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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오후 경기 과천 문원초등학교 교문으로 회색 승합차 한 대가 서서히 들어왔다. 하굣길 학생들의 시선이 한꺼번에 집중됐다. 차량이 멈추고 문이 열리자 어린이들이 하나 둘 몰려들기 시작했다.
“여기서 촬영하는 거예요? 무슨 촬영이에요?”
“어, 어디서 많이 본 얼굴들인데….”
어린이들은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차 안을 살폈다. 촬영용 조명, 카메라 등 장비가 내려진 후 아역 배우 네 명이 잇따라 내리기 시작했다.
“어, 드라마 아닌가? 저 배우 EBS에서 본 것 같은데…. 우리 학교에서 찍나 보다.”
배우들을 알아본 한 어린이가 휴대폰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다. 삽시간에 여러 어린이가 아역 배우 주변에 모여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배우들은 머쓱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지만 이내 어린이들을 향해 찡긋 미소를 지어 보였다.
스타 못지않게 눈길을 끈 이들은 EBS에서 방영 중인 과학 드라마 ‘미래를 보는 소년’의 주인공이다. 최근 보기 드문 어린이 드라마로 시청자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이 드라마의 촬영 현장을 12일 하루 종일 밀착 취재했다. -
◆대본 연습은 즐겁게, 촬영은 긴장감 있게
이날 오후 시작된 첫 촬영은 9회 방영분의 세 번째 장면(scene)이었다. 촬영에 들어가기 전 배우들은 교실에 모여 대본 연습을 진행했다.
“김밀! 좀 더 심각한 표정으로 해봐. 이따 촬영 들어갈 때 표정이 확실하게 나와야 해.”
연출자 강경아 PD의 지적이 떨어지기 무섭게 ‘김밀’ 역을 맡은 박건태 군(15세)의 표정 연습이 시작됐다. 웃어보기도 하고 얼굴을 잔뜩 찡그려보기도 하고. 박 군의 표정이 익살스러워 보였는지 주위에서 쿡쿡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에 질세라 ‘서연두’ 역의 이유미 양(17세)도 표정 연기에 집중했다.
‘최호’ 역의 곽종우 군(14세)은 “처음 만났을 땐 좀 어색했는데 벌써 한 달 이상 같이 생활하다시피해 그런지 이제 많이 친해졌다”며 “본 촬영 들어가기 전 서로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장난을 치며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곤 한다”고 말했다.
연습이 끝나고 본격적인 촬영이 시작됐다. 배우와 스태프 사이에서 긴장감이 감돌았다. “레디, 액션!” 몇 차례 리허설(rehearsal·진짜 촬영을 하기 전 실제처럼 하는 연습)을 거친 후 강 PD의 힘찬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김밀이 교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장면. 연습 때만 해도 장난기 가득하던 박 군의 눈빛이 확 달라졌다. 카메라 모니터로 박 군의 연기를 지켜보던 강 PD는 흐뭇한 미소와 함께 ‘오케이’ 사인을 냈다. “잘했어. NG 내면 벌금 1000원인 거 알지? 계속 긴장해야 해!” -
◆10초 분량 찍으려 한두 시간씩 촬영하기도
불과 한 장면을 찍는데도 카메라는 여러 차례 각도를 바꾸며 배우들을 비췄다. TV로 볼 땐 10초 안팎에 불과한 장면을 찍기 위해 한두 시간은 꼬박 촬영하는 셈이다. ‘서뭉’ 역할을 맡은 안성현 군(12세)은 “오늘 촬영 시작이 좀 늦어 아예 ‘오늘도 밤새우겠구나’ 각오하고 왔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드라마를 이끄는 네 주인공은 이 작품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우리 드라마에선 실험실에서나 접하는 화학물질이 아닌 콜라, 베이킹 소다 등이 극 중 사건 해결에 결정적 역할을 해요. 일상생활과 동떨어지지 않은 지식을 시청자에게 전달해줄 수 있는 게 최대 장점이죠.”(박건태 군) “어린이 시청자를 배려한 교육적 요소는 물론, 어린이 드라마 특유의 풋풋한 사랑과 우정 얘기도 담겨 있어 더 재밌는 작품인 것 같아요.”(이유미 양)
강경아 PD는 “얘기가 계속되며 과학적 요소와 드라마적 요소의 경계가 허물어질 위험이 있지만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고 지식과 재미를 동시에 선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어린이에게 유익한 정보는 물론, 재미도 담긴 드라마여서 더욱 자부심 갖고 열심히 촬영하고 있어요. 주연 배우들도 점점 자기 역할에 충실한 연기를 보여주고 있고요. 어린이 시청자 여러분, 예쁘게 봐주세요!”
→ ‘미래를 보는 소년’
EBS가 2007년 이후 3년 만에 시도하는 어린이 드라마. 플래시포워드(flash-foward·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의 사건이 머릿속에 먼저 떠오르는 현상)을 주제로 네 명의 어린이 주인공이 펼쳐나가는 사건 해결 과정을 그리고 있다.
호기심 많은 주인공 ‘김밀’은 우연찮은 기회에 플래시포워드 현상을 겪게 되며 여러 사건을 접한다. 자신의 능력과 친구들의 도움으로 미궁(迷宮·문제가 얽혀 쉽게 해결하지 못하는 상태)에 빠진 사건을 하나하나 해결해나가는데. 위험천만한 사건이 지닌 긴장감과 문제 해결 과정에 숨어 있는 과학적 지식, 두 요소가 절묘하게 배합되며 극적 재미를 더한다. 매주 목요일 오후 7시 30분 방영.
화기애애한 촬영장… '레디~ 액션!' 소리에 긴장감 넘쳐
과천=김재현 기자
kjh10511@chosun.com
EBS 드라마 '미래를 보는 소년' 촬영 현장 밀착 취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