosun.com
"올해에도 공부 짱! 줄넘기 짱! 될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