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장난감이 아니에요 책임감 있게 키워주세요!
손정호 인턴기자 wilde18@chosun.com
기사입력 2010.10.05 09:43

버려지는 개 '유기견'들의 눈물
처음엔 예쁘다고 했잖아요! 근데 왜 날 버렸죠? ㅠ.ㅠ

  • 영화배우 차예련 씨는 지난 5월 동물자유연대와 함께 버려진 동물 입양을 위한 거리 캠
페인을 진행했다. / 동물자유연대 제공
    ▲ 영화배우 차예련 씨는 지난 5월 동물자유연대와 함께 버려진 동물 입양을 위한 거리 캠 페인을 진행했다. / 동물자유연대 제공
    4일 어린이들이 슬퍼할 만한 뉴스가 하나 발표됐습니다. ‘버려지는 개’ 유기견(遺棄犬)에 관한 소식이었는데요. 올 1~8월 서울에서 주인에게 버려진 개가 1만2000여 마리이고 작은 개 중에선 몰티즈(1208마리), 큰 개 중에선 진돗개(284마리)가 가장 많이 버려졌다고 하네요. 은평구(1020마리)·마포구(790마리)·서대문구(712마리) 등 사람이 많이 모여 살고 재개발 사업 등으로 이사가 잦은 곳에서 특히 유기견 수가 많았다고 합니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요? 버려진 개들은 어디로 가서 어떤 운명을 맞게 될까요? 이들에게 ‘새 주인’을 찾아주는 일은 불가능할까요? 유기견 ‘곱단이’의 얘기에 귀 기울여보세요. -편집자 주

    내 이름은 곱단이. 평범한 믹스견(잡종개)이지. 내 얘기가 궁금하다고? 그래, 들려줄게.

    난 아주 비참하게 버려지고 방치(放置·내버려둠)됐단다. 내 주인은 정신지체 장애인이었어. 아버지와 아들 두 식구가 살았는데 나와 우리 가족 모두를 함부로 다뤘지. 내 부모님은 어렸을 때 매단 목줄을 주인이 늘려주지 않아 줄이 살을 파고들 정도였어. 부모님의 살이 썩어들어가는 걸 보면서도 난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 상황이 끔찍하긴 나나 오빠 ‘돌쇠’도 마찬가지였어. 제대로 먹지도 못해 비쩍 말라갔고 피부병까지 생겼지.

    그러다 동물 구조봉사자의 도움을 받아 극적으로 구출된 거야. 그동안 치료도 받고 목욕도 해서 이젠 많이 좋아졌어. 어때, 나 예쁘지?

    세상엔 나처럼 ‘버려진 개’들이 참 많나봐. 작년 한 해만 8만2658마리가 버려졌다고 하니 엄청나지?(국립수의과학검역원 통계) 2002년 이후 그 숫자는 계속 늘고 있다고 해. 이 개들이 어떻게 되느냐고? 60% 정도는 안락사당하거나 병에 걸려 죽는대. 인천이나 부산, 제주 같은 도시는 개를 키우려면 반드시 주소지가 있는 곳 구청에 신고하도록 돼 있어. ‘반려동물등록제’ 덕분이야. 그런 곳에선 키우던 동물을 맘대로 버릴 수 없겠지? 하지만 아직은 그런 제도가 없는 곳이 더 많아.

    ◆애완동물 No! 반려동물 Yes!

    너희들은 우리더러 애완동물, 애완동물 하는데 그건 틀린 호칭이야. 반려(伴侶)동물이 더 적절한 말이지. 안영희 농림수산식품부 동물방역과 사무관님은 우리를 동료(companion)라고 부른단다. 그만큼 우리를 키울 땐 의지와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뜻이지.

    윤정임 동물자유연대 반려동물복지팀장님도 우릴 애완동물로 부르는 데 반대해. “애완은 아끼는 장난감이란 뜻이잖아요. 동물은 엄연한 생명체예요. 장난감처럼 싫으면 버리고 던지고 부숴버릴 수 있는 게 결코 아닙니다.”

    우리 같은 반려동물의 입장을 아주 조금만 헤아린다면 우릴 키우기 전 먼저 생각해봐야 할 게 있어. ‘내가 과연 이 동물을 책임감 있게 잘 키울 수 있을까?’ 하는 거야. 단지 호기심만으로 우릴 키우는 건 현명하지 못한 일이야. 우릴 제대로 키우려면 생각보다 많은 손길이 필요하거든.

