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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는 오늘날 전 세계 누구나 인정하는 ‘창조자’다. 그는 아이팟과 아이폰, 아이패드로 누구나 편리하게 즐길 수 있는 IT(정보통신) 세상을 열었다. ‘토이 스토리’, ‘니모를 찾아서’ 같은 3D 애니메이션으로 눈과 마음이 즐거운 새 세상을 만들기도 했다. 타고난 상상력과 창의력, 집중력으로 그는 이 시대의 모든 이들을 열광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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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아 출신 ‘호기심 많은 골칫거리’
그의 출생은 우울했다. 1955년 2월 그를 낳은 친엄마는 몇 주 후 아기의 법적 양육권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폴과 클래라 잡스 부부에게 넘겼다. 부부는 그때까지 이름조차 없던 아기에게 ‘스티븐 폴 잡스’란 이름을 지어줬다.
아기는 말썽꾸러기로 자랐다. 새벽 4시부터 깨어나 부모를 괴롭혔고, 집안 구석에 놓아둔 바퀴약을 마시고 응급실로 실려간 적도 있었다. 전기 소켓에 금속 머리핀을 쑤셔넣어 화상을 입기도 했다.
열 살이 되면서 스티브는 전자장치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즈음 스티브네 가족은 팰러앨토로 이사를 갔다. 휴렛패커드(HP) 같은 전자회사에 다니는 엔지니어들이 모여 사는 곳이었다. 주말이면 주민들은 차고 작업대에서 여러 가지 실험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스티브가 그 광경을 기웃거리면 그들은 스티브를 차고로 불러 놀게 했다. 이웃 중 HP에 다니던 래리 아저씨는 탄소 입자의 저항을 이용해 다양한 소리를 잡아내는 ‘탄소 마이크’를 그에게 선물했다.
학교에서 그는 골칫거리였다. 행동이 불량하고 선생님에게 자주 대들었으며, 또래 아이들과도 잘 지내지 못했다. 공부엔 관심도 없었다. 그러나 4학년이 되면서 달라졌다. 담임 테디 힐 선생님은 스티브에게 “숙제를 다 하면 5달러를 주겠다”며 미끼를 던졌고, 스티브는 어느새 공부의 즐거움을 깨달았다. 학습부진아였던 스티브는 5학년을 건너뛰고 바로 중학교에 입학했다.
◆스티브, ‘또 다른 스티브’를 만나다
1967년, 스티브의 부모님은 로스앨토스로 이사를 했다. 그곳 역시 팰러앨토와 마찬가지로 실리콘밸리 엔지니어들이 모여 사는 동네였다. 당시는 한창 미 항공우주국(NASA)이 우주개발 경쟁에 나선 때였다. 집집마다 차고엔 예비 부품이나 못 쓰게 된 장치들로 넘쳐났다. 늘 개방돼 있던 그 차고들은 스티브에게 최고의 놀이터였다.
1969년 스티브는 같은 동네에 살던 ‘또 다른 스티브’를 만난다. 다섯 살 많은 스티븐 워즈니악(이하 ‘워즈’)이었다. 당시 콜로라도대학교 신입생이었던 워즈는 스티브와 닮은꼴이었다. 그의 관심은 오로지 전자공학, 그리고 그 기초가 되는 과학과 수학뿐이었다. 친구가 거의 없는 독불장군이었고, 스티브 못잖게 못 말리는 장난꾸러기였다.
스티브를 만날 당시 이미 워즈는 컴퓨터를 만들고 있었다. 워즈에겐 기술이 있었고 스티브에겐 배짱이 있었다. 한번은 워즈가 ‘블루 박스’란 걸 만들었다. 수화기에 특정 주파수를 보내 공짜로 전화를 걸게 하는 장치였다. 스티브는 블루 박스를 팔아보자고 워즈를 설득했다. 흥정 감각이 남달랐던 스티브는 원가 40달러짜리 블루박스를 대당 150달러에 팔았다. 사업은 그야말로 ‘대박’이었다.
