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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뚤귀뚤 찌르르르.” 지난 15일 은은한 달빛을 벗 삼아 귀뚜라미와 방울벌레가 조근조근 이야기를 나누던 창덕궁의 가을밤, 어디선가 어린이들의 재잘거림이 들려왔다. 목소리를 따라 칠흑같이 어두운 궐내를 걸어 도착한 곳은 창덕궁 깊숙한 곳에 자리한 낙선재(樂善齋). 어린이들은 처용무(중요무형문화재 39호·신라 헌강왕 때 ‘처용설화’에서 유래된 가면 무용으로 궁중의 주요 행사에 추던 탈춤) 배우기에 한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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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이 궁궐문화 체험의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은 산골과 섬 지역 어린이를 위해 마련한 ‘궁궐에서의 특별한 숙박체험’ 첫 번째 행사가 이날 1박2일 일정으로 창덕궁 낙선재 일대에서 열렸다. 참가자는 충남 청양 장평초등학교 4~5학년 어린이 21명. 20년 만에 처음으로 손님을 맞은 낙선재는 어린이들의 웃음소리로 여느 때와 달리 활기찬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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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 어린이들은 창덕궁에서 궁중 예절 배우기, 왕자와 공주 옷 입어보기, 2010 대한민국 한복페스티벌 참관, 처용무 배우기 등의 체험활동에 참가하며 조상의 삶을 체험하고 낙선재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낙선재는 조선의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1897~1970년)과 왕비 이방자 여사(1901~1989년)가 서거(逝去·죽어서 세상을 떠남)할 때까지 머물렀던 곳. 일반인에게 숙박을 허용한 건 이 여사 서거 후 20여 년 만에 처음이다. 5학년 윤태원 양은 “친구들과 함께 궁궐에서 잔다는 생각에 두근거려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며 “평소 경험할 수 없었던 궁궐 문화를 배울 수 있어서 특별한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고 말했다. 둘째 날엔 경복궁과 태릉 조선왕릉전시관 관람이 진행됐다.
문화재청은 오는 29~30일 경기 연천 화진초등학교 4~5학년 어린이 23명을 대상으로 한 차례 더 시범 행사를 진행한 후 내년부터 프로그램을 확대 실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길배 문화재청 서기관은 “매년 4월부터 10월까지 월 1회 프로그램 운영을 검토하고 있으며, 창덕궁뿐 아니라 창경궁이나 덕수궁까지 장소를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넌 왕자, 난공주" 궁궐이 왁자지껄
조찬호 기자
chjoh@chosun.com
장평초 어린이들, 20년 만에 공개된 창덕궁 낙선재에서 숙박체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