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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 이모 군(13세)의 방화 사건을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서울 성동경찰서에 따르면 중학교 2학년생인 이군은 21일 오전 3시 35분쯤 성동구 하왕십리동 모 아파트 13층 자신의 집<사진>에 미리 준비한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질렀다. 이 사고로 집에서 잠자던 이군의 부모와 할머니, 여동생 등 일가족 네 명이 숨졌다. 이군은 체포 직후 “평소 춤추고 사진 찍는 데 관심이 많아 예술고등학교에 진학하려 했지만, 아버지는 판·검사가 되라며 툭하면 욕하고 때려 홧김에 불을 질렀다”고 말했다.
22일 현재 관련 기사가 실린 조선닷컴(chosun.com) 게시판엔 50여 개의 댓글이 올라 있다. “분명한 범죄행위이며 정당화될 수 없다”(박동해) “형사법상 미성년자 연령을 낮춰 처벌해야 한다”(김영곤) 같은 비판적 의견도 있지만 “절대 아버지의 잘못이다”(서의호) “자녀에게 공부를 지나치게 강요한 부모의 문제다”(김성길)처럼 이군을 동정하는 의견도 적지 않다. 이 사건이 지니는 사회적 의미와 교훈은 뭘까?
부모교육전문가 송지희 씨는 이번 사건의 결정적 원인으로 ‘자녀에 대한 부모의 일방적 태도’를 지적했다. “대부분의 부모님이 자녀를 자율적 존재로 인정하지 않고 통제해야 하는 대상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녀와 갈등이 생기면 섣불리 평가하거나 비판하기 일쑤지요. 하지만 그 이전에 자녀가 정말 바라는 게 뭔지 들어보고 공감해주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의 의견도 비슷하다. “자녀가 부모 마음에 안 든다고 해서 일방적으로 윽박지르거나 강요하는 건 잔소리의 반복에 불과합니다. 아이가 뭘 원하는지, 어떤 일을 의미 있게 생각하고 있는지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대화 시간을 늘려가는 게 바람직한 부모의 태도입니다.”
물론 자녀의 역할과 대응도 중요하다. 특히 아직 판단력이 미숙한 어린이와 청소년의 경우, 부모와 갈등할 때 생기는 분노나 미움 같은 충동을 잘 조절할 필요가 있다는 게 전문가의 지적이다.
오혜영 한국청소년상담원 상담팀장은 “실제 상담을 요청해 오는 학생의 상당수가 가족 갈등, 특히 부모님과의 갈등을 고민한다”며 “자녀도 부모에게 화가 날 수 있지만 무조건 반항하거나 저항적 태도를 취하는 건 잘못된 대응 방식”이라고 지적했다. “일단 부모님의 말을 귀담아들은 후, 하고 싶은 말을 흥분하지 않고 차근차근 얘기하는 게 중요합니다. 단, 자기 잘못은 하나도 없고 모든 문제의 원인은 부모란 식의 태도를 보이지 않도록 주의하세요.”
손석한 서울 연세신경정신과 원장은 “10대 청소년은 사춘기에 접어드는 등 여러 요인으로 충동조절에 어려움을 겪는 게 사실”이라며 “이를 제때 제대로 억누르지 못하고 계속 방치하면 충동조절장애로 악화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갑자기 화가 나 어쩔 줄 모르는 상황이 오면 크게 심호흡을 하거나 천천히 숫자를 세어보세요. 문제가 된 장소를 벗어나 분위기를 바꿔보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뉴스 분석] 부모와 '진실한 대화'가 부족했다
김지혜 인턴기자
april0906@chosun.com
"잔소리 싫어" 자기 집 불지른 중학생
전문가들 '사춘기 충동 방치하면 큰 문제 될 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