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 인상은 ‘얼음공주’ 같았다. 그러나 이야기를 나눌수록 얼음공주는 ‘털털한 이웃집 소녀’로 다가왔다. 지난해 5개 드라마에 출연하며 최고의 한 해를 보낸 김유정 양(경기 고양 대화초등 5년)은 새해엔 더 좋은 일들이 많을 거라며 설레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아역스타 김유정 양이 짝꿍에게 털어놓듯 풀어놓은 ‘열두 살 인생’ 이야기.
-
△본명보다 ‘동이’와 ‘연이’로 더 유명한 아이
안녕, 친구들. 새해 첫날 아침에 너희들을 만나게 돼 정말 반가워.
어쩌면 너희들에게 내 이름은 조금 낯설지도 몰라. 아마 대부분의 친구들에게 난 드라마 MBC 드라마 ‘동이’의 ‘동이’이거나 KBS 드라마 ‘구미호-여우누이뎐’(이하 ‘구미호’)의 ‘연이’일 거야. 최근엔 MBC 드라마 ‘욕망의 불꽃’에서 ‘나영’(신은경)과 ‘혜진’(서우)의 아역을 맡기도 했어. 그러고보니 지난해 나는 김유정이란 본명보다 극중 이름으로 더 많이 불린 것 같아. TV 드라마만 다섯 개를 했으니 말야.
지난해엔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어. 하지만 돌이켜보면 정말 행복했어. 바빴던 만큼 연기자로서 한 뼘 성장했다고 생각하거든. 특히 구미호에 출연하며 많이 배운 것 같아. 그동안은 주로 주인공의 아역을 했지만 구미호에선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연이었으니까. 16부작 드라마여서 촬영 중 나 혼자 생각한 캐릭터를 쭉 이어갈 수 있다는 점도 좋았어.
△데뷔는 여섯 살 때… 총 출연작 25편이나 돼
며칠 전엔 그동안 출연한 작품이 얼마나 되나 세어보다가 깜짝 놀랐어. 무려 25편이나 됐거든. 절반은 영화(13편), 또 절반은 드라마(12편)였어. 여섯 살 때 영화 ‘DMZ, 비무장지대’에 출연한 후 6년 간 활동한 것치곤 꽤 많지?
하지만 처음 카메라 앞에 선 기억은 하나도 없어. 엄마 얘기론 여섯 살 때 우유 광고로 데뷔를 했대. 엄마가 재미 삼아 내 사진을 인터넷에 올린 게 계기가 된 거지. 어린이 방송에도 출연했었다는데 전혀 기억이 안 나. 녹화 테이프라도 있으면 기억을 되살려볼 텐데 아쉽게도 남아있는 게 없어.
내가 기억하는 첫 작품은 영화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이야. 일곱 살 때 찍은 건데 김수로 아저씨의 딸 역할이었어. 아마 이때부터 연기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된 것 같아. 너희들이 봤을 만한 작품은 음… 지난 2000년 개봉한 영화 ‘해운대’ 정도가 될 것 같아.
△밤샘·한겨울 촬영 견딜 수 있어야 진짜 ‘배우’
너희들 중에도 배우가 되고 싶은 친구 있지? 나한테도 “어떻게 하면 연예인이 될 수 있느냐?”고 묻는 애들이 많아. 사람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는다는 건 분명 신나고 어깨가 으쓱거려지는 일이야. 하지만 힘든 부분도 많다는 걸 아는 애들은 드문 것 같아.
제일 힘든 건 체력 부분이야. 밤샘 촬영은 물론, 한겨울이나 한여름에 촬영하는 일도 잦거든. ‘동이’의 경우 유난히 추웠던 지난 겨울에 촬영이 이어졌어. 영하 10도 이하로 떨어지는 날이 많았고 눈도 자주 내렸지. 게다가 대부분이 야외 촬영이었어.
추위를 이기려면 많이 입는 것 말곤 뾰족한 수가 없어. 옷 안에 핫팩을 붙이고 짚신 안엔 버선도 모자라 수면양말 두 개, 실내화까지 신고 비닐을 둥둥 감았지. 그런데 윗옷은 마음대로 껴입을 수도 없었어. 한복은 껴입으면 맵시가 안 나니까. 또 TV 화면엔 실제보다 뚱뚱하게 나오잖아. 두 벌을 껴입었다가 감독님이 “뚱뚱해보인다”고 하셔서 결국 벗을 수밖에 없었어. 그때 추위를 못 견디고 촬영 도중 병원에 실려간 친구도 있었어.
△대사 암기·눈물연기 비결? 끝없는 연습과 노력!
연기에 관해 내가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두 가지야. 하나는 대사 암기법. 그냥 여러 번 반복해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입에 붙는 것 같아. 동이를 찍을 땐 좀 특별한 방법을 썼어. 사극이어서 대사가 유난히 길고 말도 어려웠거든. 아무리 읽어도 외워지지 않길래 내 분량의 대사를 화이트 보드에 한번씩 써봤어. 의외로 머리에 쏙쏙 들어오더라고. ‘효과 만점’이었어.
눈물 흘리는 장면을 어떻게 찍느냐는 질문도 많이 받아. 특별한 비결은 없어. 그냥 집중해서 그 인물의 마음을 헤아리다보면 눈물이 나와. 하지만 촬영 전엔 아무 생각 안하고 놀아. 너무 오래 전부터 생각하다보면 정작 촬영할 땐 감정이 날아버리거든. 촬영 직전에 집중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야.
