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서 상상의 날개 얻었어요"
류현아 기자 haryu@chosun.com
기사입력 2010.11.17 09:52

동화책 '버터와 밤톨' 쓴 열두 살 김하늘 양

  • 지난 6월의 어느 날, 어린이책 출판사 웅진주니어 편집팀 식구들은 원고 하나를 놓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작가 이름도 없이 편집팀으로 배달돼온 짧은 동화 한 편은 ‘서툰 듯 세련되고, 천진한 듯 날카로운’ 묘한 매력이 있었다. 구성은 좀 어설펐지만 신선한 표현과 빼어난 상상력이 단연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고민 끝에 출판을 결정한 편집팀은 원고를 건네준 기획자에게 연락을 취했고,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작가가 겨우 열두 살짜리 어린이였기 때문이다.

    지난주 세상에 나온 ‘버터와 밤톨’의 저자 김하늘 양(페이스 아카데미·Faith Academy 6년)은 필리핀 마닐라 근교에 살고 있다. 태어나면서부터 줄곧 그곳에서 자랐다. 작가가 꿈이긴 하지만 사실 하늘이가 글 쓰는 것보다 좋아하는 건 독서다. 평상시는 물론, 밥 먹을 때나 걸어다닐 때도 책을 읽는 통에 툭하면 엄마께 야단을 맞을 정도다. 하지만 그 덕에 머릿속은 늘 새로운 이야기로 가득 채워졌다. 하늘이는 그렇게 쌓인 이야기 보따리를 매일 밤 동생 빛나에게 풀어놓곤 했다.

  • 하늘이는 늘 책을 끼고 산다. 하늘이의 첫 작품‘버터와 밤톨’은 풍부한 독서량과 햄스터를 직접 키워본 경험이 만나 탄생한 동화다. / 김하늘 양 제공
    ▲ 하늘이는 늘 책을 끼고 산다. 하늘이의 첫 작품‘버터와 밤톨’은 풍부한 독서량과 햄스터를 직접 키워본 경험이 만나 탄생한 동화다. / 김하늘 양 제공
  • 동화를 쓴 건 2년 전이었다. 처음엔 그저 동생과 함께 ‘재미로’ 시작했다. “빛나랑 ‘Who stole my books?’(누가 내 책을 훔쳤지?)란 얘길 영어로 A4 용지에 한 장씩 번갈아 썼어요. 그림도 그렸고요. 20장 정도 썼는데 어느날 흐지부지 그만두게 됐어요.” 그러나 나중에 이 글을 읽어본 부모님은 재미있다며 크게 칭찬해주셨다. 엄마는 아예 여러 나라에서 온 같은 반 친구들에 대해 써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필요하다면 컴퓨터 타이핑도 거들어주시겠다며 아예 팔을 걷어붙이셨다. 그러나 하늘이는 1년 반 동안 집에서 길렀던 햄스터 친구 ‘버터’와 ‘밤톨’의 이야기를 쓰고 싶어했다. 그렇게 집필에 들어간 게 지난해 겨울. ‘어차피 작가가 될 거니까 어렸을 때부터 시작하자’는 생각이었다.

    동화가 완성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3개월 정도. 우선 햄스터 친구들의 일생을 9개 부문으로 나눈 후, 햄스터의 입을 빌려 이야기를 풀어나가기로 했다. “직접 키웠던 햄스터들 얘길 시간의 흐름에 따라 썼기 때문에 그리 어렵지 않았어요. 그렇지만 진짜 햄스터들의 생각을 몰라 상상해야 했던 점은 좀 힘들었죠.” 집필 작업은 하늘이가 영어로 말하면 엄마가 컴퓨터 키보드를 이용해 문장을 입력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엄마는 딸의 말을 묵묵히 받아적기만 할 뿐, 단 한 번도 문장을 고치거나 줄거리를 조정하지 않았다. 하늘이를 온전히 믿었기 때문이었다.

    완성된 작품은 하늘이에게도, 부모님에게도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지난여름, 한국에 들른 하늘이 가족은 우연한 기회에 출판사와 연락이 닿았다. ‘버터와 밤톨’은 그 결과물인 셈이다. 물론 이 책은 우리말로 된 번역본이다. 하늘이는 아직 자기 책을 보지 못했다. 전화로 만난 하늘이는 “이번 주 금요일쯤 책이 온다는데 많이 설렌다”고 말했다.

    요즘 하늘이는 두 번째 동화를 쓰고 있다. 낯선 학교로 전학을 간 초등 5학년 여자아이가 겪는 어려움과 우정에 관한 이야기란다. “재미있는 글을 쓰고 싶어요. 누구나 읽고 싶어하는 글, 아름다운 글, 감동적인 글을 쓰는 작가가 될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