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쿨존이 위험하다] '어린이 보호구역'이 '위험구역' 이더라
류현아 기자 haryu@chosun.com
기사입력 2010.10.20 09:59

① 스쿨존 교통사고, 왜 자꾸 늘까?
스쿨존 내 속도위반…불법 주차 일상화…보도 없는 '곡예 통학로'…

  • 지난 14일 오후 4시. 서울 강북구 A초등학교 교문 앞 차도(車道)는 하굣길 어린이들의 놀이터가 됐다. 초록색 블럭과 붉은 아스팔트가 인도(人道)와 차도를 나누고 있었지만 높이 차이가 크지 않아 효과는 없어 보였다. 그나마 좁은 인도는 문방구와 분식점, 과일 가게에서 내놓은 물건들로 곳곳이 가로막혀 있었다.

    어린이들은 인도를 점령한 문방구 앞 전자오락기 앞에 앉아 차들이 자주 오가는 도로를 등진 채 게임을 즐겼다. 자동차들이 주·정차된 도로를 걸어다니는 건 예사. 공놀이를 하는 아이도 있었다. 몇 해 전 이곳에선 차도를 벗어난 트럭이 문방구 앞에서 전자오락을 하던 초등학생을 치어 숨지게 한 사건이 일어났다. 그러나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같은 날 오후 5시 서울 성북구 B초등학교. 교문 바로 앞 인도엔 안전 펜스가 설치돼 있고 도로도 잘 정돈된 듯 보였다. 하지만 골목으로 30여 쯤 들어서자 인도와 차도가 전혀 구분되지 않은 좁은 도로가 나왔다. 차 두 대가 간신히 지나갈 정도의 도로 한쪽엔 불법 주차한 차들이 늘어서 있었다. 방과 후 집으로 향하는 어린이들은 맞은 편에서 차가 오자 주차한 차들 사이로 몸을 피했다가 지나갔다. ‘어린이보호구역’이라고 쓰인 노란색 교통표지판이 무색해보였다.

    이 학교 3학년 엄모 양은 “차를 피하려고 주차한 차들 사이로 숨었다 나오면서 쌩쌩 달리는 오토바이에 부딪힐 뻔했다는 친구들이 많다”고 했다. 같은 학년 박모 군은 “만날 다니는 길인데 우리가 편하게 걸을 수 있는 인도 좀 만들었으면 좋겠다”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 서울 성북구의 한 초등학교 앞 스쿨존. 어린이보호구역’과‘주차금지’표지판 바로 아래 불법 주차된 차량이 버젓이 늘어서 있다. 차도와 인도가 구분되
지 않아 어지러운 사이로 하굣길 어린이들이 집으로 향하고 있다. / 남정탁 기자 jungtak2@chosun.com
    ▲ 서울 성북구의 한 초등학교 앞 스쿨존. 어린이보호구역’과‘주차금지’표지판 바로 아래 불법 주차된 차량이 버젓이 늘어서 있다. 차도와 인도가 구분되 지 않아 어지러운 사이로 하굣길 어린이들이 집으로 향하고 있다. / 남정탁 기자 jungtak2@chosun.com
  • 좁은 이면도로를 자동차가 차지해 버리면서 일부 어린이는 난간에 매달려 곡예하듯 길을 지나다닌다. / 남정탁 기자 jungtak2@chosun.com
    ▲ 좁은 이면도로를 자동차가 차지해 버리면서 일부 어린이는 난간에 매달려 곡예하듯 길을 지나다닌다. / 남정탁 기자 jungtak2@chosun.com
  • 또 다른 스쿨존인 서울 강북구의 한 초등학교 앞. 가뜩이나 좁은 도로가 슈퍼마켓 상품 진열대와 불법 주차 차량 등에 가려 더 좁아 보인다. / 남정탁 기자 jungtak2@chosun.com
    ▲ 또 다른 스쿨존인 서울 강북구의 한 초등학교 앞. 가뜩이나 좁은 도로가 슈퍼마켓 상품 진열대와 불법 주차 차량 등에 가려 더 좁아 보인다. / 남정탁 기자 jungtak2@chosun.com
    ◆스쿨존 교통사고, 3년 전의 1.6배

    어린이들의 등하굣길이 위협받고 있다. ‘어린이 보호구역의 지정 및 관리에 관한 규칙’이 제정된 건 지난 1995년. 이후 15년간 전국 초등학교 주변의 90% 이상이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으로 지정됐지만 어린이구역 내 사고는 오히려 급증하는 추세다.

    최근 황우여 한나라당 국회의원(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스쿨존에서 발생한 교통사고는 모두 535건이었다. 사망자는 7명, 부상자는 560명이다. 지난 2007년 345건(사망 9명, 부상 366명)보다 무려 55%포인트나 늘어난 것이다. 올해도 사정은 나아진 게 없다. 상반기에만 벌써 338건의 교통사고가 스쿨존에서 발생해 3명이 목숨을 잃었고 357명이 부상을 입었다.

    스쿨존에선 차량속도가 시속 30㎞로 제한되고 주·정차도 금지된다. 그러나 이를 제대로 알고 지키는 운전자는 많지 않다. 실제로 지난해 스쿨존에서 일어난 사고의 대부분은 운전자의 부주의가 원인이었다. 보행자의 보호의무 위반으로 일어난 사고는 19%에 불과했다.

    어린이들의 안전한 등하굣길을 위한 스쿨존 제도는 왜 도입 15년이 지난 지금도 제 몫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걸까? 전문가들은 현실을 무시한 획일적 시설물 설치를 가장 큰 원인으로 꼽았다. 유상미 한국생활안전협회 간사는 “후문을 이용하는 학생이 훨씬 많은데도 정문 앞만 스쿨존으로 지정한다든지, 차량들이 속도를 내는 곳이어서 과속 방지턱이 필요한데 교통표지판 설치에만 돈을 쏟아부은 곳이 많다”고 지적했다. 그 지역의 특성을 철저히 분석해 맞춤형 시설물을 설치해야 하는데도 탁상행정(卓上行政·현실적이지 못한 행정)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다.
  • ◆하굣길 '사각지대'…  솜방망이 단속

    좁은 이면도로(차선이 그려져 있지 않은 도로)를 양방향으로 운영하는 것도 사고를 부추기는 원인으로 손꼽힌다. 허억 안전생활실천시민연합 사무처장은 “안전한 인도를 확보해 차와 어린이를 분리해주면 교통사고 발생률을 확 낮출 수 있다”며 “좁은 이면도로를 일방통행으로 바꾸고 보도와 차도 사이에 확실한 경계턱을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교시간에 교통 안전 지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도 문제다. 등굣길엔 전국 대부분의 학교가 녹색어머니회 등의 지원을 받아 교통 안내를 실시한다. 하지만 하굣길엔 이 역할을 맡아줄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형편. 학원 차량이 어린이들을 데려가기 위해 교문 앞에 불법으로 주·정차하며 한데 엉기는 것도 사고 위험을 높이는 원인 중 하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2009년 스쿨존 내 사망 사고의 절반이 하교시간(낮 12시~저녁 6시)에 일어났다.

    느슨한 단속도 문제다. 경찰청은 지난 6월 스쿨존 내에서의 교통법규 위반 행위를 가중처벌(加重處罰·형을 더 무겁게 해 내리는 벌)하는 내용을 담은 도로교통법 시행령과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하지만 인력 부족 등의 문제로 강력한 단속은 이뤄지지 않고 있는 형편이다. 유상미 간사는 “강력한 단속은 운전자에게 스쿨존을 확실하게 인식하게 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관련법을 보다 엄격하게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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