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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나눔도 바이러스처럼 전염성이 있다는 것 알고 있나요? 지난주에 소개했던 김군자 할머니의 나눔 사연이 알려진 후, 아름다운재단에선 동화 같은 나눔 릴레이가 이어졌답니다. 오늘은 그 두 편의 얘기를 들려드릴게요!
◆멸치 한 상자의 아름다운‘나눔 여행’
아름다운재단엔 200여 가지 기금(基金)이 있어요. 그 중엔 ‘멸치 한 상자기금’이란 재미있는 이름의 기금도 있답니다. 이 기금은 김군자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나눔을 결심하게 된 기부자 박음전 씨가 만든 기금이랍니다.
울산에서 노점상을 운영하는 박음전 씨는 매일 번 돈에서 3000원을 떼어내 저축해왔습니다. 이렇게 모은 돈으로 금 열 돈을 산 후 아름다운재단에 기부했죠. 지금 금 한 돈 가격이 22만 원 정도이니 220만 원짜리 기금인셈이네요. 울산항 앞에서 거친 바닷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떡볶이와 커피를 파는 박 씨가 이 기금을 만든 이유는 뭘까요? -
여러분은 기억할지 모르지만 지난 1998년 우리나라가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를 겪을 당시 여러 사람이 금붙이를 내놓아 어려움을 극복했거든요. 박음전 씨는 그때처럼 도움이 필요한 우리 이웃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맘에서 금을 기부하게 됐다고 해요.
그런데 왜 하필 기금 이름이 ‘멸치 한 상자’일까요? 박음전 씨가 재단 사람들에게 “좋은 일 하느라 수고 많다”며 작은 멸치 한 상자를 보내왔거든요. 이 멸치는 즉석에서 경매에 부쳐졌고 한 기부자가 낸 성금 30만 원과 맞바꿔졌답니다.
이 기부자는 자신이 구입한 멸치를 다시 작은 음식 가게에 기증했어요. 결국 멸치는 설날 연휴 사흘간 실직자들에게 무료로 나눠준 떡국 조리용으로 쓰였답니다.
◆수입 10% 기부하는 장애인 한윤학 씨
박음전 씨의 얘기가 TV를 통해 소개된 10년 전 어느 날 저녁, 아름다운 재단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어요. “방금 TV에서 봤는데…”라며 말문을 연 사람은 한윤학 씨였어요. 그는 “어려운 가운데서도 누군가를 돕는 박음전 씨의 삶이 무척 아름다워 보였다”며 자신도 나눔에 동참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습니다. 그러곤 자신의 삶을 하나씩 꺼내놓기 시작했어요. -
“전 장애인입니다. 수입이라곤 정부에서 받는 보조금이 전부예요. 그 보조금의 1%라도 나눌 수 있을까요? 방송을 보니 제가 정부 돈으로 너무 편안하게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매달 받는 돈의 일부를 떼어 기부하는 거라면 저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연락드렸습니다.”
한 기부자의 잔잔한 목소리에 전화를 받던 아름다운재단 간사의 눈엔 어느새 감동의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그 후 한윤학 씨는 기부금을 재단에 직접 전달하기 위해 매달 셋째 주 아름다운재단을 방문합니다.
한쪽 팔과 다리를 쓰지 못하는 그에겐 재단 사무실로 가는 서울 종로구 가회동 언덕길이 만만찮습니다. 하지만 한윤학 씨의 ‘특별한 외출’ 은 벌써 10년째 계속되고 있어요. 한 달 기부액은 2만 원. 많지 않은 돈이라고요? 한윤학 씨에겐 월수입의 10%나 되는 큰돈인 걸요.
“제가 보낸 작은 돈이 경제적으로 불우한 가정이나 어려운 청소년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제가그분들께 사랑받는 느낌이 듭니다. 제 도움은 비록 미약하지만 작은 물이 모여 큰 강물이 되듯 작은 정성이 모인다면 큰 정성이 될 거라고 믿습니다. 제 삶 자체가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이뤄지는 만큼 얼마 안 되는 돈이지만 저보다 더 어려운 이웃과 나누고 싶어요.” -
김군자 할머니로부터 시작한 나눔은 박음전 씨에게로, 다시 한윤학 씨에게로 이어져 아름다운 ‘나눔 릴레이’ 로 완성되고 있습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나눔을 실천하는 이분들의 소중한 뜻 앞에서 아름다운 세상을 향한 희망의빛을 새삼 확인하게 됩니다.
[나눔으로 쑥쑥] '보조금의 일부' '멸치 한 박스'도 나눔이 되네
아름다운 나눔 릴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