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 오늘 일찍 자면 형이랑 저랑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 주시는 거예요?”
지난해 겨울, 서울 아산병원의 한 병실. 이불을 목까지 덮은 채 고개만 빼꼼히 내민 이지민 군(5세)이 어머니 이영희 씨(37세)에게 물었다. 지민이의 머리맡엔 양말 두 짝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산타 할아버지는 일찍 잠드는 어린이에게만 선물을 주셔. 지민이가 늦게 자면 지민이는 물론, 형도 덩달아 선물을 못 받아요. 저것 봐, 형은 산타 할아버지에게 선물 받으려고 일찍 자잖아. 그렇지?”
그제야 지민이는 안심하고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양말 안에 담긴 선물을 본 지민이의 얼굴이 환해졌다.
“엄마, 내년엔 산타 할아버지를 만나 꼭 감사하다고 말씀드릴래요.” -
크리스마스를 사흘 앞둔 지난 22일 서울 잠실 롯데월드. 지민이의 소원이 드디어 이뤄졌다. 난치병 어린이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한국메이크어위시재단에 ‘산타 할아버지를 만나고 싶다’는 신청서를 제출한 지 꼬박 10개월 만이다. 이영희 씨는 “지민이가 올봄부터 아픈 와중에도 산타 할아버지에게 줄 선물이라며 한 달에 한 번씩 편지를 썼을 정도로 기대가 컸다”고 말했다
지민이는 지난해 4월 ‘횡문근육종’이란 희귀병 진단을 받았다. 횡문근육종이란 근육에 종양이 생기는 병. 근육암이라고도 불린다.
“한날은 밥을 먹는 지민이를 보다가 이마에 동전만 한 크기의 뭔가가 움직이는 걸 발견했어요. 근처 병원에 갔더니 혹이 생겼다며 간단한 제거 수술만 하면 될 거라더군요. 그런데 혹이 자꾸만 커지는 거예요. 이상하다 싶어 서울에 올라와 검사를 하고서야 정확한 병명을 알았죠. 그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죠….” 이영희 씨가 말끝을 흐렸다. -
지민이는 그해 7월 종양 제거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8월부턴 3주마다 2박 3일의 일정으로 항암치료를 받았다. 10개월간 강도 높은 약물치료를 견디는 고통스러운 시간이 계속됐다. 치료가 거듭되며 머리카락은 물론, 눈썹까지 빠져버렸다.
다행히 힘든 시간을 참아낸 지민이는 현재 완치된 상태. 하지만 횡문근육종의 특성상 재발 가능성이 높아 늘 조심한다. 특히 지민이가 아직 저항력 약한 어린이여서 사람이 많은 곳을 나다니는 건 위험할 수 있다. 지민이의 이번 외출이 더욱 특별한 이유다.
이날 롯데월드를 찾은 건 지민이 혼자가 아니었다. 형 이성민 군(충북 청주 용암초 1년)도 함께였다. 워낙 어릴 때 병이 생기는 바람에 지민이는 변변히 친구를 사귈 기회가 없었다. 그런 지민이 곁을 지켜준 건 언제나 성민이였다. 지민이의 아버지 이상훈 씨(41세)는 “지민이가 아프고 나서부턴 성민이가 지민이를 더 많이 챙겼던 것 같다”고 말했다. 성민이는 “지민이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아프기도 했지만 이젠 다 나았고 같이 놀 수 있어 참 좋다”고 말했다.
지민이는 이날 성민이와 함께 난생처음 찾은 놀이동산을 맘껏 즐겼다. 날씨는 추웠지만 얼마나 열심히 뛰어다녔는지 금세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물론 꿈에 그리던 산타 할아버지도 만났다. 기억을 오래오래 남기기 위해 성민이와 산타 할아버지의 양팔을 나눠 잡고 사진도 찍었다. 헤어지기 전 한마디 당부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산타 할아버지, 이번 크리스마스에도 저랑 형한테 선물 주실 거죠?”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어스름이 깔린 저녁 7시에 펼쳐진 크리스마스 퍼레이드였다. 지민이는 퍼레이드를 구경하러 온 또래 친구들에게 ‘일일 산타’가 돼 사탕 선물을 나눠주며 즐거워했다.
“산타 할아버지도 만나고 루돌프와 사진도 찍고…. 무엇보다 형이랑 신나게 놀 수 있어 좋았어요. 산타 할아버지 만나는 것, 형과 뛰노는 것. 오늘은 소원을 두 개나 이룬 최고의 날이에요!”
루돌프와 사진 찍고, 꼬마 산타도 되고
김재현 기자
kjh10511@chosun.com
희귀병 앓는 지민이_놀이공원서 맘껏 뛰놀며 '소원 이루던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