배우는 타고나는 게 아니라 노력으로 만들어지는 사람이란 게 내 생각이야. 대본을 분석하고 표정 연습을 하다보면 실력이 조금씩 느는 것 같아. 나도 데뷔 초기엔 감독님께 많이 혼났어. 요즘은 그 횟수가 많이 줄었지. 드라마 하나를 보더라도 배우들의 연기를 분석하면서 본 덕분이 아닐까? 물론 난 아직 내 연기가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해. 나보다 연기 잘하는 사람이 너무나 많으니까.
△서신애와는 ‘단짝’ …술래잡기 즐기는 말괄량이
촬영장엔 또래 친구들이 없을 때가 많아. 그럴 땐 스태프 언니들과 주로 어울려. 어른 연기자들도 잘 챙겨주셔서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하진 않아. 물론 또래 친구들이 많은 촬영이 아무래도 재밌긴 하지. 특히 구미호는 신애 언니(서신애)랑 함께해 더 즐거웠어.
신애 언니랑은 비슷한 시기에 데뷔해 많이 친해졌거든. 그동안 한번도 같은 작품을 한 적이 없어 아쉬웠는데, 처음으로 같은 작품을 하면서 쉬는 시간 틈틈이 잘 놀았어. 신애 언니는 꼭 엄마같아. 한 살 더 많을 뿐인데 정말 잘 챙겨주거든.
우리가 어떻게 노는지 알면 아마 깜짝 놀랄 거야. 꼭 거친 남자애들처럼 놀거든. 뛰어다니고, 씨름하고, 술래잡기도 하고. 언니나 나나 워낙 성격이 털털해. 그래서 가끔 어른들이 그러셔. “생긴 건 공주인데 노는 건 말괄량이”라고 말이야.
옷차림에도 그런 성격이 그대로 드러나나봐. 평소 난 치마는 절대 안 입어. 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것 같아 싫거든. 허전하기도 하고. 머리도 대충 풀고 다니곤 해. -
△성적 스트레스 받고 빅뱅 좋아하는 초등 5년생
사실 어린이 연기자들은 공부할 시간이 별로 없어. 일단 촬영을 시작하면 학교 가기도 쉽지 않거든. 그래도 4학년 때까진 수학 과외도 받고 영어 학원도 다녔는데, 지난해엔 정말 아무것도 못했어. 그래도 시험은 빼놓지 않고 치러.
지난 여름방학이 끝나고 서울에서 일산으로 학교를 옮겼어. 한참 드라마를 찍을 때라서 진도를 거의 못 따라갈 때였거든. 아니나다를까, 첫 시험을 그만 망쳐버렸어. 학교 친구들이 내 성적을 놓고 수군거리는 것 같았어. 얼마나 창피하고 속상했는지 몰라. 그래서 다음 시험은 정말 열심히 준비했어. 다행히 성적이 많이 올랐지. 친구들이 깜짝 놀랄 정도로 말야.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과목은 사회야. 쉬는 시간엔 여자애들과 남자애들 흉도 본단다.
너희들은 연예인 중에서 누굴 제일 좋아하니? 난 ‘빅뱅’ 팬이야. 오는 2월 1일 컴백한다는데 그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어. 책도 사 봤고 앨범도 모으고 있어. 얼마 전엔 야광봉도 샀지. 직접 만난 적도 있긴 한데 쑥스러워서 팬이란 말은 차마 못하고 인사만 겨우 했어. 그래도 함께 사진은 찍었단다. 얼마나 행복했는지 몰라.
△연기는 평생 ‘내 일’…각본가·영화감독 꿈도
난 욕심쟁이야. 하고 싶은 것도 많고 뭘 하든 잘하고 싶어. 한번은 뇌 구조 테스트를 해봤는데 제일 큰 게 ‘욕구’라고 나오는 거 있지?
요즘 난 각본을 하나 쓰고 있어. 드러내놓고 얘기할 수준은 아니지만 우리 또래의 자매 이야기야. 사실 요즘은 어린이들을 위한 영화가 거의 없잖아. 또 어른들은 우리들 속마음을 잘 모르는 것 같아. 우리들의 진짜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고 싶어.
내 꿈 중 하나는 영화감독이야. 그래서 드라마나 영화를 볼 때면 배우들의 연기는 물론, 장면 하나하나까지 꼼꼼하게 살펴봐. 대본을 볼 때도 ‘이 부분은 어떻게 찍으면 좋을까’ 상상하곤 해.
연기? 물론 평생 해야지. 감정 표현을 잘하는 연기자,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성격 좋은 연기자가 될 거야. 가끔 ‘친구들처럼 공부만 하면 어떨까?’ 생각하기도 해. 하지만 ‘연기를 안 하는 김유정’은 상상이 잘 안돼.
올해 목표는 청룡영화제에 ‘영화배우’로 초청받는 거야. 또 이제까진 가난하고 착한 역할만 했는데 이젠 부잣집 딸 역할도 해보고 싶어. 예쁜 옷 입고, 맛난 거 먹고, 맘대로 소리도 지르는 ‘제멋대로’ 역할 말야. 새해엔 가족과 함께 해외여행도 가보고 싶어. 올 한 해 나도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노력할 거야. 친구들도 모두모두 새해 소망 이루길 바라. 안녕!
"배우는 타고나는 게 아니라 노력으로 만들어지는 거야"
고양=류현아 기자
haryu@chosun.com
'일곱빛깔 매력' 아역배우 김유정 양을 만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