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원을 말해봐] "내게도 소원 기념일이 생겼어요"
김재현 기자 kjh10511@chosun.com
기사입력 2010.11.05 09:41

악성림프종 앓는 강채린 양, 유니버설 발레단에 가다

  • “채린아, 일어나야지?”

    지난 10월 23일 새벽 다섯 시, 부산금정구에 위치한 강채린 양(7세)의집. 밖은 아직 어둑했지만 어머니 백은정 씨(33세)의 나지막한 목소리가들리자마자 채린이는 벌떡 일어났다. 아침잠 많기로 둘째 가라면 서러운 잠꾸러기였지만 이날만큼은 눈 깜짝할새 외출 채비를 마쳤다. 그리곤 신발도 구겨 신은 채 현관 앞에서 어머니를 재촉했다.

    “엄마, 빨리 가자. 늦겠어요.”

    ◆잠옷 대신 발레복 입고 자던 소녀,꿈을 이루다

    채린이의 이날 아침이 유난히 분주했던 데는 이유가 있다. 몇 달간 손꼽아 기다려온 '위시 데이’(소원을 이루는 날)였기 때문이다. 소원이 이뤄질 장소는 서울 광진구에 있는 유니버설 발레단 사무실. 발레리나를 꿈꾸는 채린이가 평소 가장 가보고 싶었던 곳이다. 소원 성취 기관인 한국메이크어위시재단의 문을 두드릴 때부터 채린이의 소원은‘발레’로 정해져 있었다. 어머니 백 씨는 “TV에서 우연히 발레 공연을 본 후부터 발레리나가 되겠다더라” 며 “한날은 발레복을 입고 싶다고 조르기에 사줬는데 그날 이후 잠옷 대신 발레복을 입고 잤을 정도” 라며 웃었다.

  • 한국메이크어위시재단은‘위시 데이’를 맞은 채린이에게 분홍색 발레복을 선물했다. 채린이는 선물을 받자마자 입고 있던 옷을 벗어 던지고 발레복으로 갈아입으며 즐거워했다. 임혜경 유니버설 발레단 수석무용수와 손을 이용해 하트 동작을 만들어보고 있는 채린이(작은 사진). / 한국메이크어위시재단 제공
    ▲ 한국메이크어위시재단은‘위시 데이’를 맞은 채린이에게 분홍색 발레복을 선물했다. 채린이는 선물을 받자마자 입고 있던 옷을 벗어 던지고 발레복으로 갈아입으며 즐거워했다. 임혜경 유니버설 발레단 수석무용수와 손을 이용해 하트 동작을 만들어보고 있는 채린이(작은 사진). / 한국메이크어위시재단 제공
    채린이가 `위시 데이’를 고대해 온 이유는 또 있다. 사실 당초 채린이의 위시 데이는 지난 7월에 있었다. 하지만 그즈음 채린이의 병세가 악화돼 부득이하게 일정을 미룰 수밖에 없었다. 항암 치료의 부작용이었다. 채린이와 5개월 동안 함께한 자원봉사자 강태우 씨(24세)는 “몸 아픈 것보다 소원을 미뤄야 한다는 게 채린이에겐 더큰 상처였을 것” 이라고 말했다.

    채린이의 병명은 악성림프종이다.온몸의 림프(lymph ·조직 사이를 채우고 있는 무색의 액체)샘이 부어오르는 악성 종양(암)이다. 여섯 살 때던 지난해 7월 발병 후 1년 넘게 항암 치료를 받아오고 있다. 밝고 명랑했던 채린이의 성격은 치료가 계속되며 신경질적으로 변했다. 일곱 살짜리 소녀가 감당하기에 항암 치료의 고통은 너무나 컸다. 어머니 백 씨는 힘들어하는 딸을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을 고민하다 한국메이크어위시재단에 도움을 요청했다. 그리고 마침내 이날, 그 꿈이 막 이뤄지려 하고 있었다.

    ◆발레 공연도 보고 수석무용수와 ‘하트’ 동작도

    오전 11시. 유니버설 발레단 건물에도착한 채린이와 어머니 백 씨는 곧장4층으로 올라갔다. 발레단원 연습실이자리한 곳이다. 처음 보는 연습 광경 앞에서 채린이도 덩달아 바빠졌다. 고개를 이리저리 기웃거리며 구경하다가이내 “우와~”하는 탄성을 질렀다. 발레리나와 발레리노의 우아한 춤 동작을 조심스레 따라 해보기도 했다.

    연습이 끝난 후 신기한 듯 연습장을뛰어다니던 채린이에게 특별한 손님이 찾아왔다. 임혜경 유니버설 발레단수석무용수였다. 연습 땐 발레복을 입지 않는 게 일반적이지만 이날은 채린이를 위해 특별히 발레복을 갖춰 입고 ‘꼬마 손님’ 을 맞았다.

    “네가 채린이구나. 정말 발레를 좋아하는 모양이네.”

    채린이의 눈높이에 맞춰 허리를 숙인 임혜경 수석무용수의 모습에 채린이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채린이는 발레를 좋아하느냐는 질문에 아무 말도못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평소 활발하고 낯을 가리지 않는 성격이었지만 그순간,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우리 손으로 하트를 그려볼까? 발레에도 비슷한 동작이 있어. 한번 해보자.”

    채린이는 머리 위로 들어 올린 자기손이 임혜경 수석무용수와 맞닿자 그제야 환한 미소를 지었다.

    채린이의 ‘꿈같은 하루’는 계속 이어졌다. TV로만 보던 발레 공연을 직접 구경했고 위시 데이를 축하하는 3단 케이크도 선물 받았다. 하루를 보낸 소감을 묻자 채린이는 손가락을 하나씩 접어가며 말했다.

    “발레 연습도 신기했고, 발레 공연도재밌었고, 선생님하고 만난 것도 좋았고…. 오늘 하루만큼은 아픈 것도 다잊었어요. 꼭 발레리나가 돼야겠다는생각도 들었고요. 저도 임혜경 선생님처럼 예쁜 발레리나가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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