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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된 임금 같으니라고, 죽어라. 콱!” (구렁이 아우) “으악~ 임금 살려!”(임금님)
서울시 관악구 미성동에 위치한 물댄동산 난곡지역아동센터. 이곳에선 매주 수요일 다섯 명의 ‘꼬마 이야기꾼’ 이 모여든다. 일주일 내내 기다려온 ‘옛날 옛적에’ 수업이 열리기 때문이다.
‘옛날 옛적에’ 는 저소득층 가정의 아동과 청소년을 지원하는 일종의 교육복지사업. 관악구 일대 초등학교와 아동센터 등 지역기관, 가정이 연계해 만든 비영리재단 신림지역 교육복지 네트워크 주최로 진행된다.
수업은 △각자 알고 있거나 겪은 이야기를 친구들과 공유하는 ‘꼬마 이야기꾼’ 시간 △전문 강사가 옛이야기를 들려주고 감상소감을 말하는 시간 △아이들이 역할극을 선보이는 시간 등으로 구성된다. 어린이의 연령별 발달 단계에 맞춘 우리 옛이야기 스토리텔링(storytelling·줄거리가 있는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달하는 것) 기법을 통해 아이들이 심리적 안정을 찾고 자신감을 키울 수 있도록 돕는 데 초점이 맞춰진 게 특징이다. 참가 학생들이 어머니 품처럼 편안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도록 수업은 작은 텐트 안에서 진행된다. -
지난 1일 난곡지역아동센터를 찾았을 때, 어린이들은 ‘구렁이아우’ 란 옛이야기를 놓고 역할극에 한창이었다. 지난 9월부터 시작된 수업은 이날로 벌써 12주째를 맞았다. ‘형’ 역할을 맡은 안준성 군(서울 난우초 1년)의 연기는 그새 제법 자연스러워졌다. ‘임금님’ 역의 김태희 양(서울 미성초 2년) 역시 1학년 동생들에게 연기지도를 할 정도로 표현력이 늘었다.
이날 수업을 진행한 이정옥 전문 강사(옛이야기사업단 ‘이야기 보따리’ 소속)는 “아이들은 누군가 자기 얘길 귀 기울여 들어주기만 해도 몰라보게 달라진다”며 “4개월째 역할극을 진행하며 아이들의 읽기 능력이 놀랄 만큼 향상됐고 자기 감정을 표현하는 능력도 늘었다”고 말했다.
어린이들의 만족도도 높다. 이날 주인공 ‘구렁이 아우’ 역을 담당한 정희영 양(서울 미성초 2년)은 “대본으로 연습한 후 역할극 놀이 하는 게 무척 재밌다”고 말했다.
안수정 양(서울 난우초 3년)도 역할극의 매력에 푹 빠졌다. “수업 하루 전인 화요일부터 여기 올 시간을 기다려요. 저녁 여덟 시쯤되면 ‘내일은 어떤 얘기로 친구들을 즐겁게 해줄까?’ 미리 생각해놓을 정도죠.”
프로그램 참가 이후 아이들의 생활도 부쩍 달라졌다. 이와 관련, 이경아 물댄동산 난곡지역아동센터장은 올해 이 과정에 참가하기 시작한 양승호 군(서울 미성초 1년) 얘길 들려줬다.
“올해 초만 해도 한글을 제대로 읽고 쓰지 못했던 승호가 얼마 전 센터에서 자체적으로 치른 기말고사에서 1등을 차지했어요. ‘옛날 옛적에’ 수업에 참여한 후부턴 발표력도 크게 늘었고요. 마음을 보듬어 움직이게 하는 힘이 있다는 것, 그게 우리 프로그램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옛날 옛적에~" 꼬마들의 이야기 보따리
이윤정 인턴기자
yjlee@chosun.com
서울 난곡아동센터 12주째 이야기 수업
역할극·스토리텔링… 자신감·읽기능력 키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