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원을 말해봐] "와! 내 노래가 담긴 앨범이 나왔어요"
김시원 기자 blindletter@chosun.com
기사입력 2010.12.03 00:23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 앓는 '가수 지망생' 조현주 양

  • “하나부터 열까지 다 널 위한 소리~ 내말 듣지 않는 너에게는 뻔한 잔소리~ ♬” 지난달 5일 경남 양산 부산대학교 어린이병원. 주사실 침대에 누워 있던 조현주양(경남 양산 삽량초 1년)이 요즘 즐겨 부르는 최신 가요 ‘잔소리’ (김이나 작사, 이민수 작곡, 아이유·임슬옹 노래)를 흥얼거렸다. 오늘은 석 달에 한 번 돌아오는 척추주사 맞는 날. 꼬박 네 시간을 꼼짝없이 누워 있어야 한다. ‘ 노래 부르기’ 는 이 괴롭고 지루한 시간을 견뎌내는 ‘가수 지망생’ 현주만의 비법이다.

    거울 앞에서 아이돌 그룹의 춤과 노래를 따라 하는 게 취미일 정도로 끼도 많고 건강했던 현주가 ‘급성림프구성백혈병’ 진단을 받은 건 지난해 4월. 하지만 독한 항암치료도 가수를 꿈꾸는 현주의 열정을 꺾진 못했다. 어머니 이미정 씨(33세)는 “항암치료를 받아 머리카락이 다 빠진 모습으로 춤 연습 하는 아이를 보면 웃음도 나고 안쓰럽기도 했다” 고 말했다.
  • “가수가 되고 싶다”는 소원을 이룬 조현주 양이 자신의 음반 제작 기념 팬 사인회에 참석한 친구들에게 사인을 해주고 있다. / 한국메이크어위시재단 제공
    ▲ “가수가 되고 싶다”는 소원을 이룬 조현주 양이 자신의 음반 제작 기념 팬 사인회에 참석한 친구들에게 사인을 해주고 있다. / 한국메이크어위시재단 제공
    그러던 지난 8월, 현주에게 꿈 같은 일이 벌어졌다. 난치병 어린이를 위한 소원 성취 기관인 한국메이크어위시재단에서 “가수가 되고 싶다” 는 현주의 소원을 들어주기로 한 것이다. ‘ 위시엔젤(Wish angel)’ 로 불리는 자원봉사자들이 현주의 가수 변신을 꼼꼼히 돕기 시작했다.

    먼저 현주의 노래가 담긴 앨범을 만드는 작업이 진행됐다. 자원봉사자들은 현주를 전문 녹음실로 데려갔다. 생전 처음 보는 장비들로 가득한 녹음실에서 현주는 직접 고른 가요 세 곡과 동요 두 곡을 녹음했다.네 시간 넘게 계속된 작업에 목이 다 쉴 지경이었지만 현주는 “진짜가수가 된 것 같다” 며 내내 즐거워했다.

    8월 8일, 손꼽아 기다리던 위시데이(Wishday·소원을 이루는 날)가 찾아왔다. ‘ 가수 조현주’ 의 앨범 제작을 기념하는 팬 사인회가 현주네 반 교실에서 열렸다. 행사엔 친구들과 학부모 등 30~40명이 함께했다.
  • 그룹‘티아라’멤버들이 동영상을 통해 현주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 그룹‘티아라’멤버들이 동영상을 통해 현주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와~ 현주 정말 예쁘다. 꼭 가수 같아.” 하얀 드레스를 입고 예쁘게 화장까지 한현주가 교실에 들어서자 친구들 사이에서 부러움 섞인 탄성이 터져 나왔다. 곧 교실 한쪽에 마련된 무대에서 작은 콘서트가 열렸다. 이날의 주인공 현주의 무대였다. 현주는 자신의 앨범에 담긴 첫 곡 ‘또르르’ (김종천작사·작곡, 지연 노래)를 노래해 큰 박수를 받았다. 이어진 팬 사인회 시간. 친구들은 너도나도 현주의 사인 CD를 받기 위해 줄을 섰다. 현주는 한 사람 한 사람 정성스럽게 사인을 해주며 응원에 보답했다.

    행사가 끝날 때쯤 자원봉사자들이 준비한 ‘깜짝 선물’ 이 공개됐다. 현주가 가장 좋아하는 그룹 ‘티아라’ 멤버들이 보낸 영상 편지였다.

    “현주야, 안녕? 우리 현주 앞으로 더 멋진 숙녀가 돼서 언니들처럼 앨범도 내고 무대에도 서면서 건강하게 지냈으면 좋겠어. 팬 사인회 무사히 잘 마치길 바라고 다음에 꼭 만나자. 현주 파이팅!”

    생각지도 못했던 큰 선물을 받은 현주의 얼굴이 기쁨으로 환해졌다. “ TV에서만 보던 티아라 언니들이 내 이름을 불러줄 때 너무 좋아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어요. 지금도 언니들이 보내준 동영상을 컴퓨터 바탕화면에 깔아놓고 매일 보고 있어요.”

    위시데이 이후 더 밝아지고 건강해진 현주. 요즘엔 드라마 주제곡을 피아노로 연주하며 노래 부르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열심히 치료받아서 꼭 병을 이겨낼 거예요. 언젠가 유명한 가수가 돼 무대 위에서 멋지게 노래 부르는 모습 보여 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