◆차고에서 창업… 25세에 ‘억만장자’
1976년 4월 1일, 스티브는 워즈와 함께 회사를 차렸다. 회사 이름은 ‘애플(Apple)’로 정했다. 당시 명상의 세계에 푹 빠져 있던 스티브는 오리건주(州) 사과 농장에서 선(禪) 애호가들과 많은 시간을 보냈다. 애플이란 이름은 거기서 떠올렸다. ‘최첨단 컴퓨터와 자연의 만남’이란 상징성도 있었다.
부모님 차고에 사무실을 차린 애플은 워즈가 만든 회로기판 ‘애플 Ⅰ’을 상업용으로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애플 Ⅰ는 10개월 동안 200대나 팔렸다. 이듬해인 1977년, 웨스트코스트 컴퓨터 박람회에서 둘은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PC)’ 애플Ⅱ를 선보였다.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애플Ⅱ는 ‘비싼 가격’이란 단점을 딛고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1980년 애플의 직원은 4000명 이상으로 늘었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천’이 선정한 500대 기업에도 애플이 포함됐다. 잡스는 겨우 스물다섯 살에 역사상 가장 젊은 억만장자가 됐다.
◆해고당했던 애플로 ‘화려한 복귀’
그는 자신이 일군 ‘애플 왕국’에서 해고당하는 처지에 놓인다. 아이콘 클릭만으로 프로그램을 작동시킬 수 있는 ‘매킨토시’가 시장으로부터 외면받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다. 1986년 픽사(Pixar)를 인수, 애니메이션 장편영화 제작 사업을 시작한 것. 세계 최초 3D 애니메이션 ‘토이스토리’를 비롯해 ‘니모를 찾아서’, ‘인크레더블’ 등 그가 내놓은 작품들은 잇따라 성공을 거두며 영화산업 전체를 뒤흔들었다.
한편 픽사가 승승장구하는 동안 애플은 계속 가라앉고 있었다. 궁지에 몰린 애플의 선택은 다시 스티브였다. 쫓겨난 지 12년 만에 애플로 복귀한 스티브는 매력적인 디자인과 편리한 기능을 갖춘 MP3플레이어 아이팟으로 MP3플레이어 시장을 개척했다. 이후 MP3플레이어·인터넷 기능을 갖춘 휴대전화 아이폰을 공개했다. 휴대전화 콘텐츠를 사용자들이 자유롭게 공유할 수 있는 ‘앱스토어’는 IT 역사를 바꿔놓은 획기적 시도였다. 그는 올 초 첫선을 보인 후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태블릿PC 아이패드로 또 한 번 ‘스티브 잡스 신화’를 이어가고 있다.
>>스티브 잡스는
1955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나 잡스 부부에게 입양됐다. 1976년 스티븐 워즈니악과 애플을 창업하고 이듬해 세계 최초의 PC ‘애플Ⅱ’를 선보였다. 1980년 12월 주식 공모를 통해 25세 나이에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 ‘미국 최고의 부자’가 됐다. 1982년 PC업계 최초로 매출 1억 달러를 돌파하지만 3년 뒤 ‘매킨토시’ 판매 부진을 이유로 애플에서 쫓겨났다. 이후 애니메이션 제작사 ‘픽사’를 사들여 ‘토이스토리’ 등을 흥행시켰다. 1997년 경영난에 허덕이던 애플의 ‘구원투수’로 등장, 회사를 흑자로 전환시킨다. 아이팟·아이폰·아이패드 등 21세기를 뜨겁게 달군 히트작이 모두 그의 작품이다.
[살아있는 위인전] 애플 CEO<최고경영자> 스티브 잡스
류현아 기자
haryu@chosun.com
입양아ㆍ불량학생이었던 아이
호기심이 낳은 억만장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