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좇는 인터뷰] 소녀 소리꾼 김란이 양(경남 산청 신안초등 6년)
산청=류현아 기자 haryu@chosun.com
기사입력 2010.11.23 09:36

난 미래의 명창 "세계에 우리 가락 알릴래요"

  • 김란이 양 / 산청=류현아 기자
    ▲ 김란이 양 / 산청=류현아 기자
    즐거울 때나 심심할 때, 또는 무의식적으로 우린 가끔 콧노래를 불러. 너희는 주로 어떤 노래를 흥얼거리니? 음악 시간에 배운 동요? 아니면 요즘 최고로 인기 있는 유행가? 노래를 즐겨 부르는 건 란이(경남 산청 신안초등 6년)도 마찬가지야. 학교 쉬는 시간에도, 집에서 혼자 수학 문제를 풀면서도, 그리고 길을 걸으면서도. 그런데 란이가 부르는 노래는 조금 특별해. 민요나 판소리 같은 구성진 우리 가락이거든.

    △처음 들은 판소리에 “와, 멋지다!”

    란이가 소리와 인연을 맺은 건 어쩌면 운명이었는지도 몰라. 소리는 타고난 소질이 없으면 아무리 뜻이 깊어도 하기 힘들다는 것, 너희도 잘 알고 있지? 그런데 타고난 소질만큼 중요한 게 또 하나 있어. 바로 재능을 알아보는 ‘눈’이지.

    란이가 1학년 때였어. 학예회에서 사회를 보는데, 한 친구가 소리 선생님의 장단에 맞춰 판소리 한 대목을 멋지게 불렀어. 처음 들어보는 우리 가락에 란이는 감탄했대.

    ‘아, 저런 노래도 있구나!’ 하고 말이야. 그런데 며칠 뒤, 그 친구네 집에서 란이는 소리 선생님과 마주치게 됐어. 선생님은 대뜸 란이 엄마에게 전화를 해선 “란이를 테스트해보고 싶다”며 허락을 구했고, 국악원으로 란이를 데리고 가셨어. 학예회 사회를 보는 란이의 목소리를 듣곤 단번에 재능을 알아보신 거지.

    란이는 1박2일 동안 진행된 테스트를 당당히 통과했어. 양반다리에 허리를 꼿꼿이 펴고 오랫동안 앉아있는 게 쉽진 않았지만 묵묵히 참아냈거든. 뜻도 모르는 민요와 판소리 자락도 멋지게 따라불렀고 말이야. 무엇보다 란이는 우리 소리가 좋았어. 그래서 반대하는 부모님을 한 달씩이나 설득해 소리의 세계로 들어오게 됐어.

    △‘재미’로 시작… 3학년 때 본격적 훈련

    사실 처음 1~2년은 ‘제사’보다 ‘잿밥’에 더 관심이 많았어.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찾아가는 지리산 자락의 국악원에서 친구·선배들과 뛰노는 게 무척 즐거웠거든. 친구들과 장난치다가 선생님께 눈물 쏙 빠지게 혼난 적도 여러 번이래.

    정신을 바짝 차린 건 3학년 때였어. 기껏해야 장려상이 고작이었던 예전과 달리 그해 처음으로 전국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거야. 곧이어 나간 대회 결과 역시 대상이었지. ‘아, 내가 실력이 있었구나!’ 란이는 우쭐해졌어. 하지만 다음 대회 성적은 다시 장려상. 란이는 머리가 하얘졌지. ‘뭐가 잘못됐을까?’ 생각을 거듭하다가 결심했대. ‘이제부터 소리 공부 정말 열심히 해야겠다!’고 말이야.

    이후부터 란이는 하루도 빼놓지 않고 매일 혼자 한 시간씩 소리 연습을 했어. 주말에 국악원에 가서도 최선을 다했지. 소리를 잘 모르셨던 부모님이 란이를 인정하신 것도 그때쯤이었어. 소리가 느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으니까. 결과도 좋았어. 지난해 춘향국악대전, 올해 전주대사습놀이, 임방울국악제 등 ‘3대 전국 대회’를 모조리 휩쓸었거든. 