    너희뿐 아니라 너희 부모님의 허락과 도움도 필요해. 또 설사 부모님의 허락을 얻었다고 해도 우릴 키울 땐 목에 네 이름과 주소, 전화번호가 적힌 이름표를 달아줘야 해. 그래야 너희가 우릴 잃어버리더라도 우리가 길거리를 떠도는 신세가 되지 않을 테니 말이야.


  • 주인에게 버림받은 개 중 60%는 안락사당하거나 병에 걸려 죽는다. 작년에만 8만 마
리가 넘는 개들이 버려졌다. / 동물자유연대 제공
    ▲ 주인에게 버림받은 개 중 60%는 안락사당하거나 병에 걸려 죽는다. 작년에만 8만 마 리가 넘는 개들이 버려졌다. / 동물자유연대 제공
    ◆행복한 삶, 동물에게도 필요해

    사람들은 걸핏하면 복지(福祉·행복한 삶)를 얘기하더라. 하지만 우리 동물에게도 복지가 있어. △인간의 편의에 의해 동물을 이용할 순 있지만 △동물의 고통을 최소화하고 △편안하고 자유롭게 생활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게 동물복지의 기본 정신이야.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란 영화로 잘 알려진 임순례 감독님 아니? 그분은 현재 동물복지단체 ‘카라’의 대표이기도 해. 카라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영국에선 동물을 학대한 사람에 대해 최고 2만 파운드(약 4000만원)의 벌금과 최대 51주의 형량을 내릴 수 있어. 호주엔 동물 학대를 감시하는 일만 전문으로 하는 사람이 170명이나 되고. 아, 물론 모두 국가에서 고용한 사람들이지. 24시간 연중무휴로 운영되는 동물복지 긴급전화(the Animal Welfare Emergency)도 국가가 책임지고 있어. 동물복지를 ‘말’이 아니라 ‘법’으로 보장하고 있는 거지.

    동물복지는 동물뿐 아니라 인간에게도 중요해. 김진석 건국대 수의학과 교수님은 “동물 학대 현장을 보고 자란 어린이는 어른이 됐을 때 폭력 성향을 보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어. 선진국에선 자폐증 어린이나 재활 치료 환자에게 동물을 키우게 한대. 약물치료 같은 것보다 훨씬 정신적으로 도움이 된다나? 김 교수님은 “반려동물과 함께 지내보는 경험은 특히 어린이의 정서적 성장에 도움이 된다”고 말씀하셨어.

    ◆버려진 동물을 ‘입양’한다고?

    좋아하는 것과 사랑하는 건 달라. 너희가 나 같은 유기견을 입양하려고 한다면 최종 결정을 하기 전 이것 하나만 생각해줘. 동물은 보고 즐기는 대상이 아니라 감정을 나누고 평생 함께할 상대로 받아들이는 대상이란 사실을. 어쩌면 갓 태어난 동물을 키울 때보다 훨씬 더 큰 결심이 필요할지도 몰라. 이미 한번 버려진 경험이 있는 데다 여기저기 상처투성이여서 세심한 배려와 보살핌이 필요하거든. 그래서일까? 버려진 동물을 입양하는 사람 중 대부분은 이미 다른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는 사람들이야.

    박근영 씨는 1년 전 동물자유연대에서 유기견 ‘하코’를 입양했어. “하코를 만나고 벌써 사계절이 지났네요. 지금은 한 식구처럼 잘 지내고 있어요. 처음엔 유기견을 입양한다는 게 망설여졌지만 금세 일상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됐답니다.” 근영 씨에게도, 하코에게도 얼마나 잘된 일인지 몰라. 솔직히 난 하코가 부러워. 나도 어서 빨리 착한 새 주인을 만나고 싶거든. 날 사랑해줄 사람을 말이야.

    어때? 내 얘길 듣고 나서 유기견에 관심이 생겼다고? 물론 대환영이지. 정부가 운영하는 동물보호관리시스템(www.animal.go.kr)이나 동물자유연대(www.animals.or.kr), 카라(www.withanimal.net) 등의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우릴 만날 수 있어. 잔소리 같겠지만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당부할게. 반려동물을 키우기 전엔 신중, 또 신중하게 생각해줘. 알았지?