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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사는 하바롭스크는 러시아에서도 가장 추운 도시 중 하나예요. 러시아 동쪽 끝에 있어 한국과 가까운 건 좋지만 겨울엔 영하 20도를 넘나들 정도로 몹시 춥답니다. 러시아라고 하면 1년 내내 겨울만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친구도 많을 텐데요. 처음 아빠가 이곳 한국교육원장으로 발령 났을 때도 주위 가족과 친구들이 “거기 1년 내내 추운 곳 아니야?”라며 걱정해줬어요. 겨울이 좀 길고 춥긴 하지만 여기도 봄·가을이 있어요. 습도가 낮고 기간은 짧지만 여름도 있고요. 이곳 여름은 우리나라만큼이나 덥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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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아름다운 나라, 러시아
러시아 친구들에게 해마다 찾아오는 긴 겨울이 어떨지 모르겠지만 우리 가족은 그리 싫지 않아요. 러시아는 역시 겨울이 가장 잘 어울리는 나라란 생각이 들거든요. 눈이 많이 내려 온통 하얗게 변하는 데다 한 번 내린 눈은 겨우내 쌓여 있어 보는 이의 마음까지 깨끗하게 해요. 기차를 타고 가다가 눈이 덮인 자작나무 숲을 본 적이 있는데 흰 눈과 자작나무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풍경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답니다.
러시아 사람들은 겨울에 집 안에만 있을 것 같죠? 하지만 여기 친구들도 ‘겨울 즐기기’에 분주해요. 엉덩이에 깔고 앉는 작은 썰매는 이곳 아이들의 겨울 필수품입니다. 코가 빨개지고 볼이 꽁꽁 얼 정도로 추운 날씨에도 조그만 썰매 하나만 들고 나오면 어느 곳이든 미끄럼틀이 되고 눈썰매장이 되거든요. 저와 제 동생도 얼음 미끄럼틀과 눈 덮인 언덕에서 썰매 타는 걸 무척 좋아해요. -
새해가 가까워지면 시내 곳곳에 다양한 모양의 얼음 조각 장식이 들어서는데, 맑고 투명한 얼음이 빛에 반사돼 반짝거리는 모습은 어떤 보석보다 아름답죠.
◆2월 말부터 이른 ‘봄맞이 축제’
겨울 추위에 지친 러시아인들은 2월 말이 되면 거리의 눈과 얼음이 채 녹지 않았는데도 ‘마슬례니차’란 이름의 봄맞이 축제를 준비합니다. 우리나라에서 봄은 ‘겨울 다음에 으레 찾아오는 계절’이지만 춥고 긴 겨울을 보내는 러시아인들에게 봄만큼 반가운 선물은 없거든요.
마슬례니차 축제는 2월 말부터 3월 초까지 열리는데 슈콜라(학교)에서도 이때쯤 봄방학을 하고 방학 전 어머님이 손수 준비해온 얇은 팬케이크 ‘블린’을 홍차와 함께 먹으며 간단한 봄맞이 행사를 갖습니다. 블린은 러시아인이 즐겨 먹는 음식인데 우리나라 밀전병처럼 생겼어요. 여기에 잼이나 치즈를 발라 먹기도 하고 고기나 버섯, 햄 따위를 넣어 먹기도 해요. 블린의 둥근 모양은 해(태양)를 닮았잖아요. 음식에서도 따뜻한 봄을 기다리는 러시아인의 마음을 엿볼 수 있죠? -
축제가 끝날 무렵인 3월 8일은 러시아의 큰 명절 중 하나인 ‘국제 여성의 날’이에요. 이날 러시아 남자들은 여자친구나 어머니, 또는 아내에게 봄의 상징인 꽃과 선물을 건네야 해요. 남학생은 학교에 갈 때도 여학생에게 줄 선물을 챙겨가야 하죠. 처음엔 좀 쑥스러웠지만 저도 선물을 준비해 가장 가까이 앉은 여학생에게 선물했답니다.
본격적으로 눈이 녹기 시작하는 4월이 되면 부활절이 찾아와요. 우리나라도 부활절엔 예쁘게 장식한 달걀을 주고받는데 여기도 마찬가지예요. 아, 러시아 부활절 달걀은 종교적 의미 말고 한 가지 의미가 더 있어요. ‘병아리가 달걀 껍데기를 깨고 나오듯 러시아의 봄도 두꺼운 얼음을 뚫고 나온다’는 뜻이래요. 참 재밌죠?
우리나라 사람들도 봄이 되면 ‘출발’이나 ‘시작’을 떠올리잖아요. 러시아인도 마찬가지예요. 겨울이 유난히 춥고 길어서인지 봄을 기다리는 맘이 더욱 간절한 것 같아요. 하지만 전 러시아의 겨울이 좋아요. 온 세상을 하얗게 덮는 눈도, 썰매 타기도 정말 근사하거든요. 그래서 올해 겨울도 씩씩하게 이겨내며 마음껏 즐기려고 합니다.
[출동! 어린이 특파원] 썰매만 있으면 어느 곳이든 신나는 '눈썰매장'
영하 20도 넘나드는 강추위지만 겨우내 보석보다 예쁜 '눈 세상'
봄 기다리며 부활절 달걀 만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