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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오늘은 누구랑 놀아요?” “민수한테 전화해서 같이 놀자고 해.”
“뭐 하면서 놀죠?” “게임 좋아하잖니. PC방에 가서 한 시간만 놀다 와.”
서울 ㄱ초등학교 6학년 김현수 군(가명)은 오늘도 어김없이 엄마에게 질문한다. 누구와 뭘 하며 놀아야 할지, 언제 돌아와야 할지까지 일일이 묻고 확인한 후에야 집을 나선다. 어머니 이미선 씨(가명)는 이런 아들이 걱정스럽기만 하다.
“한창 운동장에서 뛰놀며 친구들과 어울려야 할 나이인데 놀이 수단이 기껏해야 영화 아니면 게임이에요. 시험 기간엔 친구들과 놀고 싶다며 시험 끝나기만 손꼽아 기다리더니 막상 친구를 만나선 ‘뭐 하고 놀아야 할지 모르겠다’며 금세 집으로 돌아왔더라고요.”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떠들썩해야 할 놀이터. 하지만 요즘 놀이터에서 아이들을 찾기란 쉽지 않다. 옛날처럼 삼삼오오 모여 고무줄놀이, 술래잡기하는 아이를 발견하긴 더욱 어렵다. 학교로, 학원으로 도느라 ‘빈 시간’ 자체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어쩌다 짬이 생겨도 ‘제대로 노는 법’을 몰라 하릴없이 시간만 허비한다. 제일 만만한 건 휴대용 게임기다. 상대와 몸을 부대끼며 소통하는 ‘전통적 놀이’보다 혼자 시간 때우기 좋은 ‘인스턴트 놀이’에 익숙해져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초등학교 시기에 제대로 된 놀이 문화를 익히지 못하면 사회성이 부족해질 뿐 아니라 삶을 주도적으로 이끄는 데도 어려움에 부닥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소년조선일보는 2회에 걸쳐 ‘놀 줄 모르는 아이들’의 문제를 집중 조명한다.
◆블록 놀이로 ‘설득하는 법’ 배운다?
소꿉놀이·모래놀이·공놀이. 어릴 때 누구나 한두 번씩은 접하는 놀이들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다. 이후 놀이는 철저하게 ‘학습’에 초점이 맞춰지기 때문이다. 이경민 경인교대 유아교육과 교수는 “자녀가 초등학생이 된 후엔 오로지 공부에만 집중해야 한다는 부모가 많지만 놀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교육적 효과를 간과(看過·큰 관심 없이 대충 봐넘김)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아이를 책상 앞에 앉혀놓고 아무리 설득하는 법을 가르친다 한들 그 아이가 실제로 남을 설득할 수 있을까요? 쉽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블록놀이하는 아이들을 가정해볼까요? 만약 한 아이가 자신의 조각이 하나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옆 친구에게 ‘함께 만들자’고 제안할 거예요. 그 친구와 함께 놀려면 같이 블록 만드는 게 왜 좋은지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겠죠. ‘진짜 설득법’은 바로 그 과정에서 배울 수 있게 됩니다.”
요즘 부모들이 가장 걱정하는 자녀의 사회성 문제도 놀이를 통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 특히 이 경우, 여러 명이 함께하는 팀(team) 게임이 유리하다. 친구들과 편을 나눠 승부를 겨루는 과정에서 서로의 의견을 조율하고 때론 양보도 하면서 어울리는 법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놀이를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어린이는 정서적으로도 안정감을 갖게 된다. 정유화 서울 서초초등학교 선생님은 “잘 노는 아이들은 성적이나 친구관계 등 모든 방면에서 능동적”이라며 “놀이 역시 경험을 통해 얻는 엄연한 지식의 하나”라고 말했다. -
◆“하루 한 시간은 맘껏 놀게 하세요”
‘공부가 어렵지 노는 게 뭐 그리 힘들려고.’ 여전히 상당수의 학부모가 이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현수 군처럼 ‘놀 줄 모르는 어린이’는 생각보다 많다는 게 전문가의 공통된 지적이다. 정유화 선생님은 그 이유를 ‘학교-학원-집’으로 이어지는 요즘 어린이의 빡빡한 일상에서 찾는다. “학교 수업이 끝나도 학원 가기 바쁘다 보니 밖에서 뛰어놀 절대적 시간이 부족해요. 자연히 친구들과 다양한 놀이를 공유할 기회도 적어질 수밖에 없죠.”
이경민 교수는 “지나치게 자녀의 일상에 참견하는 요즘 학부모의 태도에도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요즘 엄마들은 ‘내 아이의 매니저’를 자처합니다. 그러다 보니 공부는 물론 노는 것조차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어요.” 이 교수는 ‘노는 시간=버리는 시간’이라는 학부모의 생각부터 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놀이 시간은 아이가 스스로를 돌아보고 재충전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입니다. 좋아하는 놀이를 통해 자신의 적성과 흥미를 찾고, 그걸 바탕으로 꿈과 진로를 결정할 수 있으니까요. 지금이라도 부모님은 하루 한 시간씩 자녀에게 마음껏 놀 수 있는 시간을 선물할 필요가 있어요.”
다만 ‘어떤 놀이가 좋을까?’ 하는 문제는 어린이의 특성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 이경민 교수는 “가장 좋은 놀이는 ‘아이가 하고 싶은 일’과 관계되는 것”이라며 “노래 부르기, 야구 하기, 책 읽기 등 자녀가 특별히 관심을 보이는 분야를 유심히 관찰한 후 그것과 관련된 자신만의 취미활동을 찾을 수 있도록 지원하라”고 조언했다.
[놀 줄 모르는 아이들] <上> ‘인스턴트 놀이’에 길들여진 아이들
김명교 기자
kmg8585@chosun.com
엄마, 오늘은 누구랑 뭐하고 놀까요?
학부모가 공부서부터 놀이까지 참견 사회성 부족한 수동적 아이로 만들어
좋아하는 놀이로 적성 찾도록 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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