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기획][기부, 어린이도 할 수있어요!] <下> '어린이 기부왕' 이정훈 군 (서울 도곡초 4)
이윤정 인턴기자 yjlee@chosun.com
기사입력 2010.12.02 00:32

"月 3만원 '나눔'으로 더 큰 세상 만났죠"
집안일 도우며 용돈 모아 해외 어린이 결연 함께해
기부ㆍ봉사로 배려심 배워

  • 올 4월, 정훈이에게 특별한 친구가 한 명 생겼다. 이름은 세리파 다스마네. 서아프리카 가나에 사는, 눈이 예쁜 동갑내기 친구다.

    세리파와 친구가 된 덴 특별한 사연이 있다. 올 1학기 정훈이는 학급회장 선거에 나갔다가 충격을 받았다. 틀림없이 뽑힐 거라고 확신했지만 떨어졌기 때문이다. 속상한 맘에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그때 어머니가 책 한 권을 건넸다.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한비야 지음, 푸른숲)였다.

    국제구호 비정부기구(NG0) 월드비전 긴급구호팀장으로 전 세계를 돌며 어려운 이웃을 돌봤던 한비야 씨의 체험이 담긴 이 책은 정훈이를 변화시켰다. 당장 ‘우리 반을 위해 뛰겠다’던 학급회장 선거 때의 공약부터 ‘고통받는 세계 어린이를 돕는 일에 팔 걷어붙이겠다’는 약속으로 바뀌었다.

  • 이정훈 군은 월드비전 해외 어린이 결연을 통해 ‘나눔’의 기쁨을 알게 된 후, ‘나보다 어려운 처지의 어린이를 돕겠다’는 꿈을 키워오고 있다. / 이윤정 인턴기자
    ▲ 이정훈 군은 월드비전 해외 어린이 결연을 통해 ‘나눔’의 기쁨을 알게 된 후, ‘나보다 어려운 처지의 어린이를 돕겠다’는 꿈을 키워오고 있다. / 이윤정 인턴기자
    정훈이는 책을 통해 ‘월드비전의 해외 어린이 결연 사업에 참여하면 적은 돈으로도 친구들의 삶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매달 3만원만 내면 내 힘으로 한 지역을 개발할 수 있다고? 그 지역 어린이가 공부를 할 수 있도록 학용품과 점심도 지원할 수 있다는 거지? 그래, 나도 한번 해보자!’

    문제는 돈을 마련하는 방법이었다. 정훈이는 부모님과 의논해 집안일을 돕는 대가로 용돈을 받기로 했다. 폐휴지 분리수거 500원, 신발 정리 500원, 설거지 1000원. 이렇게 한 달을 꼬박 일하고 4만원을 받았다. 이 중 3만원은 세리파를 돕는 데 쓰고 나머지 1만원은 적금을 부었다. 돈을 차곡차곡 모아 더 많은 친구를 돕고 싶은 맘에서다.

    정훈이는 현재 월드비전의 최연소 일반인 홍보대사를 맡고 있다. 덕분에 정기 결연 외에도 다양한 봉사활동에 참여할 기회가 많다. 지난 8월엔 충북 제천으로 무료 도시락 배달을 다녀왔다. 가난으로 끼니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이웃을 집집마다 방문하며 도시락을 나눠주는 활동이었다. 지난달 13일엔 서울 잠실 주경기장에서 열린 ‘기아체험 24시’에도 참가했다.

  • 지난 8월 충북 제천에서 무료 도시락 배달에 참여한 이정훈 군이 도시락에 들어갈 음식을 정성껏 준비하고 있다. / 월드비전의 일반인 홍보대사 ‘비전 메이커’로 활동하고 있는 이정훈 군(앞에서 셋째 줄)이 봉사활동을 마친 후 어머니와 함께 손으로 하트 모양을 그리고 있다.  / 월드비전 제공
    ▲ 지난 8월 충북 제천에서 무료 도시락 배달에 참여한 이정훈 군이 도시락에 들어갈 음식을 정성껏 준비하고 있다. / 월드비전의 일반인 홍보대사 ‘비전 메이커’로 활동하고 있는 이정훈 군(앞에서 셋째 줄)이 봉사활동을 마친 후 어머니와 함께 손으로 하트 모양을 그리고 있다. / 월드비전 제공
    기부와 봉사를 시작한 후, 정훈이는 부쩍 어른스러워졌다. “나보다 힘들게 사는 다른 나라 어린이들을 생각하며 배려심을 키우게 됐어요. 회장 선거에서 떨어진 덕분에 오히려 더 넓은 세상을 만나게 된 셈이죠.” 어머니 강영주 씨(37세)는 달라진 아들이 대견한 눈치다.

    “정훈이는 또래 친구들과 달리 욕심이 없어요. 자기가 더 좋은 걸 갖는 것보다 함께 나누는 삶이 더 큰 기쁨이란 걸 스스로 깨달은 거죠.” 새로운 캐릭터 스티커가 나올 때마다 엄마를 졸랐던 여섯 살 여동생 은수도 오빠를 보며 하나 둘 배워가고 있다. 얼마 전엔 은수가 ‘자기도 집안일 도와 어려운 동생들이 먹을 분유를 사주고 싶다’고 먼저 얘길 꺼내 온 가족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월 3만원. 정훈이는 그 돈으로 할 수 있는 다른 것들을 포기하는 대신 ‘나눔’을 택했다. 그 결과, 정말 많은 걸 얻었다. UN사무총장이 되겠다는 야무진 꿈도 그 중 하나다.

    “친구들을 돕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에 앞장서려면 나부터 올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걸 깨달았어요. 입장을 바꿔보면 내가 아프리카에서 가난하게 자랐을 수도 있는 거잖아요. 그런 생각을 조금이라도 한다면 누구나 주저 없이 나눔에 참여할 수 있을 거예요.”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