    △무대에만 서면 ‘벌벌’… 다른 곡 부르기도

    지금이야 연습할 때나 무대에서나 평상시 실력을 100% 발휘하지만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란이는 무대 공포증에 시달렸어. ‘소리는 목이 아닌 배로 하는 것’이란 말이 있거든. 배에 힘을 가득 줘야 좋은 소리가 나온다는 뜻이지. 그런데 란이는 무대에서 하도 긴장을 해 다리는 물론, 배까지 벌벌 떨었대. 한번은 대회에 나가서 엉뚱한 곡을 부른 적도 있어. 원래는 춘향가의 한 대목을 하기로 돼 있었는데 긴장한 나머지 ‘흥부가’를 부른 거지. 다행히 자기가 무슨 잘못을 한 줄 몰랐던 덕분에 곡은 끝까지 마칠 수 있었대. 하지만 나중에 실수를 전해 들었을 땐 눈앞이 까매졌다나?

    란이가 무대에 서는 두려움을 극복한 건 소리 공부에 전념하면서부터야. 준비를 철저히 한 만큼 자신감이 커진 거지. 지금은 어떠냐고? 언제, 어느 무대에서도 자신의 소리를 즐길 수 있을 정도로 ‘무대 체질’이 됐지.

    △명창 돼서 전 세계에 우리 소리 알리고파

    란이는 소리를 시작한 후 몇 번 크게 운 적이 있어. 2년 전의 일이 대표적이지. 전주대사습놀이에 나가려고 정말 열심히 준비했는데 대회 전날 밤 갑작스레 사고가 나는 바람에 큰 수술을 받아야 했대. 세 시간의 수술 후 마취에서 깨어난 란이의 첫 마디가 뭐였는 줄 알아? “아, 대회!” 사고가 났을 때도 의연하던 란이는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어.

    하지만 기쁠 때도 많아. 스스로의 소리가 만족스러울 때지. 란이의 꿈은 명창(名唱·노래를 뛰어나게 잘 부르는 사람)이 되는 거야. 그래서 전 세계 사람들에게 우리 소리의 아름다움을 알려주고 싶대. 란이가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너희도 우리 가락에 관심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채수정 박사가 소녀 소리꾼 란이에게

    "상 받는 게 목표 돼선 안 돼… 끊임없이 연습하세요"


  • -어떻게 소리 공부를 시작하게 되셨어요?
    “전통예술의 본고장인 전라도 진도에서 태어났어요. 어릴 때부터 민요와 판소리를 듣고 자랐죠. 하지만 중학교 때까지 피아노나 합창 같은 서양음악을 공부했어요. 우연한 기회에 국악고에 진학했는데 ‘농부가’를 처음 부르는 순간 머리카락이 곤두서는 느낌이 들었어요. 말할 수 없는 희열(喜悅·기쁨과 즐거움)을 느꼈죠. 그때 판소리로 전공을 정했고, 그때의 느낌이 지금까지 절 이끌어줬어요.”

    -고비는 없었나요?
    “왜요, 숱하게 많았죠. 실력이 늘지 않을 때 느끼는 좌절감이란. 똑같은 걸 10년쯤 했는데 제자리라고 생각해보세요. 정말 눈물이 줄줄 흐릅니다. 하지만 ‘좋은 소리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포기할 수 없었어요.”

    -1학년 때부터 소리 공부를 시작해 계속 한 분에게 지도를 받고 있어요.
    “좋은 스승을 만나는 게 소리 인생의 90%를 좌우해요. 예술의 정신이나 철학을 모두 스승에게서 배우니까요. 조급한 마음에 선생님을 자꾸 바꾸는 학생들이 있는데 이도 저도 안 되는 경우가 많아요.”

    -여러 대회에서 상을 받았어요.
    “대회에 나가려면 아무래도 열심히 연습하게 되니까 긍정적이라고 봐야겠죠. 하지만 상을 받는 게 공부의 목표가 돼선 안 돼요. 대회에 참가하는 건 소리 공부의 한 과정일 뿐이니까요. ‘쥐가 소금 먹듯 공부하라’는 말이 있어요. 끊임없이 힘써 나아가란 뜻이죠.”

    -또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요.
    “세상을 바라보는 자기만의 ‘눈’을 가져야 해요. 소리만 잘하는 건 앵무새에 불과해요. 판소리 다섯 마당을 부를 줄 아는 사람은 많습니다. 하지만 판소리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또 현대적으로 풀어내기 위해 고민하는 사람은 드물어요. ‘기능인’이 되느냐, ‘철학인’이 되느냐 하는 건 안목(眼目·사물을 분별하는 견문과 학식)에 따라 결정됩니다.”


    △채수정 박사는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이수자. 국악고 2학년 때 박송희 명창을 만나 ‘박록주제 흥보가’를 배우기 시작했다. 흥보가(2006년)와 적벽가(2010년) 완창 발표회를 가졌고, 올해 임방울국악제에서 판소리 명창부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2008년 이화여대에서 ‘판소리 다섯 바탕의 중모리 대목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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