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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오전, 경북 봉화 소천초등학교 남회룡분교(분교장 송명원) 운동장에 들어서니 빨간 낙엽이 데굴데굴 굴러왔다. 그 뒤로 아담한 학교 건물이 한눈에 쏙 들어왔다. 학교 주변으로 울긋불긋 낙엽 옷을 갈아입은 산과 개울, 빨간 고추와 푸른 배추가 어우러진 가을 풍경이 펼쳐졌다.
학교에 들어서니 남자 어린이 다섯 명이 복도로 우당탕탕 뛰쳐나왔다. “우리 학교 자랑거리요? 바로 얘예요. 앞니가 다 빠져서 별명이 강냉이예요.” “뭐라고? 넌 오줌장군이잖아!” 2학년 구본희·김성일, 3학년 권순호, 4학년 김홍일, 6학년 권순태. 딱 다섯이 전부인 이 학교 전교생이다.
재미있는 사실 하나 더. 남회룡분교엔 여자가 없다. 학생 다섯에 송명원 분교장 선생님과 정이동 선생님, 남용욱 소사까지 여덟 명이 전부 남자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닌데 어쩌다보니 ‘금녀(禁女·여자의 출입이나 접근을 금함) 구역’이 됐다. -
◆고추 따고 물고기 잡고… "자연이 교실"
남회룡분교에선 계절별로 다양한 자연체험 활동이 이뤄진다. 특히 가을은 이 학교 어린이들이 바빠지는 계절이다. 고구마·호박·고추·밤 등 수확(收穫·농작물을 거둬들이는 일)해야 하는 농작물이 하나 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고추 따기의 의미는 더욱 특별하다. 이 학교 어린이들의 부모님 대부분이 고추 농사를 짓고 계시기 때문이다. 김홍일 군은 “밥상에 올라오는 고추가 어떻게 자라는지 직접 볼 수 있고 부모님 일손도 거들 수 있어 보람 있다”고 말했다.
사실 남회룡분교 어린이들이 가을보다 좋아하는 계절은 여름이다. 선생님과 함께 개울에서 물고기를 잡고 물놀이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구본희 군은 “형들과 함께 물고기를 잡아 튀겨 먹을 때가 가장 즐거운 시간”이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유명 작가 초청해 숲속 계곡서 백일장
산골 학교라고 해서 자연체험 활동만 있는 건 아니다. 이 학교의 가장 큰 자랑거리는 다양한 독서 프로그램이다. 그중에서도 단연 인기는 ‘작가와 함께하는 독서교육’이다. 송명원 분교장 선생님이 전국 각지를 돌며 어린이들이 좋아할 만한 작가를 직접 섭외해 학교로 초청하는 행사다.
15일에도 박혜선, 정란희 동화작가가 초청된 가운데 작가와 함께하는 독서교육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이날 주제는 ‘숲 속에서 시 쓰기’였다. 학교 인근 숲 속 계곡을 찾아 자유롭게 자연을 관찰한 후 시를 써보는 활동이었다. 시가 완성된 후엔 낭송회가 진행됐다. 친구가 쓴 시 중 가장 맘에 드는 구절을 찾아보는 시간, 작가 선생님의 평가도 이어졌다.
어린이들의 시 쓰는 능력은 수준급이었다. 김성일 군은 ‘하늘을 보려고 뛰어오른 물고기’, 구본희 군은 ‘우리랑 같이 놀고 싶은 나뭇잎’ 같은 구절을 시에 집어넣어 참신한 작품을 내놓았다. 권순호 군은 “내가 쓴 시로 작가 선생님께 칭찬을 받아 기분이 좋다”며 “자연을 벗 삼아 시를 쓰니 마음이 탁 트이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구본희 군도 “교실에서 글 쓸 때보다 훨씬 잘 써진다”며 즐거워했다.
지난여름에 이어 두 번째로 이곳을 찾은 박혜선 작가는 “송명원 분교장 선생님의 열정에 감동해 또다시 찾게 됐다”며 “이곳 어린이들은 독서수준이 높을 뿐만 아니라 표현력도 탁월하다”고 칭찬했다. 송명원 분교장 선생님은 “어린이들이 책을 통해 스스로의 꿈을 발견하고 키워나갔으면 좋겠다”며 “독서를 강요하기보다 자연스레 습관으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지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형제 같은 아이들· 가족 같은 학부모들
“우리 학교 소풍날은 동네 전체 잔칫날이에요. 모든 학부모가 정성껏 음식을 마련해 참여하거든요. 얼마 전 농어촌청소년육성재단의 소원성취 프로그램에 뽑혀 2박 3일 서울 나들이를 갔을 때도 학부모가 함께했답니다. 부모님끼리도 무척 친해요. 덕분에 아이들도 친형제처럼 친하게 지내죠.” 정이동 선생님은 “학부모의 저녁 초대를 받아 아이들과 함께 놀러가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직접 만나본 남회룡분교 어린이들은 실제로 서로를 학교 선·후배가 아닌 한 가족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맏형 격인 권순태 군은 “동생들이 친형제처럼 느껴진다”며 “내년에 중학생이 돼 이곳을 떠나면 동생들이 무척 그리울 것 같다”고 말했다. 김홍일 군은 “특히 다섯 명이 모두 모여 야구를 할 때면 끈끈한 정이 느껴져 좋다”고 덧붙였다.
송명원 분교장 선생님은 “학부모 간의 끈끈한 정,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밝고 착하게 자라는 우리 학교 학생들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남회룡의 또 다른 자랑거리… "직접 기른 농산물로 점심"
남회룡분교엔 아주 특별한 ‘급식소’가 있다. 급식소란 다름 아닌 남용욱 소사의 어머니 박순녀 씨(63) 집. 다섯 명의 아이들과 선생님은 학교 건물 바로 옆에 있는 이곳에서 매일 점심식사를 해결한다. 식탁엔 마을 텃밭에서 자란 계절 나물 등 ‘영양 만점’ 음식이 오른다.
정이동 선생님은 “급식이 정말 맛있다”며 “직접 키우신 농산물로 음식을 만들어서인지 아이들이 유난히 튼튼하다”고 말했다. “신종플루가 전국적으로 유행할 때도 저희 학교에선 환자가 전혀 나오지 않았어요. 반찬 투정도 안 하고 식사 후엔 꼭 잘 먹었다며 ‘배꼽 인사’를 하는 우리 학생들이 자랑스럽답니다.”
[작은 학교가 강하다] ④경북 봉화 소천초등 남회룡분교
봉화=김지혜 인턴기자
april0906@chosun.com
"학교 소풍날이 우리 동네 잔칫날이에요"…전교생 5명, 한 가족처럼 지내
계절별로 다양한 체험활동 진행…동화작가 초청해 '독서교육'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